신비의 땅 울주 삼동면 오지마을 답사를 마치고/안성환/230715
이번 답사는 사)울산문화아카데미와 울산향토사연구회가 공동으로 준비하였다. 답사를 하루 앞두고 하늘은 용서하지 않았다, 관동지역에는 산사태, 기호지방에는 폭우 주의보, 울산은? 가슴이 조였다, 하지만 기상청은 우리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날은 밝았고 하늘은 회색빛 블라인드로 가려 놓았다. 날씨는 댓길이다. 이번 답사 코스는 신비의 땅 울주군 삼동지역 오지의 땅이다. 이곳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나 역시 울산에 거주 한지 반세기를 코앞에 두지만, 이곳은 처음이다. 오늘 가이드는 이상도원장님이 직접 하셨다. 원장님의 말씀은 이곳은 고대 막강한 지배계급이 존재했으며, 근거로 출토된 증거물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천 겹 산중에 효자, 열녀, 선행, 자선비가 즐비하고 자연의 환경은 사람의 간섭이나 자연의 재해를 받지 않은 원시림을 보는 느낌이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가장 서정적인 농촌으로 꼽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흥행 성공작 영화 ‘뽕’ ‘변강쇠’ ‘씨받이’ 등 7편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고 했다.
이번 답사 참가자는 총 36명, 워낙 오지이므로 버스진입이 불가하여 개인 승용차 9대를 배차, ‘원강서원’부터 답사를 시작하였다. 이곳에는 문중의 어르신이 우리 일행을 안내했고, 친절히 설명을 해 주셨다. 여기는 엄흥도를 배양하는 서원이다. 엄흥도는 강원도 영월군 호장출신이다. 단종이 세조에 의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감봉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금 되었가 세조 3년 정축년(1457년) 10월에 이곳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의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이후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고 세조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고 어명을 했다, 하지만 엄흥도는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시신을 수습하여 문중의 선산에 매장하고 세조의 보복을 피하고자 길을 떠났다고 했다. 여러 곳을 숨어 다니다가 마지막 도착지가 첫째 아들은 청송에 두고 둘째와 셋째만 데리고 이곳 울주군 삼동면 금곡으로 왔다고 한다. 당시의 고을 사람들은 단순히 경주 사람으로 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유명한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좋은 일을 하고 화를 당하는 것은 내가 마음속으로 달게 여기는 바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정신은 이 시대 기성세대들이 본 받아야 할 교훈인 것 같다. 이날 ‘원강서원’ 앞에서 엄흥도선생 시 한 구절을 낭송해주신 황두환박사님의 품격있고 매력적인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쩜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이어서 ‘열려 각’으로 이동 했다. 도착하니 8호 차가 행방불명 되었다. 20분째 오지마을에서 헤매고 있다는 소식다. 결국 ‘열려각’으로 오지 못하고 그다음 코스인 ‘정려각’에서 합류 하기로 했다. 역시 오지는 오지였다. 이곳에 배양된 인물은 김해김씨 김경민의 딸로 배내골에서 세거하다가 영산신씨 신몽룡에게 출가한 인물이다. ‘우귀’도 하기전, 즉 결혼하고 신부는 자기 집에서 며칠 머물다가 신랑집으로 가는데 신랑집에 가기전 신랑이 와병으로 중태라는 급보를 받고 달려가니 이미 운명한 후라고 한다. 그때 나이 18세이다. 아리따운 나이에 청상과부로 평생을 노약하신 시부모님을 섬겼다고 한다. 열녀가 뭐라고 낭랑 18세의 어린 나이에 일생동안 ‘열녀’라는 올가미에 희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려왔다. 이 시대 사람으로 이해 하기가 힘들었다.
다음 코스는 정효각이다. 이 마을의 효자 우사곤을 배양한 곳이다. 진주목사 우인경의 7세손으로 효성이 지극하다고 한다. 11세 때 부친이 타계하자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예를 지키며 생선과 육고기를 먹지 않으며 묘소를 지켰다고 한다. 후일 노모도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는데 몸에 종기가 나면 입으로 빨아 치료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삼 년간 한결같이 묘를 살피니 그 효성이 지극하여 1892년(고종 29년)에 나라에서 정려 함으로써 이듬해 정려각을 세웠다고 한다. 병원보다 요양병원이 많은 시대. 저승가는 예매 티켓을 받아들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요양원’을 보며 이 시대의 해몽을 생각하게 하였다.
서너시간을 오지답사를 강행하니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삼동지역에서 알아주는 신토불이 식당 ‘봉래정’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사촌요지’로 떠났다. 이곳은 ‘사발그릇’을 만드는 옛 공장 지역이다. 협소한 골짜기에 가이드 없이는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좁은 임도에 주차하고 ‘사촌요지’를 답사하려니 주변 환경이 호락호락 허락해 주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흔적만 확인하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
마지막 코스인 보삼 영화마을 기념관이다. 우리는 관장님의 추천으로 ‘뽕’을 관람했다 방영 시간은 2시간. 사실 나는 이 영화는 처음 본다. 평소 내 머릿속에는 19금, 에로영화로 꽂혀 있었다.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중반 일제 치하에 산간벽지 용담골이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삼았다. 첫 스토리는 천하의 노름꾼 삼보를 남편을 둔 절세미인 안협(이미숙)의 이야기이다. 남편인 삼보는 하얀 모시 두루마기에 부인의 쌈지돈까지 뜯어내어 전국 투전판을 돌아다닌다. 바람처럼 몇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른다. 이 사이 삼보의 부인 안협은 살기 위해 마을 남자들에게 몸을 허락하고 쌀이나 금품을 받아 살아간다. 심지어 폐병 환자에게까지 몸을 허락하는데 그 마을 힘 좋고 뚝심 있는 변강쇠 삼돌이라는 머슴에게는 몸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삼돌이는 자기의 성욕을 참지 못해 회유, 협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만, 퇴짜를 맞는다. 어느 날 남편 삼보가 돌아오는데 머슴 삼돌은 그녀의 방탕생활을 모두 고해바친다. 삼보는 오히려 삼돌이를 두들겨 패고는 부인은 위로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부인안협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 삼보가 떠나는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그의 남편 뒤에는 왜놈 순사가 늘 따라 다니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는 노름꾼으로 위장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위인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남편은 독립운동가였고 그녀가 몸 팔아 모은 돈은 독립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오늘날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느낀 ‘뽕’은 단순한 ‘에로영화’가 아니라 ‘민족영화’였다.
이번 울주 삼동지역 오지마을 답사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첫댓글 그날을 다시 볼 수 있으니 좋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