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혼란? 열등감? 판타지? 정유정 범행동기 미스터리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정유정(23)의 범행 동기에 수사기관의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4일 부산지검은 ‘부산 또래 살인 사건’을 지난 2일 송치받아 강력범죄전담부(부장검사 송영인) 소속 3개 검사실로 구성된 전담수사팀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부산지검은 “범행 동기를 포함한 사건의 실체를 명백히 밝혀 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전담수사팀을 편성하는 데는 ‘범행의 진짜 동기’를 밝히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정 씨는 지난 1일 경찰 조사에서 “TV 프로그램 등을 보고 ‘살인 호기심’이 생겨서 범행했다”고 진술했지만, 단순한 호기심이 실제적인 살인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정 씨가 왜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이유도 밝혀지지 않아 이에 대한 수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형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확하고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각에도 차이가 있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국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 씨의 범행은 코로나19 이후 심각해진 온라인·오프라인 정체성의 괴리가 근본적 원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상의 정체성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과 반대로, 현실의 모습이 온라인의 모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박탈감이 깔려있다는 뜻이다. 경찰수사결과 정 씨는 지난달 26일 범행 이후 금품이 아닌 피해자의 옷을 챙겨 현장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 씨가 유년기를 보낸 가정 환경이 범행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기대 공정식(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살인 호기심’을 범행 원인으로 자백하는 모습은 청소년기의 특징”이라며 “정 씨는 성인이지만 청소년기 가정 환경의 영향으로 심리상태는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약 5년 동안 별다른 직장도 가지지 못한 채 기초생활수급자인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따로 생활 중인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조금씩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석대 김상균(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살인 판타지와 어려운 가정환경을 원인으로 짚었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피의자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사회에 대한 분노가 ‘살인 판타지’로 발현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죄 관련 콘텐츠를 접하며 이 판타지가 강화됐고, 결국 충동을 참기 힘든 정도로 판타지에 사로잡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씨의 교우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를 ‘은둔형 외톨이’로 규정하는 일각의 시각은 잘못된 접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타인과의 대면을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정 씨의 모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산연구원 박주홍(정신건강 및 은둔형 외톨이 분야 연구) 연구위원은 “보도에 따르면 정 씨는 범죄 프로그램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특정한 사물에 ‘관심’을 쏟는다는 것도 은둔형 외톨이와의 차이점”이라며 “지금까지 사례로 미뤄볼 때 은둔형 외톨이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정 씨처럼 사전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빈 기자
출처: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230605.220100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