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내셔널> 들여다보기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2009)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한 '정의로운' 인터폴(국제경찰)샐린저 요원이 거대국제은행의 비리를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돈세탁,무기거래,테러 등의 전세계범죄에 자금을 대는 가장 큰 금융회사 IBBC(International Bank of Business Credit)은행을 상대로 진실을 파헤치고자 겁없이 뛰어들은 샐린저 요원은, 이것이 단순한 회사의 비리를 넘어 헤즈볼라, CIA, 러시아범죄조직은 물론이고 미국, 이란, 독일, 중국 등 나라의 정부까지 개입된 거대한 총체적(국가적) 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수사가 깊어질수록 동료와 정보원, 증인들이 차례로 암살되고, 상부로부터는 더이상의 수사를 중지하라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영화에서 샐린저 요원은 여러 압력에도 불구하고 비리를 저지른 IBBC의 대표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하지만, 사람만 바뀌었을뿐 검은거래의 주축인 IBBC은행은 그 뒤에도 계속 권력의 비호아래 이어져 나갑니다.
영화로 본 노무현의 <한계>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지지기반 없이 순전히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5년은, 이 영화의 샐린저 요원이 맞딱드린 한계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민의 지지 하나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미 시스템 전체에 깊숙히 뿌리를 박고 있던 오랜 기득세력들은 손댈수 없을 정도로 완강한 대단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서민의 눈높이로 평등한 마음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수백년동안 이어져온 한국 사회의 독점적 권력을 와해시키는 것이었고,
이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국민적인 지지 없이는 결코 이길수 없는 1:100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시스템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기득세력들은 그들의 권위와 권력을 지키고자 그들의 케익을 노렸던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엄청난 반발만을 일삼았으며 대통령의 임기중에 그들의 사익을 채우는데 더욱 여념이 없었습니다.
기득세력은 탈권위라는 정권의 혜택을 더욱 그들의 배만을 채우는데 이용하면서 빈부의 격차는 심해졌고, 이로인해 피폐해진 국민들은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란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어려워진 경제생활에 좌절과 절망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는 당연히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이어졌고, 대다수 국민들은 모든 잘못을 궁지에 몰린 노무현 대통령의 무능으로 몰아부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순전히 국민적인 지지를 얻어 나라에 '정의'를 세우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그가 개혁하려했던 그 시스템은 터줏대감들로 인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빙산(고정관념)으로써, 아무리 일국의 대통령이라 할 지라도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서는 상대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이었던 국민들마저도 재벌언론에 의해 눈과 귀가 막힘으로써, 깨끗한 정치세력 소수가 대중의 후원없이 거대한 시스템에 대항한다는 것은 도저히 안돼는 무모한 게임이었음을 깨달았기에, 고 노무현 대통령도 퇴임후에는 '정치하지 말라'는 기막힌 한풀이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속사정을 국민들이(대중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상에는 그 어떤 초월적 존재가 나타나도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입니다.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총체적인' 문제라면 감히 누가 고칠 수 있겠습니까?
<대안> : 자기반성 & No타협
고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권력과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정책적으로) 타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지세력 마저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이 그런 뼈를 깎는 어려운 선택을 내리리라곤 그 상황에 닿기 전까지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그 자신도 정말 어렵고 어찌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놓은 결정이었던 것입니다.(이라크파병이나 한미FTA, 대연정같은..)
여기에 대한 책임은 당시 야당(한나라당)과 기득세력은 말할것도 없고,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게도 있습니다.
당시 여당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만큼 사명감도 없었고, 진실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 또한 사심에 찬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눈과 귀를 닫고 산 무지한 국민들에게도 당연히 책임이 있습니다. 기득세력을 계속 먹여살려준 장본인은 바로 무지한 국민입니다.
대안은 이러한 돌아봄, 겸허한 자기성찰에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하고 남의 한계를 탓한 오만을 깨닫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이렇게 '자기반성'이 필요할 때 입니다.
이렇게 냉철한 자기반성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대안을 논할수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어야 대안이 보이니까요.
대안은 바로 타협하지 않는 삶입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삶.
불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과 타협하지 않은 삶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누군가를 향해 소리지를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어느 시민이 든 피켓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조중동과 싸우는 당신의 고마움을 몰랐어요"
이런 뒤늦은 깨달음이 있기에 우리는 겸허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진실을 놓치고 있는가, 내가 어디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가를 냉엄한 자기반성을 통해 정리하고,
'착각'속에서 살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과연 세상에 진실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답할수 있을때까지...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기성찰에 철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태산이라도 옮길 것입니다. 처절한 몸부림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