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기본법 손질, 규제 풀어야"
지방부동산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일손을 놓는 건설사가 늘고 집, 땅, 상가 등의 거래가 뜸하다. 자연 돈이 돌지 않고 지방경제에 냉기가 감돈다. 투기를 잡는다며 취한 당국의 고강도 규제조치에다 나라 안팎의 경제환경악재로 경기가 내리막길을 걷는 까닭이다. ‘부동산시장 살리기’연중캠페인을 벌리고 있는 본지는 두 번째 순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건설·부동산업계의 현장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한전문건설협회 경남도회 황한석 회장(59·삼중엔지니어링 대표)을 만났다.<편집자주>
기자가 대한전문건설협회 경남도회가 있는 경남 창원시를 찾았을 땐 지방자치단체장 6·5재보궐선거를 몇 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마이크로 퍼져 나오는 후보자들의 유세소리만 요란했다. 경남에서 제일 큰 도시고 건설공사가 줄을 이었던 곳인데도 그랬다. 경남도청소재지로 부동산거래가 비교적 활발했으나 상당수 부동산중개업소들이 개점휴업 상태였다. 팔려는 물건도, 사려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게 현지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 귀띔이다.
중개업소 창문에 매매부동산 홍보지만 덕지덕지 붙었을 뿐 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텅 빈 사무실, 입주자를 구한다는 오피스텔, 폐업한다며 짐을 꾸리는 상가들이 군데 군데 보였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만난 황한석 회장 설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곳 부동산시장은 심각합니다. 경기선행산업인 건설산업이 다 죽어가니 부동산시장이 살 수가 있겠어요. 경제규모가 있는 서울이나 수도권과 달리 경남 같은 좁은 지방에선…. 서울 강남 등 일부지역의 투기문제를 전국적으로 싸잡아서 규제단속을 펴니 문제죠. 이렇게 가다간 대부분의 건설회사들이 문을 닫을 겁니다. 건설·부동산시장이 돌아가야 세금도 걷고 다 같이 먹고살기도 하는 건데….”
황 회장은 “경남지역의 경우 몇 년 전 겪었던 IMF환란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해시 장유면에 짓고있는 B아파트가 분양 땐 신청자들이 줄을 이었으나 지금은 물량의 30%를 부동산중개업소가 갖고 있다고 들려줬다. 부동산규제조치 전에 투자목적으로 분양 받은 사람들이 매기가 시들해지면서 팔리지 않자 중개업소에 아파트를 맡겨놓았다는 얘기다.
기자가 이튿날 찾아갔던 김해시지역도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신흥주거단지로 떠오른 김해 장유면은 대표적인 곳이었다. 그곳 부동산가는 대체로 조용했고 중개업소 대부분 썰렁한 느낌이다. 몇몇 실입주자들이 새 아파트에 들어가거나 세를 놓는 게 고작이고 매매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부동산시장을 관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원과 같은 생활권인 마산시, 진해시의 건설·부동산업계도 죽을 맛이다. 아파트를 지어봤자 분양이 안되고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짓더라도 채산이 맞지 않아 사업계획을 늦추거나 백지화하는 사례들이 적잖다. 서부경남 진주시, 사천시와 동부경남 양산시, 인접한 밀양시도 큰 차이가 없다. 합천군, 산청군, 함양군, 의령군 등 군단위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진해시의 경우 이런 위축세에도 채권입찰제 시행계획 얘기가 퍼지면서 아파트분양가가 뛰고 있다. 2002년까지만 해도 평당 300만원 대였으나 지난해 500만원, 올 들어선 600만원대로 치솟고 있다. 창원시 반송단지 재건축아파트(55평형)도 700만원을 넘어섰다.
황 회장은 “경남지역의 미분양아파트가 쌓여가고 기존주택 값이 떨어지자 매매건수가 줄고 있다”면서 주택이 움츠리면 상대적으로 땅, 상가, 사무실, 오피스텔시장이 활발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부동산시장 전부가 가라앉아 지방경제를 압박하고 있단다.
황 회장은 지방건설·부동산시장붕괴에 따른 후유증도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을 비롯한 건자재시장은 물론 건설·부동산 인력시장, 설계, 인테리어 등 관련업종들이 동시에 어려워질 것으로 예견했다. 경남에선 벌써 이런 조짐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경남도에 건설면허 반납건수가 늘고 있어요. 사무실을 꾸려갈 수 없을 만큼 건설공사업무가 줄고 이윤마저 바닥이기 때문이죠. 일거리를 따내도 최저가낙찰제 입찰로 남는 게 없긴 마찬가집니다. 대기업은 그런 대로 버티지만 자금과 조직이 열세인 중소건설사는 사정이 다릅니다.”
황 회장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선 건설산업기본법을 비롯, 건설관계법을 손질해서 덤핑하도급공사로 지탱하는 중소전문건설사들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고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힘들고 밑에서 실질적으로 일하고도 빛을 못 보는 전문건설사들만 다 죽게 된다는 것.
얼마 전 문을 닫은 D산업의 예를 들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공사 등을 해오면서 연간 100억 원대의 실적을 올린 이 회사가 중소업체에 불리한 입찰제와 경기한파 회오리에 못 이겨 부도를 내고 무너졌다.
중소건설사들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장애물은 건설일용근로자들을 위한 4대 보험료부담. 인건비를 줄 때 떼어 내도록 돼있는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연금보험의 보험료를 사업주가 몽땅 물고 있어 부담이 엄청난 실정이다.
“4대 보험료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인건비에서 일정율을 원천징수토록 돼있지만 현실은 그렇잖습니다. 근로자몫의 보험료를 떼려면 일을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사업주가 내고 있어요. 잘못된 건 줄 알지만 현실이 그러니 어쩝니까.”
사업주가 내는 건설일용근로자들의 4대 보험료는 인건비의 17.66∼18.26%로 그만큼 자금부담이 느는 셈이란다. 그러다 보니 공사인부를 써도 당국에 신고를 않고 보험료도 내지 않는 업체가 수두룩하다. 자금부담을 덜고 신고납부 등 행정절차도 피해보자는 계산에서다.
황 회장은 건설인력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3D(힘들고 더럽고 어려운)업종근무를 꺼리는 추세여서 울며 겨자 먹기로 외국인들을 쓰지만 소속 국가제한과 인건비부담으로 갈수록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중국, 태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만 건설사에서 쓸 수 있게 돼있어 수급이 안 맞을 땐 몸값이 뛰고 사람 구하기가 쉽잖다는 소리다.
전문건설업체들의 애로는 이밖에도 많다. 자재난에다 자재값 상승, 경영자금난, 우수기술인력 확보난, 수주물량감소, 대기업위주의 건설시장, 선진신기술도입 어려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애로를 이겨내는 묘책은 없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황 회장 답변은 간단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각종 규제와 법을 풀고 시중 뭉칫돈이 갈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는 것. 전문건설사와 같은 약자입장에 서는 건설행정과 업무관행도 아쉽다고 했다.
“국내 경기부양은 건설·부동산시장과 직결돼 있습니다. 부동산 쪽에 돈이 돌도록 규제 단속을 완화하고 가격안정을 위한 정책마련이 뒤따라야 합니다. 일부 ‘있는 사람들’의 가수요현상을 전국민들이 투기하는 것으로 봐선 안되고요. 특히 지방은 해당 안됩니다.”
황 회장은 또 국민소득수준에 맞는 집짓기를 해야 하는데도 분에 넘치는 시공으로 아파트분양가를 높이는 건설사들의 문제도 꼬집었다. 비싼 수입자재사용과 하지 않아도 될 시설이나 공사를 하는 사례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모성 외국자재사용을 자제하면서 우리수준에 맞는 알뜰시공이 요구된다는 견해다.
그는 또 “정부가 무조건 겁주지 말고 부동자금이 제 길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지혜와 정책이 아쉽다”며 장롱 속 뭉칫돈이 햇볕을 보는 예측가능한 사회분위기조성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황한석 회장의 발자취와 현주소>
경남도회장 연임…업무영역 확대 꾀해
전문건설업 인식제고, 애로해결도 앞장
1986년 지질회사창업 경남 선두권 달려
중앙대석사학위, 부산대 박사과정 마쳐
황한석 회장이 대한전문건설협회 경남도회에 몸담은 건 올해로 4년째다. 2000년 9월 27일 임시총회 때 제6대 회장에 취임하고서부터다. 이어 지난해 9월 26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7대 회장으로 추대된 것.
황 회장이 협회와 인연을 맺은 건 이보다 훨씬 앞선다. 1989년 대한전문건설협회 보링그라우팅공사업협의회 경남지부 회장을 맡은 게 계기가 됐다. 1995년 한국지질조사탐사업협동조합 이사, 1997년 대한전문건설협의회 창원시 회장을 맡으면서 본격화 됐다.
“하도급업자로 건설업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홀대 당했으나 이젠 많이 달라져 회원들 위상이 향상됐다고 할까요. 전문건설인으로서 당당히 대접받으니 자긍심도 생깁니다.”
그가 대한전문건설협회 경남도회를 맡으면서 전문건설인들의 권익보호와 위상찾기에 온힘을 쏟아왔다. 협회관련 기관·단체와 언론매체들을 꾸준히 접촉, 전문건설인들의 인식제고와 업무영역 넓히기에 매달렸다.
“그런 가운데 공사수주량이 늘어났죠. 공사량의 30%는 경남지역 전문건설사에 주도록 건의, 나름대로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아직 만족스런 결과는 아니지만….”
황 회장은 서울·부산지역 전문건설사들이 차지했던 경남지역 건설공사물량의 일정부분만큼은 연고지 회사들이 맡아야한다며 이를 제도화하는 데 앞장설 각오라고 했다. 지역공사는 지역업체가 맡는 게 현지실정도 잘 알고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시각이다.
“경남도회 소속 회원사들의 업무영역이 황 회장 취임전보다 많이 넓어졌다”는 게 1986년부터 몸담아오면서 사무처를 총괄하고 있는 김창환 처장(52)의 귀띔이다.
비영리단체인 경남도회는 1975년 말 창립됐고 회원사 수는 1870여 개. 사무실은 창원시 팔용동 31∼1번지 자체건물인 전문건설회관 3층에 있다. 사무처요원은 10명.
황 회장은 또 회원봉사사업의 하나로 공동구매사업을 두 번 펼쳐 비용부담을 줄였다. 회원사에서 필요한 컴퓨터, 카메라 등의 장비를 일괄적으로 사서 단가를 떨어뜨린 것. 산학협동체결학교인 마산 창신대, 창원전문대와의 건설관련기술서적발행도 눈길을 끈다. <실무측량학>, <건설인을 위한 콘크리트 해설> <건설인을 위한 토목·구조물의 설계> 단행본이 그것이다.
“경남도회 업무효율화 차원에서 사업계획 및 예산편성소위원회, 물품구매소위원회, 협회발전대책소위원회를 신설운영중이며 경남지역 20개 시·군협의회를 둬 회원애로사항을 듣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황 회장은 부대사업으로 경노사상을 높이기 위한 노인게이트볼대회도 열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60세 이상 1000여명이 참석하는 이 대회는 올해로 9회 째로 지난 4월 21일 창녕군 공설운동장에서 김종규 창녕군수 등과 20개 시·군 소속 120개 팀이 참가해 대성황을 이뤘다.
그는 경남도회 올해 추진계획으로 △회원공사물량을 지난해 2조 5000억 원에서 3조 원으로 늘리고 △부족한 건설인력 해외연수생 대체방안마련 △홈페이지를 통한 정보의 신속제공 및 증명서 인터넷발급 △입찰수수료 면제 등을 잡아놓고 있다.
1946년 경남 창녕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남지중(11회), 마산고(22회), 부산대 지질학과(1965학번)를 나왔다. 대학졸업 후 농업진흥공사, 동력자원개발연구소,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공직경험을 쌓았고 1982년 산업응용지질기술사자격을 따 (주)동아지질, 성하지질공업(주) 등기업에서도 업무를 익혀 1986년 지금의 (주)삼중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삼중엔지니어링은 토공사, 보링그라우팅공사 전문회사로 지질조사, 탐사, 지반보강공사, 흙막이공사, 계측, 터널·지하철공사, 고속철도공사 등을 하고 있다. 토공, 철근콘크리트, 보링, 포장을 포함해 7개 업종을 운영중이며 경남도내 업체 중 선두권이다.
학구열이 강해 1991년 2월 중앙대 건설대학원에서 건설공학 석사학위를 딴 그는 부산대 자연과학대학원에서 지질학 박사과정을 끝내고 논문을 준비중이다. 창녕군 영산면 출신 부인(신희숙·56)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바둑(아마 1급)을 즐기며 등산과 골프로 건강을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