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후배님과 15년 만에 해후

[차여사]

한동안 을씨년스런 날씨가 계속됐다. 겨울을 방불케 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초등학교 후배님과 15년 만의 해후를 축복이나 하듯 
청명한 가을 하늘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준다.

한 해 후배 김선생님과 만날 생각을 하니 며칠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
김선생님이 풍기북부국민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 우리 큰딸은 4학년, 둘째 딸은 2학년이었다.
딸들은 기대 이상으로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착하게 자라주었다. 
그때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황금기였다.
엄마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원 없이 해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김선생님과 인연이 되었다.

풍기 초등학교 전체 졸업생이 주축이 되어 고향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풍우회' 카페가 있다.
우리가 서울 살다가 단양에서 둥지를 틀고 펜션을 시작한 초창기. 카페지기를 비롯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몇 명 회원들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을 때의 추억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문득문득 찐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튿날! 후배님이 합류했다. 아침 우리 거실에서 소백산을 바라보며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선구자>를 성악가 못지않게 불렀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김선생님이 지금도 고향인 풍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애쓰고 봉사하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귀감이 된다.
지식이 풍부하고 지성과 품격을 두루 갖춘 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 존경받는 후배다.

오늘 김선생님이 풍기에서 명품 한우를 사가지고 방문한다고 하니 새벽부터 분주해진다.
텃밭 배추를 뽑아 겉절이하고, 고기와 함께 먹을 반찬을 준비한다.
며칠 전 남편의 막역지우가 보낸 누룽지 쌀로 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준비한다.
11시 약속시간이라 그 시간이 초조하게 기다려진다.
막상 만나니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말해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함께 오신 분은 예상치도 못한 홍인숙 가수님을 소개한다.
올해로 가수활동 20년째란다. 선행과 봉사의 가수로 영남 일대에선 최고의 가수지만 
겸손한 가수라면서 칭찬에 침이 마른다.
또 한분은 홍인숙 가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메니저 역할을 하는 분이다.

김선생님은 특수부위 쇠고기를 충분히 먹을 만큼 넉넉하게 사왔다.
초면인 홍인숙 가수님은 고급 와인과 물티슈 한 박스를, 메니저 분은 비싼 고급 빵을 한보따리 사왔다.
처음 방문하는 집에 과한 선물을 가지고 와서 김선생님에게도 그분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김선생님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할배가 어찌 저런 미모가 뛰어난 유명한 가수와 동행할 수 있겠냐고
음악이 좋긴 하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사실이 그랬다...ㅎㅎ

같이 오신 분들은 초면이지만 어찌 구면처럼 편안하고 낯설지 않다.
두 분은 손님이 아닌 친구처럼 점심준비를 도와준다.
김선생님도 청소해놓은 야외 바베큐장에 금새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준다. 참 훈훈한 풍경이다.
전자 오르간을 설치 해놓고 작은 음악회를 연다. 많은 관중이 모인 것처럼 정식으로 인사말을 한다.
공식적인 것 같은 이런 모임은 처음이다.
잠시만 봐도 후배님은 정도를 걸으면서 활동적이다. 젊은 사람을 능가하는 열정, 
음악을 즐기는 여유에서 승리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잠시 후 숯불을 피워놓고 소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한다.
그동안 궁금했던 고향 사람들의 소식과 유쾌한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
작은 음악회를 빛내기 위해 김선생님이 노래를 부르는데 황혼의 나이라도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다.
능숙하게 전자 오르간을 치면서 3곡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나 하나의 사랑> <청실 홍실> 임영웅의<별빛 같은 사랑>이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얼마나 잘 부르는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눈물이 난다.

다음은 홍인숙 가수가 <부석사의 밤>을 부른다.
전국의 유명한 가요제에서 큰상을 휩쓸었다더니 가창력이 보통이 아니다.
다음은 김선생님과 홍인숙 가수님이 우리의 고귀한 만남을 위해 노사연의 <만남 >이란
노래를 달콤한 듀엣으로 부른다.
피날레 곡으로 김선생님이 김동규& 조수미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를 열창한다.
이렇게 어울림에서의 작은 음악회를 마무리한다.

후배님과의 소수의 사람들과의 만남이지만 전자 오르간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선율과
노래가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보기드문 일이다.
두분의 노래는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하게 채워준다.
오래 만에 만난 김선생님과 할 말도 많고, 그간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하지만 3시가 넘어서 금쪽같은 손자가 치과에 예약이 있어 가야 된다면서 아쉬운 작별을했다.
오늘의 이 자리, 오래도록 우리 부부의 가슴에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