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최근 러시아 내 공식 매장의 문을 모두 닫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시장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가전제품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힌 결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소니, 독일의 보쉬 등 그동안 러시아 시장을 장악했던 주요 가전및 전자 제품 브랜드가 밀려나고, 그 자리를 중국과 튀르키예(터키) 제품이 채운 것이다.
베도메스티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LG전자와 소니, 보쉬 등 유명 가전및 전자 브랜드의 러시아 공식 매장은 2월 말 폐업을 앞두고 재고 상품 정리에 들어갔다. 이들 브랜드가 철수한 매장에는 중국과 터키 상품이 입점할 것이라고 현지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가 2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LG전자와 소니 등은 2월 초부터 모스크바에서 매장 문을 닫기 시작했다. LG전자는 모스크바에 있는 공식 매장 4곳 등 현지 운영 지점을 모두 폐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로의 제품 수출은 물론, 현지 공장까지 가동이 중단되면서 매장을 채울 제품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소니 측도 "그동안 인구 백만 도시에는 빠짐없이 운영돼온 '소니 센터'가 서방의 대러 제재 이후 모두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보쉬(Bosch)도 단일 브랜드 매장(공식 매장)의 철수에 들어갔다.
모스크바 아피몰 시티 쇼핑센터(아래)와 수리 중인 LG 매장/사진출처:홈피, vK 계정
모스크바에서 LG전자를 대표하는 매장으로 알려진 '아피몰 시티'(Афимолл Сити) 쇼핑센터의 매장은 최근 문을 닫았다. 아피몰 시티 홈페이지에 따르면 LG 전자 매장은 수리 중이다. 터키의 가전제품 제조업체 아첼릭(Arcelik) 산하 브랜드 그룬딕(Grundig)이 입점하기 위해서다. '아피몰 시티' 쇼핑센터는 모스크바 도심에 자리잡은 최고의 복합 쇼핑몰 중 하나다. 여행객들의 쇼핑 천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이 곳에 공식 매장을 운영중이다.
1980년대 소련(러시아)에 진출한 LG전자는 1997년 모스크바에 R&D센터를, 2006년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가전·TV 생산공장을 건설하면서 러시아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했다. 삼성전자와 함께 러시아 '국민 브랜드'를 양분할 만큼 탄탄한 브랜드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LG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시작되면서 정상적인 마케팅 활동을 접었다. 2022년 3월 중순부터 러시아 시장으로의 제품 공급을 중단하고, 같은 해 8월부터는 루자 공장의 생산 시설도 멈춰 세웠다.
LG전자 루자공장/사진출처:홈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매장을 지금까지 유지한 것은 장기 임대 계약 때문이다. 중도에 임대 계약을 해지할 경우 발생할 막대한 위약금을 물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매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의 정상적인 수급이 불가능하고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LG전자 등 외국 가전 브랜드는 더 이상 매장 운영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물론, LG전자 등 가전 제품 매장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파벨 류린 러시아 쇼핑센터협의회 부회장은 "서방의 유명 소매업체들이 러시아 시장을 떠난 지 2년 만에 쇼핑센터에서 러시아 패션 기업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평균 20%p 증가했다"고 밝혔다. 현지 부동산 컨설팅 '니콜라이어즈'(Nikoliers)의 파트너 안나 니칸드로바는 “지난 2년간 쇼핑 센터의 주요 매장은 러시아 소매업체로 대전환이 일어났다"며 "모스크바 지역 및 광역 쇼핑센터 내 해외 브랜드 매장 점유율은 2021년 말 50.3%에서 2023년 말 36.4%로 13.9%p 감소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는 2022년 3월 러시아 내 매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한 뒤, 같은 해 6월, 러시아 현지 공장 4곳의 매각을 추진하는 한편, 직원을 정리하고 남은 제품의 처분하는 등 철수 작업을 시작했다. IKEA 공장은 현지 주방 용품 전문업체 'Slotex'와 목재 가공업체 'Luzales'로 넘어갔다. 그리고 IKEA의 짝퉁 브랜드로 여겨지는 '스웨드 하우스'가 2023년 4월 모스크바에 등장했다.
스웨드 하우스는 벨라루스의 가구 회사다. IKEA 처럼 파란색과 노란색을 사용한 새로운 로고를 선보이고, IKEA 가구·인형과 형태가 비슷한 제품을 매장에 진열했다. 스웨드 하우스 관계자는 “판매 제품군의 15~20%는 이케아의 원제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7일 러시아 특허청에 IKEA(러시아 상호 ИКЕА) 상표등록이 출연된 것으로 밝혀졌다. 어떤 형식으로든 러시아에 IKEA 브랜드가 다시 등장할 것임을 예고한 것인데, 어떤 방식으로 영업이 재개될지 궁금하다.
IKEA를 모방한 러시아 브랜드 스웨드 하우수/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IKEA/사진출처:홈피
공식 매장을 닫은 LG전자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현지 업체에게 매각한 현대차의 뒤를 따를지 주목된다. 현대차 상트 공장을 인수한 러시아 업체는 기존의 현대차 브랜드 '솔라리스'를 그대로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도 앞으로 루자공장을 현지 업체에 넘기고, 인근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으로 생산 기지를 옮겨 '병행수입' 방식으로 러시아 시장을 당분간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우즈베키스탄 최대 가전업체 아르텔(Artel)에서 위탁 생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