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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그느름도 오래간만이고, 나눔 글은 더 오래간만이네요. 갈무리 모임의 나눔을 잘 정리해 보고자 진작에 나눔 글을 써 보려 했지만, 요즘도 이래저래 육아와 일에 바빠 새벽까지 일하기 일쑤이고, 중등교재 원고도 쓰고 있어 새벽까지 글을 쓰는게 영 지긋지긋하여 쉽게 시작하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내 인생에 중요한 기점들을 그느름에서 나눈 나눔 글들로 잘 정리하며 왔기에 이번 그느름 갈무리 모임의 나눔도 잘 정리하여 가보고자 퇴근 길에 글을 적어 봅니다. 욕심은 많아서 머릿속이 복잡복잡한데, 잘 정리가 되려나.. 어디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
요즘 쓰고 있다는 중등교재 원고는 완자라는 교재입니다. 2022년에 교육과정 전체가 개편되어, 오투라는 잘 팔리는 교재는 벌써 하나 만들었고, 이번에는 완자라는 교재를 새로 만드는 중입니다. 오투는 학원교재로 쓰이는 책이고, 완자는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입니다. 중등에서는 학원교재인 오투가 월등히 잘 팔리지만 저는 어째서인지 완자에 더 열과 성의를 다해서 만들게 됩니다. 아무래도 완자라는 책이 오투보다 여러 상황 속에서 힘겹게 혼자 공부하고 있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 나의 일에 대한 소명이 완자에 더 잘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의 흐름을 따라 가다가 그느름 나눔글을 정리해야겠단 각오가 생겼습니다. 나의 이러한 태도가 그느름과 함께한 시간 속에 정립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느름 모임을 시작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그때는 아마 제가 군인인 시절이었을 겁니다.
대체 에너지 연구원으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아직 진로에 대한 고민을 유보한 채로 군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학사장교를 택한 까닭은 군대를 가야하는 시점에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는 선택지였기 때문입니다. 학생 때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르치는 은사를 활용하여 학원 강사로 알바를 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의미를 느끼며 즐겁게 임했지만 현실적인 필요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가르치는 일을 나의 소명으로까지 여기진 못했습니다. 또한 나의 자아가 스스로 정돈되지 못하여 가르치는 자로서 나 자신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남아돈다는 군대에서 월급으로 잘 먹고, 잘 살며 여유롭게 나를 잘 정돈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전까진 느껴본 적 없던 경제적 여유로움은, 역시나 나를 돌아볼 여유를 허락해 주었고, 군대라는 고립된 환경이 주는 극단적인 외로움은 나로 하여금 더 깊이 성찰할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상담도 받게 되었습니다. (잠깐 사설이지만 당시 제 상담가 선생님이 요새 제법 잘나가시나 봅니다. 막 어디서 강연회 하는 것도 보고, 유튜브 영상에도 뜨고 하는 걸 보니 참 반가웠습니다.) 또한 그때 내 주변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지 깨닫고, 그들이 애정과 사랑을 담아 지지해주는 힘으로 성찰 나눔 글도 정리하며 나를 잘 정돈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기간동안 내 가족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내가 가족들과 웃으며 잘 지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군에서 제대했습니다. 군에 있는 동안 교육이라는 영역에 있는 나의 소명에 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떳떳하지 못했던 나의 자아가 정돈되어 내가 아직 꽃피지 못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 저의 교육과 관련된 걸음은 학원 강사를 해본 경험 밖에 없기에, 그 다음 걸음을 이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장의 생활비를 위해 다시 학원강사를 시작했고, 책임감 있게 나의 걸음을 다하려던 때에 성민이로부터 지금 회사의 신입사원모집요강을 받았습니다. 지금 현장에서 열심히 내 몫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교육계의 큰 물(?)을 접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에 지원을 했고, 덜컥 붙어버렸습니다. 그때는 학원강사를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밖에 안되었던 시기였기에 비상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새로 만나기 시작했던 학생들을 책임감 있게 만나 가 볼까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때에 나를 설득하며 비상에 가라고 했던 그느름 식구들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구체적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교재 개발자로 지금 회사에 입사했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재 개발과 교과서 개발을 하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추구하는 물리학 교육계에 나름 잔뼈가 굵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교재와 교과서 개발자로 5년의 경력을 쌓은 것이지만 그 동안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저 회사의 월급을 받으며 회사가 시키는 책 개발 업무를 한 것이 아니라, 이 안에 내게 주어진 소명을 찾으며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교재는 어떻게 보면 사교육의 전유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가 학생 때 겪었듯, 넉넉한 여유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비교적 많이 값싸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기득권이 부를 되물림하는 교육이라는 세계에서 누구나 이 2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조금이라도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라며 치열하게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원교재로 쓰이는 책보다 학생이 혼자 공부하는 책에 더 열과 성의를 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느름에서 각자의 직업적 영역에 대해 제가 이러한 고민을 나눴던 글들도 여전히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그때의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인생의 반려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서 당연히 누리고 받아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아이들을 섬기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이라는 제 영역에서 지금은 교육 과정을 구체적으로 교과서에 적용하고 이를 반영한 교재를 만들고 있지만, 이렇게 쌓인 경험들로 그녀가 만나는 아이들을 섬길 수 있기를 또 꿈꾸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가실지 아직은 조금 모호하지만 지금 제게 주어진 몫을 담담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 진짜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와 아내를 닮은 자녀를 만나 함께 사는 것. 저는 이미 꿈을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미 꿈을 이루었다 말하지만, 이 꿈이 날로날로 더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이 많아진 나는 또 꿈을 꿉니다. 내가 이룬 가정이 더 넓어지며 더 풍성한 가족을 이루어 갑니다. 그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충만함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23) 아멘.
뭐..... 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고... 뭔소리야? 싶은 그런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구와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느냐?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지금은 없습니다'입니다. 등록해서 출석하고 있는 교회도 아직 없고, 주기적으로 만남은 갖는 관계도 없습니다. 속 터놓고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관계, 그런 사람이 전혀 없냐?하면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장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또 어떠한 만남들을 열어주실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기다린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중앙교회에도 예배뿐이지만 나아가 보고, 이런저런 만남들도 가지며 그 순간순간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어떠한 장이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지.
젊은 시절 꿈꾸고 스스로 소망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여 게으르게 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회사의 일이 많다고, 육아에 지쳐서 여유가 없다고 핑계대며 주저 앉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그런 생각들이 전혀 안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쉽지가 않습니다. 다들 마찬가지겠죠.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치열하게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이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젊지 않고, 정말 늙어가는 것일까요?
민솔이가 크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듭니다. 정말 변화가 빠르고,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일주일은 말할 것도 없고, 예비군 2박3일 갔다와도 그 사이에 아이가 커 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성장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구나..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그에 반해 나는, 그대로입니다. 아니 조금은 더 늙어 있겠죠. 민솔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이제는 내가 늙는구나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몸이 그렇게 느끼고, 생각도, 마음도 변화하고 성장하기 보다는 점점 더 굳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디 하나 다쳐도 잘 낫지 않고, 피로도 잘 풀리지 않습니다. 조금은 세상이 흐뿌옇게 보이는 제 눈은 이제 점점 더 흐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아이가 크는 것을 지켜보는 댓가로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트러쉬라는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었습니다. 결혼 전에 봤었고, 그 때는 고아라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천재성(은혜)을 누리며 꿈을 이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느꼈었습니다. 민솔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내와 함께 어거스트러쉬를 다시 보았습니다. 전혀 다른 지점들이 보여서 더 인상 깊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트러쉬 주인공 아이의 부모의 삶이 보입니다. 아빠는 밴드를 하며 음악의 꿈을 쫓아 살았지만, 자신의 현실이라는 벽 앞에 무너져 일반 직장인의 삶을 삽니다. 그렇지만 다시금 자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타를 잡고 음악을 시작합니다. 엄마는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에서 정해진 삶을 잘 살아오다가 하루의 일탈로 아이가 생겼지만, 그 완벽한 환경이 그 아이를 빼았고 감추어 다시금 주체성 없는 삶을 삽니다. 그러다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 아이를 찾아 나서며 주체적인 삶을 삽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환경에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혜(천재성)를 꽃 피우며 삽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 세 사람이 모두 아이의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만납니다.
이전에 나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아이의 성장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부모는 그저 아이의 부모로 주인공 아이의 환경을 그려주는 요소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이의 아빠도, 엄마도 자신의 삶과 그 속에서 성숙의 여정이 있었습니다. 결국 각자의 삶이 성숙하며 나아가 모두 함께 만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아빠와 모르는 사람으로 만나 함께 기타를 합주하는 장면을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이가 (단지 공원에서 만난 뮤지션 아저씨였던)아빠에게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아빠는 아빠의 삶을 살아오며 자신이 고민하고 느끼며 스스로 답을 내린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줍니다. 그리고 아이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어 자기가 갇혀 있던 곳을 탈출합니다. 아빠에게도 아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저 아이를 키우는 역할로 더이상 나의 성장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늙어가는 그 시간들이 또한 나를 구성해갈 것입니다. 어쩌면 많이 더디고, 변화가 없는 시간들도 쌓여서 그 시간들을 버텨낸 내가 되어 갈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더 나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도태되는 것이다'라는 명제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 때 우리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더이상 변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라는 명제에 잡아 먹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발버둥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철 나무는 더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 시간을 버티기만 하지만, 다시금 여름이 오고, 또 겨울이 지나며 그저 묵묵히 살아갑니다. 아무런 변화없이 살아가는 시간처럼 느낄지라도 그 시간을 벼텨서 내가 살아 있다면 그 시간 또한 나의 삶으로 더 나를 단단하게 성장해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무의 나이테는 여름의 시간보다 겨울의 시간을 더 진하게 남깁니다.
뭐... 이렇게저렇게 생각들을 그냥 펼쳐보았습니다. 그느름 갈무리를 생각하며 또 어거스트러쉬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사실 처음 갈무리 모임의 질문을 보고서는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흩어지게 되고, 점점 서로가 옅어지며 잊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힘이 빠지고, 김이 셌습니다. 그러나 이 나눔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점점 바뀌었습니다. 영화 속 아빠도, 엄마도, 아이도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어 결국 다시금 만납니다. 그느름 식구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낸 뒤에 다시금 만났을 때 그 시간들이 쌓인 새로운 존재들로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나눔 글은 끝입니다. 쓰다보니 역시나 또 꽤나 길어졌습니다. 글을 퇴고하고, 교정도 보고, 손도 보고 싶지만,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이 두서없는 중구난방의 구조를 손대려니 엄두가 안나기도 합니다. 오늘도 교재원고를 새벽까지 써야하는데 지금껏 이글을 썼으니 나는 망했습니다. 그래도 나눔 글을 공유하면 글 잘 쓴다고, 글이 재밌다고 칭찬도 많이 들었는데, 이 글은 왜 이럴까요?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그런가.. 하긴 예전에는 신영복 선생님처럼 글빨 끝내주는 분들의 글도 많이 읽고 막 그랬는데, 요즘은 책도 거의 못 보고(?안보고?) 뭐... 글빨이 바닥을 쳐도 할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도 듭니다. 내 나눔 글이 글이 재밌게 잘 읽혔던 것은 글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게 쏟아 주었던 글을 읽는 사람의 애정과 관심 덕분이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이런 글도 그냥 그러려니 해주십쇼. 아마 더 수정할 여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