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1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호세아의 사랑
호 3:1~5
<성경 통독과 실생활>
제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 살아가고 있는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통독하는 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성경 통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번을 읽고 나면 다시 창세기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나가는 대목과 유사한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창세기 22장을 읽어나가는 중이었습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대목입니다.
회사에 출근하여 22장을 절반쯤 읽고 퇴근하여 집에 왔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금종이가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빠 오셨어요?” 하면서 일어섭니다.
일어서는 녀석을 내가 포옹해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로 퍽하고 쓰러졌습니다.
얼른 붙잡아 일으키는데 금종이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종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당시 병원비가 꽤 나왔습니다.
검사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이런 현상을 몇 차례 겪었습니다.
다음부터 성경에서 누군가 고난을 겪는 대목을 만나면 빨리 읽고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욥기를 읽을 때가 가장 두려웠습니다.
욥기는 42장이나 됩니다. 아무리 빨리 읽어도 하루 만에 읽을 수가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지나?’ 하면서 빨리빨리 읽었습니다.
그 무렵 미국에서 황의정 목사가 왔습니다.
미국에서 오면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서 얼굴도 못 보고 가는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미국에 있는 동생과 경부고속도로 서울에 있는 만남의 광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황의정 목사가 친구고 목사님을 한 분 데리고 와서 같이 만났습니다.
셋이서 차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무렵 제가 김장환 목사님 설교를 녹취 편집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장로교 목사님인 문동학 목사님의 책을 편집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성경 통독 중에 겪는 이러한 현상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중에 대단히 위대한 책을 쓰실 것 같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초면의 목사님이 그렇게 말할 때,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설마~”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내가 무슨 책을 쓸 거라고 이렇게 말하지?
오늘 그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되 사오기, 리뎀션>
호세아서 주제는 “심판과 사랑”입니다.
호세아를 우리는 사랑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진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이 호세아입니다.
‘사랑이 뭔지 알고 싶다.’ 그러면 호세아를 읽어야 합니다.
호세아 3장은 1절부터 5절까지 비교적 짧은 내용으로 한 장을 이룹니다.
3장의 주제는 “되사옴”입니다.
영어로 리뎀션(redemption)입니다. 다시 사 온다는 뜻입니다.
☞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무로 배를 깎아주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소나무 껍질이나 참나무 껍질로 배 모양을 깎았습니다.
만들다 어려우면 형이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것을 개울가에 나가서 물에 띄우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면, 배가 멀리 가 버립니다.
따라가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배를 건넛마을 아이가 가지고 놀고 있어요! 아무리 봐도 자기 것입니다.
“이거 내 거야!” 하고 뺏으려 합니다.
“안돼! 이거 우리 아빠가 나에게 준 거야!” 자기 아버지가 주었답니다.
물에 떠내려간 것을 아랫마을에서 건져 내어 자기 아들에게 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배는 누구의 배입니까?
원래 깎아서 만든 내 것입니까? 아니면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아이 것입니까?
그 아이 손에 있으니 내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 아이 것입니다.
나는 억울해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꼭 되찾고 싶냐고 묻습니다. 나는 꼭 갖고 되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했을까요?
아버지는 그 아이를 찾아갔습니다.
“얘야 아저씨가 사탕 사 먹으라고 천 원 줄게, 이 배를 나에게 줄래?”
배를 가지고 있던 소년은 사탕값을 받고 배를 내줬습니다.
아버지는 이 배를 천 원을 주고 다시 사 오셨습니다. 그 배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리뎀션입니다.
“다시 사 왔다!” 리뎀션!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사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사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탄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사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치 깎아 만든 배, 주인이 바뀌듯, 원주인의 소유에서 떠납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탄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소유가 된 우리를 되찾으시고자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를 다시 사 오십니다!
값을 내고 다시 사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값을 내고 우리를 사 오셨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십자가에 내어주고 사 오셨습니다.
이것이 리뎀션입니다. 되사왔다.
이것을 다른 말로 ‘대속’이라고 합니다. 또 ‘속량’이라고 합니다.
‘대속’ 이 말은 ‘대신 납부했다’ 이 말입니다.
배를 잃어버렸는데, 그 배를 다른 아이가 가지고 놉니다.
아버지는 그 배를 되찾아오기 위하여 사탕값 천 원을 냈어요!
잃어버린 배를 찾아오는 데는 사탕값 천원이 들었습니다.
잃어버린 한 생명, 한 영혼을 찾아오는 데는 얼마나 들어야 할까요?
생명, 영혼을 찾아오려면, 생명, 영혼을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 영혼을 십자가 위에 희생하면서, 우리 영혼을 하나님은 되사오셨습니다.
<호세아 비유의 의미>
호세아서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하나님을 떠납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꼬드김에 넘어갑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사탄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합니까?
되사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4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하나님이 많은 기적을 행하시면서 그들을 빼냈습니다.
홍해를 건너 탈출시켰습니다.
마치 내가 깎았던 나무껍질 배, 그 배를 다시 사 온 것처럼 하나님이 사 오셨어요!
그런데 이후 이스라엘은 다시 타락합니다.
다시 물에 떠내려갔어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사탄의 품에 안겨 있어요!
하나님은 포기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사옵니다. 리뎀션~
하나님이 다시 사 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호세아서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기름 부어 세웁니다.
호세아에게 음녀 고멜과 결혼하라고 명령합니다.
호세아는 명령에 순종합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본디 탕녀였습니다. 음녀였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신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반복하여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사탄의 품으로 기어들어갑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그렇게 합니다.
자식을 낳고 살다가 또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따라나갔습니다.
호세아는 그때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뭐라고 응답하십니까?
“돈을 싸 들고 가서 빚을 갚아주고 되찾아와라!” ‘리뎀션’입니다. 할렐루야~
언제까지 되사올까요?
(5절)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이렇게 될 때까지 하나님은 되사오고, 되사오고, 되사옵니다. 할렐루야~
☞ 오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내가 혹시 고멜은 아닌가요?
믿는다 하면서도 걸핏하면 세상 풍조를 따라갑니다. 세상과 짝합니다.
말씀으로 산다 하면서도 세상을 따라갑니다. 고멜이 외간남자를 따라가듯이~
고멜이 바로 나입니다!
그런 나를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생명과 영혼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핏값으로 나를 되사오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되사다가 이 자리에 앉혔습니다. 얼마나 복된 자리입니까?
☞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