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종교적 분위기가 강한 1847년 에밀리가 기독교 여자학교에서 중퇴하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수동적인 당시 소녀들과는 확연히 달랐던 에밀리.
에밀리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오직 시작(詩作)에 몰두하지요.
19세기 미국 청교도 시대에 시를 썼던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일대기를 다룬 이 전기영화는 그녀를 둘러싼 시대의 중요한 억압기제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종교. 종교가 타인에 의해 강요될 때 얼마나 가혹한지 보여주지요.
두 번째는 당대의 성차별적 문화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름도 없이 작품을 발표해야만 했던 에밀리.
"여성 작가는 영원토록 남을 작품을 창작할 수 없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출판사들.
출간을 거부 당한 에밀리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인정 받기 위한 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내면 투쟁과 인내의 기록이었지요.
에밀리는 자신의 삶을 ‘고요한 휴화산 같은 삶(Still Volcano Life)’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마치 에밀리의 삶과 시처럼 고요하고 안정적이어서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곳곳에 깔린 에밀리의 시와 시적 은유는 보는 이의 감정을 세게 두들기네요.
*에밀리는 브라이트병으로 시달리다 눈을 감아요.
브라이트병소변을 만들어내는 신장구조(사구체와 네프론)에 염증이 생기는 병. 사구체신염, 신장염이라고도 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심장이
미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다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지친 새 한 마리 둥지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
- 에밀리 디킨슨 '내가 만약...'
첫댓글 중간중간 보여주는 그 시들이 정말 좋았죠!
예, 참 좋더라구요.
여자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병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