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황제 유선에게 올린 두 편의 출사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첫 번째 글이 "내가 자리를 비워도 나라를 잘 돌봐달라"는 **신임 어린 당부**였다면, 두 번째 글은 첫 번째 실패를 겪은 후 내부 비판론자들에게 올린 **배수의 진을 친 설득**에 가깝습니다. 두 글의 핵심 내용을 명확하게 요약해 드릴게요.
## 1. 전출사표 (前出師表, 227년) — "희망과 당부"
제1차 북벌을 떠나기 직전, 승상으로서 조정을 비워야 하는 제갈량이 젊은 황제 유선에게 올린 글입니다. 국가의 기틀을 잡기 위한 **내정 지침서**에 가깝습니다.
* **현신을 등용하고 간신을 멀리하라:** 곽유지, 비의, 동윤 같은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인재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이들과 상의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라:** 황제 주변의 궁중(궁중)과 조정 관료들이 일하는 부중(부중)에 차별을 두지 말고, 상과 벌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공정해야 정치가 바로 선다고 조언했습니다.
* **북벌의 명분 선포:** 선제 유비가 자신을 세 번 찾았던 '삼고초려'와 숨을 거두며 나라를 맡겼던 '백제성 고탁'을 언급하며, 자신이 목숨을 바쳐 중원을 수복하고 한나라 황실을 부흥시키는 것이 선황에 대한 보답이자 국가의 의무임을 천명했습니다.
## 2. 후출사표 (後出師表, 228년) — "절박함과 의지"
믿었던 마속의 실수로 1차 북벌이 참패(가정 전투)로 끝나자, 촉나라 내부에서는 **"국력도 약한데 왜 자꾸 무리하게 전쟁을 하느냐"**는 회의론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제갈량이 제2차 북벌을 감행하기 전, 전쟁 반대파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올린 글입니다.
*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 (좌대수비 坐待誰備):** 위나라는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 시간이 흐를수록 촉나라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말라 죽느니,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을 때 선제공격을 가해 적을 흔들어야만 살길이 열린다고 논파했습니다.
* **전쟁의 승패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다:** 과거 조조 같은 천재적인 군사 가도 적벽이나 관도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범인이 완벽한 승리가 보장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습니다.
* **비장한 사생관 (국궁진취 사이후이):** 그 유명한 **"몸이 부서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하고, 죽은 뒤에야 멈출 것입니다 (鞠躬盡瘁 死而後已)"**라는 명문장이 여기서 나옵니다. 성공 여부는 하늘에 달렸을지언정, 신하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 **💡 역사적 팁 (전문가의 Nuance):**
> 사실 《후출사표》는 정사 삼국지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훗날 오나라의 기록인 《한진춘추》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후대의 일부 역사학자들은 제갈량의 성격이나 문체와 맞지 않는다며 '가짜 글(위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위 여부를 떠나 **당시 촉나라가 처했던 절박한 현실과 제갈량의 고독한 심경을 이보다 더 잘 대변하는 글은 없다**는 평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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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사표 vs 후출사표 핵심 비교
| 구분 | 전출사표 (1차) | 후출사표 |
|---|---|---|
| **작성 시기** | 227년 (1차 북벌 직전) | 228년 (2차 북벌 직전) |
| **주요 수신자** | 어린 황제 유선 (인사 및 태도 교육) | 조정 내의 전쟁 반대론자들 (설득 및 반박) |
| **핵심 메시지** | "내가 없어도 올바른 정치를 펴라" | "가만히 있으면 망하니 싸워야 한다" |
| **글의 분위기** | 이성적, 체계적, 희망적 | 비장함, 절박함, 결연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