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연중 제34주일 ) 나해
다니엘 7,13-14 묵시록 1,5ㄱㄹ-8 요한 18.33ㄴ-37
2024. 11. 24.
주제 :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바라볼 왕은 누구일까?
오늘은 2024년도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 주간의 첫째 날인 연중 제34주일이고, 오늘 주일을 우리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기억하는 축일로 지냅니다. 세상에서 보거나 만나는 달력과 셈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오늘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을 마치면, 다음 주간부터, 실제로는 한 주간이 지나서 다음에 만나게 될 토요일의 밤시간에 전례를 거행하는 시간에서부터, 우리는 대림절을 말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우리가 고백하는 축제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왕(王)이라는 낱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설명하겠습니까? 손바닥에 왕(王)이라는 글자를 쓰고 세상의 으뜸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행동은 틀림이 없는 올바른 삶이라고 인정하는 소리로 설명할까요? 어떤 모양이든, 왕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의 하나인데, 같은 세상에 살던 사람이 왕이라는 직책을 갖게 되면 그는 세상에서 아주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된다는 뜻이고, 그 직책에 오른 사람을 우리는 함부로 만나지도 못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가까이에 갈 수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의 표현인 왕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사람에게 그렇게 적용할 때, 그렇게 해석하는 의미를 신앙에도 똑같이 적용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똑같이 대하면서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멀고 먼 분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를 똑같이 적용하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실제로 신앙에서 예수님을 왕으로 대하는 의미는 세상에서 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서 만난다면 두려울까요? 아니면 기쁠까요? 현실에서 우리가 대통령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을 만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쉽게 생각하여 내가 준비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도, 나를 만나줄 왕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판단으로 나를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리스도를 왕으로 맞이하는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을 경계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내가 나를 생각하여 세상의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분을 스스럼이 없이 만날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를 돌이켜 볼 거라는 뜻입니다. 결국 그 소리는 내가 만나는 대상이 두렵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 될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면, 나를 창조하신 주님이시고, 나에게 구원자로 다가오신 예수님을 두렵지 않은 자세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은 세상을 대할 때, 넋을 놓고 바라봐도 괜찮은 편안한 내용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대로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불안하고 두려운 내용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불안하게 여기고 두렵게 여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의 삶을 다르게 대할 방법은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왕이나 황제는 아니었지만, 정치권력의 으뜸으로 자기의 모습을 생각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전하는 소리와는 달리 왕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생각하기에 왕이 보여야 할 모습은 고통을 당하는 자이거나 신문(訊問)을 당하는 자가 아니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차원이 다른 대답을 하셨습니다만, 빌라도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한 빌라도는 ‘아뭏튼 당신이 왕이냐?’고 또 물었습니다만, 대화는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빌로도는 자기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할 예수님은 왕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예언서에서 들은 말씀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어린 양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심판자의 모습은 아름다울까요? 우리가 바라는 심판자의 모습은 부드럽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선언하기를 바라겠지만, 심판은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그 선언의 내용을 모르는 일입니다. 다니엘 예언서는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선포한 것입니다만, 그가 맡은 세상은 멸망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다니엘은 선언합니다.
사도 요한이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으로서 세상을 영원 다스리는 영광과 권능이 무궁하기를 바라는 존재였습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하느님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기대하는 세상의 심판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영광을 영원무궁하도록 누리실 뿐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분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과 하느님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기를 청하는 자세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