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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42-52절.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의 반응
1.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42-43절)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유대인들의 요청으로 바울이 다음 안식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거의 모든 시민들이 다 참석했습니다. (44절)
그러자 불신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바울의 말을 반박하고 비방했습니다. (45절)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 가서 전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46-47절)
그러자 예정된 이방인들이 많이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48-49절)
그런데 유대인들이 도시의 유력자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아냈습니다. (50절)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으로 전도하러 갔습니다. (51절)
그러나 비시디아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52절)
42절.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Paul and Barnabas were going out, the people kept begging that these things might be spoken to them the next Sabbath.
그들이 나갈새
Ἐξιόντων δὲ,
having departed then,
‘나갈새’(Ἐξιόντων)는 현재분사로서 계속 나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나가면서’란 뜻입니다.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αὐτῶν παρεκάλουν εἰς τὸ μεταξὺ σάββατον λαληθῆναι αὐτοῖς τὰ ῥήματα ταῦτα.
they were begging on the next sabbath to be spoken to them the words of these
직역하면, ‘다음 안식일에 이 말씀들을 그들에게 말해주도록 그들이 요청했다’는 뜻입니다.
’말해주도록‘(λαλη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spoken) ‘말해지도록’이란 뜻이고, 반드시 말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청했다’(παρεκάλ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begging) ‘요청하기 시작했다’(began to beg)는 뜻입니다.
1. ‘그들이 나갈새’란 바울과 바나바가 회당에서 나간 것을 가리킵니다.
2. 바울의 설교를 들은 회당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또 설교를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지금까지 유대교인들에게 율법주의 설교를 듣다가 복음주의 설교를 들으니, 다음 주일에도 또 설교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다음 주일에 또 나오게 됩니다.
복음은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3. 유대교 율법주의는 정죄하고, 부담의 짐을 져주고, 종을 삼으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주의는 죄 용서를 해주며, 의롭다함을 얻게 해주며,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주며, 결국 영생을 줍니다.
43절.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hen the meeting of the synagogue had broken up, many of the Jews and of the God-fearing proselytes followed Paul and Barnabas, who, speaking to them, were urging them to continue in the grace of God.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λυθείσης δὲ τῆς συναγωγῆς
Having broken up then the synagogue
‘끝난 후에’(λυθείση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roken up) 확실히 회당이 해산된 것을 가리킵니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ἠκολούθησαν πολλοὶ τῶν Ἰουδαίων καὶ τῶν σεβομένων προσηλύτων τῷ Παύλῳ καὶ τῷ Βαρνάβᾳ,
followed many of the Jews and of the worshiping converts Paul and Barnabas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σεβομένων προσηλύτων)에서 앞의 단어는 ‘경건한’(devout)이란 뜻이고, 뒤의 단어는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proselytes)을 가리킵니다.
‘경건한’(σεβομένων)은 현재분사로서(worshiping) ‘예배하는’이란 말인데, ‘경건한’(devout)이란 뜻입니다.
‘따르니’(ἠκολούθ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followed) 확실하게 따른 것을 뜻합니다.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οἵτινες προσλαλοῦντες αὐτοῖς, ἔπειθον αὐτοὺς προσμένειν τῇ χάριτι τοῦ Θεοῦ.
who speaking to them, kept persuading them to continue in the grace of the God
직역하면 ‘그들이 그들과 말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 있으라고 그들을 계속 설득했다’는 뜻입니다.
‘말하고’(προσλαλ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peaking) 계속 말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있으라’(προσμένειν)는 부정사형 동사인데(to continue) 원형(προσμένω)은 ‘향하여’(toward)란 접두어(πρός)와 ‘머무르다’(remain)는 동사(μένω)의 합성어로서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합니다.
‘권하니라’(ἔπειθον)는 미완료과거로서(kept persuading) 계속 권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경건한 사람들’이란 아직 유대교에 입교하지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여한 사람을 가리키고, ‘입교한 사람들’이란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고, 유대교에 입교 개종자들(proselytes)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란 이방인으로서 이미 할례를 받고, 회당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즉 유대교인들과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전향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기독교 복음으로 전향했다는 것입니다.
2. 더불어 말했다는 것은 바울이 설교한 복음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즉 회당에서는 설교식으로 일방적으로 선포했지만, 예배가 끝나고서는 성경 공부식으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는 뜻입니다.
3.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한 사람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자꾸 듣지 않으면, 율법주의적인 생각, 정죄의식, 싸우고자 하는 감정이 자꾸 듭니다.
그래서 항상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한 것입니다.
4. ‘바울과 바나바’라고 바울을 앞세운 것은 바울이 구브로 섬에서 서기오 바울 총독을 믿게 했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로 많은 사람을 믿게 함으로써, 이제는 바울의 위치가 바나바보다 확실히 더 우위에 서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44절.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next Sabbath nearly the whole city assembled to hear the word of the Lord.
그 다음 안식일에는
Τῷ δὲ ἐρχομένῳ σαββάτῳ,
on the now coming sabbath,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σχεδὸν πᾶσα ἡ πόλις συνήχθη ἀκοῦσαι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almost all the city was gathered together to hear the word of the God
‘듣고자 하여’(ἀκοῦ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hear) 확실히 듣고자 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모이니’(συνήχ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gathered together) 확실하게 다 모여든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한 주일이 지난 후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돌아가서 온 성 사람들에게 복음 이야기를 다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한번 가보자고 해서 온 시민들이 거의 다 왔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기쁜 소식은 누룩처럼 번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2.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들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기적을 베풀었다거나 병자를 고쳤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부활과 영생을 얻으며, 은혜 생활을 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고 온 시민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45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hen the Jews saw the crowds,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and began contradicting the things spoken by Paul, and were blaspheming.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ἰδόντες δὲ οἱ Ἰουδαῖοι τοὺς ὄχλους, ἐπλήσθησαν ζήλου,
having seen but the Jews the crowd,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직역하면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로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보고’(ἰδ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 having seen) 과거에 확실히 본 사실을 가리킵니다.
‘가득하여’(ἐπλήσ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were filled) 마음에 시기가 완전히 가득 찬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καὶ ἀντέλεγον τοῖς ὑπὸ Παύλου λαλουμένοις, βλασφημοῦντες.
and began contradicting the things by Paul spoken, blaspheming
‘말한’(λαλουμένοις)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spoken) 직역하면 ‘바울의 의해 말해진’(by Paul spoken)이란 뜻입니다.
‘반박하고’(ἀντέλεγον)는 미완료과거로서(began contradicting) 반박하기 시작해서 계속 반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비방하거늘’(βλασφημοῦ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blaspheming) 계속 비방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유대인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시기질투하고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복음이 나타나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율법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을 대적하고 비방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주의는 예수 믿음 보다는 자기의 선행과 자기 의가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유대교는 사탄의 무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오늘날 유교, 불교, 무당교, 반기독 운동 등도 실상 사단의 회입니다.
3. 바울은 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에게 받은 박해를 디모데후서에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46절.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aul and Barnabas spoke out boldly and said, "It was necessary that the word of God be spoken to you first; since you repudiate it and judge yourselves unworthy of eternal life, behold, we are turning to the Gentiles.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παρρησιασάμενοί τε ὁ Παῦλος καὶ ὁ Βαρνάβας, εἶπαν
having spoken boldly both the Paul and the Barnabas, said
‘담대히 말하여’(παρρησιασάμενοί)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poken boldly) 담대히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르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Ὑμῖν ἦν ἀναγκαῖον πρῶτον λαληθῆναι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to you it was necessary first to be spoken the word of the God
직역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너희에게 말해지도록 하는 것이 마땅했다’는 뜻입니다.
‘말해지도록’(λαληθῆν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spoken) 분명하게 말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땅했다’(ἦν ἀναγκαῖον)에서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it was) 계속 마땅했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ἐπειδὴ ἀπωθεῖσθε αὐτὸν, καὶ οὐκ ἀξίους κρίνετε ἑαυτοὺς τῆς αἰωνίου ζωῆς,
since you thrust away it, and not worthy you judge yourself of the eternal life
직역하면,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라고 너희가 스스로를 판단하기 때문에’란 뜻입니다.
‘버리고’(ἀπωθεῖσθε)는 현재형으로서(you thrust away) 계속 버리는 모습을 가리키고, ‘자처하기로’(κρίνετε ἑαυτοὺς)는 현재형으로서(you judge) 계속 자처하는 것을 가리키고, 직역하면 ‘계속 스스로 판단하고 있기로’(you judge yourself)란 뜻입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ἰδοὺ, στρεφόμεθα εἰς τὰ ἔθνη.
behold, we return to the gentiles
직역하면 ‘보라, 우리가 이방인들에게로 돌아가노라’는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분명하게 보라는 뜻이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향하노라’(στρεφόμεθα)는 현재형으로서(we return) 계속 향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비방하는 자들 앞에서 담대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손해볼까 봐, 내 체면이 손상될까봐,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까 봐, 그룹에서 소외 당할까 봐, 직장에서 쫓겨날까 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먼저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복음을 거부하므로, 로마서 9-11장 말씀처럼 이방인에게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영생 얻기에 합당하지 않는 자로 자처하고, 자기 의를 내세우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바울도 사도행전 19장 에베소 전도에서 두란노 서원에서 전도한 후로는 유대인 먼저라는 전도 방식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이 먼저 복음을 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복음 전도와 구원이 이방인에게 가게 되었으나, 이방인의 구원자 수가 다 차면, 종말에는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민족적으로 예수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롬 11“25-31)
47절.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For this is what the Lord has commanded us: I have made you a light for the Gentiles to bring salvation to the ends of the earth."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οὕτως γὰρ ἐντέταλται ἡμῖν ὁ Κύριος
thus for has commanded us the Lord
직역하면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이같이 명하셨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명하시되’(ἐντέταλται)는 완료형으로서(has commanded) 이미 명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Τέθεικά σε εἰς φῶς ἐθνῶν,
I have set you for light of gentiles,
‘삼아’(Τέθεικά)는 완료형으로서(I have set) 이미 빛으로 삼으신 것을 가리킵니다.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τοῦ εἶναί σε εἰς σωτηρίαν ἕως ἐσχάτου τῆς γῆς.
the to be you for salvation to uttermost part of the earth
직역하면 ‘땅 끝까지 너를 구원을 위해서 있게 하리라’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εἶναί)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네가 구원을 위해서 항상 있게 하리라는 뜻입니다.
1.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란 말씀은 이사야 49장 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나의 종으로 삼아서, 땅끝까지 구원하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너’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들을 전도하라고 비젼을 주신 것은 <유대인의 지상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을 부르신 것은 이방인의 빛을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빛을 전해주지 않자, 궁극적으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도록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원수시하고, 이방인 전도를 거부하자, 유대인 바울을 회심시켜서 이방인 전도를 전적으로 하게 하셨습니다.
2. 이처럼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전도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인들을 원수시하여 멀리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독교를 대항했던 유대인인 바울을 회심하게 하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충성하게 했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사명을 주실 때, 이방인에게 전도할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행 9:15)
그리고 유대인인 베드로나 바나바도 이방인 전도에 충성했습니다.
3. 그래서 먼저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고, 이방인이 모두 복음화 되면, 이번에는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즉 로마서 9-11장에 말씀한 대로, 이방인들이 다 예수 믿고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면, 그 때 유대인들이 구원을 시기하도록 구원의 복음을 사모해서,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에 잎이 피면,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 알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 은혜의 문이 활짝 열렸을 때, 은혜 생활 잘 하시고, 가족을 모두 주께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생활 하시고,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8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 Gentiles heard this, they began rejoicing and glorifying the word of the Lord; and as many as had been appointed to eternal life believed.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ἀκούοντα δὲ, τὰ ἔθνη ἔχαιρον καὶ ἐδόξαζον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hearing (it) then, the gentiles were rejoicing and were glorifying the word of the God
직역하면 ‘그러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듣고’(ἀκούοντα)는 현재분사로서(hearing) 계속 듣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기뻐하여’(ἔχαιρο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rejoicing) 계속 기뻐하는 것을 가리키고, ‘찬송하며’(ἐδόξαζον)도 미완료과거로서(were glorifying) 계속 영광 돌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καὶ ἐπίστευσαν ὅσοι ἦσαν τεταγμένοι εἰς ζωὴν αἰώνιον·
and believed as many as were being having been appointed to life eternal
‘작정된’(ἦσαν τεταγμένοι)은 두 동사로 되어 있는데, 앞의 동사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being) 계속된 상태를 가리키고, 뒤의 동사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appointed) 이미 작정된 상태를 가리켜서, 두 단어는 ‘이미 작정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떤 학자(Bruce)는 ‘작정된’이란 것을 ‘문서에 기록된 것’(inscribed, enrolled)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Linguistic Key 295)
‘믿더라’(ἐπίστευσαν)는 부정과거로서(believed) 확실히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서 기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가자 이방인이 기뻐했습니다.
영생 천국 복음의 기회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왔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했습니다.
3.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믿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선택한 사람이 아니면 믿지 못합니다.
여기서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으니, 사람은 가만있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은 사람이 자유의지로 믿도록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100% 믿고, 또 믿는 사람은 100% 예정된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도 100%이고 사람의 믿음도 100%입니다.
성질 좋은 사람이라고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성질이 나쁘다고 안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을 모르기 때문에, 무차별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를 받지 않아도 낙심할 필요가 없고, 잘 받아들인다고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이 전도하는 일은 다 해야 하고, 결과는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4. ‘영생 주기로 작정된 것’은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인해서 인간이 열린 마음으로 기쁘게 예수님을 믿고 복음 전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49절.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 word of the Lord was being spread through the whole region.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διεφέρετο δὲ ὁ λόγος τοῦ Κυρίου δι’ ὅλης τῆς χώρας.
was carried then the word of the Lord through all the region
‘퍼지니라’(διεφέρε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was carried) 계속 퍼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는데, 이 복음이 안디옥만이 아니라 비시디아 지방 전역에 두루 퍼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파도처럼 파급효과가 있습니다.
산울림처럼 소문이 자꾸 퍼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복음은 가장 좋은 소문입니다.
장님 바디메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좋은 소식을 듣고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막 10:46-48)
2. 바울과 바나바의 소문이 퍼진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변화 받은 사건들이 두루 퍼졌습니다.
마치 앉은뱅이가 치료받은 소문이 널리 퍼진 것처럼, 죄인이 예수 믿고 죄 용서받은 회심 체험의 소문이 널리 널리 퍼졌습니다. (행 3:6-10, 4:16.
3.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에서 ‘퍼지니라’(διεφέρε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as carried) 일시적을 퍼진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널리 퍼진 것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의 설교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지역민들에게 전도해서 주의 말씀이 퍼진 것도 있고, 안식일 외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그 지역에서 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주의 말씀이 두루 퍼진 것을 가리킵니다.
50절.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e Jews incited the devout women of prominence and the leading men of the city, and instigated a persecution against Paul and Barnabas, and drove them out of their district.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οἱ δὲ Ἰουδαῖοι παρώτρυναν τὰς σεβομένας γυναῖκας τὰς εὐσχήμονας καὶ τοὺς πρώτους τῆς πόλεως,
the but Jews incited the worshiping women the of honorable position and the principals of the city
‘경건한 귀부인들’(τὰς σεβομένας γυναῖκας τὰς εὐσχήμονας)에서 앞의 단어(τὰς σεβομένας γυναῖκας)는 ‘경건한 부인들’이란 뜻이고, 뒤의 단어(τὰς εὐσχήμονας)는 ‘저명한 지위에 있는 자’(prominent position) 혹은 높은 지위를 가진 자’(high position)란 뜻인데, 여기서는 ‘부유한’(rich) 여인들을 가리킵니다.
‘선동하여’(παρώτρυναν)는 부정과거로서(incited) 집요하게 선동한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καὶ ἐπήγειραν διωγμὸν ἐπὶ τὸν Παῦλον καὶ Βαρνάβαν,
and they stirred up persecution against the Paul and Barnabas
직역하면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 박해를 일으켰다’는 뜻입니다.
‘박해하게 하여’에서 동사(ἐπήγειρ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tirred up) 단호하고 확실하게 박해를 일으켰다는 뜻입니다.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καὶ ἐξέβαλον αὐτοὺς ἀπὸ τῶν ὁρίων αὐτῶν.
and they expelled them from the district of them
직역하면 ‘그들이 그들의 지역에서 그들을 쫓아냈다’는 뜻입니다.
‘쫓아내니’(ἐξέβαλον)는 부정과거로서(they expelled) 단호하게 쫓아낸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유대교인들이 유대교로 전향한 귀부인들과 시내 유력인사들을 돈 주고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그 지역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유력자들이 많이 생겨야 합니다.
장로 대통령도 생기고, 권사 장관들 생기고, 안수 집사 국회의원들도 많이 생겨야 합니다.
2.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쫓아냈다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비시디아에는 복음이 충만하게 전해졌고 다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핍박을 당해서 다른 교회로 가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이 다른 교회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경건한 귀부인들’이란 유대교 회당 예배에 참여하는 고위층 부인들을 가리키는데, 불신 유대인들이 이 여자들과 그 지역 유지들을 돈 주고 매수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그 지역에서 쫓아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늘 이런 악랄한 방법을 썼습니다. (행 14:2, 17:5, 13)
4. 본 문에서 바울이 복음 전도에 핍박을 받은 것은 첫 번째 경우이고, 이후로도 바울이 복음 전도에 여러 번 핍박을 받았습니다. (행 14:2, 17:5, 13. 18:6, 21:30 등)
51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ey shook off the dust of their feet in protest against them and went to Iconium.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οἱ δὲ ἐκτιναξάμενοι τὸν κονιορτὸν τῶν ποδῶν ἐπ’ αὐτοὺς
the but having shaken off the dust of the feet against them
‘떨어버리고’(ἐκτιναξά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haken off) 발의 먼지를 단호하게 탈탈 떨어버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은 선교사들이 더 이상 모든 책임에서 자신이 깨끗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the missionaries cleared themselves of all further responsibilities)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ἦλθον εἰς Ἰκόνιον,
they went to Iconium
‘가거늘’(ἦλθον)이란 부정과거로서(they went) 단호하게 간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간 것은 마태복음 10장 14절에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말씀한 대로 행한 것입니다.
원래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는 풍습은 유대인들이 이방인 지역에 갔다고 유대지역으로 들어올 때, 자기네 땅의 신성을 지키기 위해서 행한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제자들의 복음 전도에도 불신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그들의 불신앙의 책임이 불신자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2.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은 구브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은 구브로와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4장은 이고이온과 루스드라와 더베 전도입니다.
3. 때는 47-49년경입니다.
45-46년은 바울이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목회 사역을 하다가,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을 가져다 주고 왔습니다.
그리고 47-49년에 1차 전도 여행을 한 것입니다.
4. 이고니온은 갈라디아 지방의 중요한 교차로이며 농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늘날 코냐(Konya)입니다.
52절.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 disciples were continually filled with joy and with the Holy Spirit.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οἵ τε μαθηταὶ ἐπληροῦντο χαρᾶ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the and disciples were filled with joy and Spirit Holy
‘충만하니라’(ἐπληροῦν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were filled) 계속 충만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바울 사도는 떠났지만, 예수 믿은 성도들에게는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은 기쁨과 성령 충만입니다.
이 기쁨은 죄인 하나가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느끼시는 그 감격과 기쁨입니다.
누가복음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 기쁨은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고, 구원에 대한 기쁨이요 감사였습니다.
기쁨과 성령 충만은 늘 병행합니다.
2. 바울은 떠났지만, 성도들은 성령 충만했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기뻤고, 또 처음 성령으로 거듭난 체험 속에서 성령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첫 사랑에 대한 감사와 성령으로 거듭한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기도하고 성경 말씀에 은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이 이고니온의 성도들은 육신적인 건강이나 물질적 부요나 사회적 지위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은혜와 감격 속에서 기뻐했고, 처음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령 충만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3. 비시디아 안디옥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성령 충만했습니다.
이 구원의 기쁨은 핍박이나 역경중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참된 기쁨입니다.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인이 신앙 때문에 핍박을 당하면, 성령님이 더욱 함께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성령 충만함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