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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는 임금의 명령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우선시하는 천주교를 사학으로 규정하고 여러 차례의 박해를 가했습니다. 이러한 박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길’은 특히 가장 많은 신자가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포함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순교는 신앙에 대한 최상의 증거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희망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고귀한 진리를 찾았습니다. 이 길은 박해 시기 주요 관청 터와 형장을 잇는 길로, 순교자들이 순교하러 가는 길이었지만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가는 길이었기에 ‘생명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지금은 그 형태를 볼 순 없지만, 이 길 위에서 이루어졌던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생각해보고 순교자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가회동성당
가회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794년 조선에 밀입국하여 1795년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한국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주문모 신부는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북촌에 있던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머물면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며 사목 활동을 하였다. 가회동은 주문모 신부의 사목 활동 거점으로서 한국 초기 교회의 신앙 중심지였다.
1955년 8월 9일, 병인박해를 일으켰던 흥선 대원군의 손자이자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가회동 성당의 관할 구역인 안국동 별궁에서 임종 1주일 전에 세례받기를 원하여, 당시 보좌 신부였던 박병윤 신부에게 ‘비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기의 선조가 천주교를 탄압하여 피로 물들인 점을 자손의 한 사람으로 속죄하고 싶었다고 입교 동기를 밝혔다. 의친왕 이강이 죽기 이틀 전인 15일에는 의친왕비 김숙 여사도 가회동 성당에서 ‘마리아’란 세례명으로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황족이 세례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순교 신앙의 승리를 입증한 것이다.
2.광화문시복터
광화문 광장은 조선 시대 의금부, 포도청, 서소문 형장 등 한국 교회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장소들과 가까운 곳이다.
2014년 8월 16일, 한국천주교회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보통 시복 미사는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교황을 대리하여 거행하는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자의 땅 한국에 와서 직접 시복 미사를 집전하였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은 한국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로 열린 시복식이었다. 2015년 8월, 124위 복자 시복 1주년을 기념하여 표석(바닥 돌)을 설치하였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8월 23일 오전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조규만, 정순택, 손희송 주교와 사제단이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 터’(기념 표석)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기념 표석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4년 8월 16일 이곳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 이를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을 기리고자 이 돌을 놓습니다.”라는 문구가 한글과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새겨져 있다.
3.형조터
형조는 조선 시대 중앙 관서인 육조(六曹)의 하나이다. ‘추관’또는 ‘추조’라고도 하였으며, 사헌부, 한성부와 아울러 ‘삼법사’(三法司)라 부르기도 하였다. 형조는 한성부 서쪽 적선방에 있었는데,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그 시작은 정조 9년(1785년)에 발생한 ‘을사 추조 적발 사건’으로,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신자들이 집회를 하는 중에, 금리(禁吏)들에게 발각되어 형조로 압송된 사건이었다. 이후 1801년 신유박해 때 최필공 토마스, 최필제 베드로, 윤운혜 루치아, 정철상 가롤로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고, 김천애 안드레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윤지헌 프란치스코 등은 전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남명혁 다미아노, 김효임 골룸바, 김효주 아녜스,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 등이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전장운 요한, 최형 베드로 성인 등도 형조를 거쳐 갔다. 형조 터는 세종로 세종 문화 회관 앞 버스 정류장 바닥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설치한 바닥돌이 매립된 자리이다.
4.의금부터.
의금부는 조선 시대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 금부, 금오, 왕부라 부르기도 하였다. 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들은 서울의 좌·우포도청과 지방의 각 진영과 군, 현에서 문초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중죄인, 곧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국왕의 명령에 따라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권철신 암브로시오가 순교한 이래, 많은 천주교 선교사와 지도층 신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증언하였다. 이승훈 베드로와 주문모 야고보 신부, 최창현 요한 회장도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하였고, 성 라우렌시오 범 앵베르 주교, 성 베드로 나 모방 신부, 성 야고보 정 샤스탕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등 성직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의금부에서 혹독한 국문과 문초를 받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도 베르뇌 장 시메온 주교, 브르트니에르 백 유스토 신부, 도리 김 베드로 신부, 볼리외 서 루도비코 신부와 전장운 요한, 최형 베드로, 정의배 마르코 성인이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켰다.
5.전옥서터.
전옥서는 형조 아래에서 감옥과 죄수를 관리하던 관서였다. 박해 시기 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전옥서에 구금되었다.
103위 성인 가운데 전옥서에서 순교한 성인은 이호영 베드로와 김 바르바라이다. 이호영 베드로 성인은 이소사 아가타 성녀의 동생으로, 1835년 이소사와 함께 체포되어 1839년까지 4년 동안 혹독한 옥살이로 얻은 병으로 순교하였다. 김 바르바라 성녀도 포도청으로 끌려가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고, 전옥서에서 3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인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도 의금부에서 형조로 이송되어 처형될 때까지 전옥서에 구금되었다. 형조 아래의 감옥인 전옥서는 1785년 명례방 사건(을사 추조 적발사건) 때 김범우 토마스가 형조에 끌려가 신앙을 증언한 이래, 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한 장소이다.
6.우포도청터.
우포도청은 조선 중종 무렵 설치되어 1894년까지 350여 년 동안 존속한 서울의 포도, 순라 기관으로 중부 서린방 혜정교 남쪽 인근(현 광화문 우체국 자리)에 위치하였으며, 서울 서부, 북부와 경기 우도 등을 담당하였다.
103위 성인 중 22위, 124위 복자 중 5위가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는데, 기록상 분명히 우포도청에서 순교한 성인으로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순교의 영광을 얻은 유대철 베드로 성인이 있으며, 병오박해 때 한이형 라우렌시오, 우술임 수산나, 김임이 데레사, 이간난 아가타, 정철염 가타리나가 우포도청에서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가 혹독한 매질 아래 순교하였다. ‘기해일기’를 쓴 현석문 가롤로 성인도 우포도청에 갇혔는데, 신자들을 위로하고 순교로 나아갈 수 있도록 권면하였다. 특히 우포도청은 한국천주교회의 마지막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장소이다. 1879년 드게트 신부와 함께 체포되어 우포도청에 수감되었던 이병교 레오, 김덕빈 바오로, 이용헌 이시도로가 이곳에서 아사하여 한국천주교회의 마지막 순교자가 되었다.
7.경기감영터.
박해로 숨어서 천주를 믿어야 했음에도, 점점 확산되어 가던 경기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로 큰 타격을 입었다. 잡혀 온 경기 지역의 신자들은 한성 서대문 밖 반송방에 위치한 경기 감영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다. 특히 가난하고 몸이 부실하며 배움도 부족했던 조용삼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에게 신앙을 배우며 따르다가 체포되어 11개월 동안 옥에 갇혔다.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았다. 1801년 2월에 다시 감사 앞으로 끌려나가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형벌을 받았는데, 약해진 몸은 더 이상의 형벌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다시 옥에 갇힌지 며칠 지난 3월 27일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마지막 형벌 때에 박해자들을 향해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의 길을 걸었다.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를 위해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용삼 베드로를 시복하였다.
8.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는 조선 시대 공식 사형 집행장으로,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 한다는 ‘예기’의 가르침과 최종 사형 판결을 내리는 형조나 의금부와 그리 멀지 않다는 편의성,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칠패 시장’이 있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처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들은 신원이 확인된 이만도 100여 명이 된다. 이 가운데 44위가 시성 되어 단일 순교지로는 성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하상 바오로와 김효임 골룸바, 김효주 아녜스 성인 등이 있다. 또한 2014년 시복된 순교복자 124위 가운데 27위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하였다. 한국 교회는 현재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순교자의 시복을 추진 중에 있다. ‘하느님의 종’ 133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 베드로와, 신유박해 때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 알렉시오를 비롯하여 서소문 순교자 6위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교회 건축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사적 제252호), 중림동 약현성당이 서소문 성지 기념 성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9. 중림동 약현성당.
중림동 약현성당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 100년의 역사를 대변하는 성당이며, 한국천주교회를 태동시키고 이끌어 온 순교 성인들 가운데 44명의 성인이 탄생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주변에 세워진 성지 순례 기념 성당이다. 성당 근처에 이승훈 베드로의 집이 있었고, 신유·기해·병인 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과 가까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으므로 이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
1991년 김수환 추기경이 주례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축복식에서 약현성당이 서소문 성지 순례 기념 성당임을 공식 선언하였다. 이를 통해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새로운 관심과 기대 속에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중림동 약현성당은 순교자들을 더욱 현양할 수 있는 성지 순례 기념 성당으로서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1년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본당 안에 서소문 성지 순례자들을 위한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을 세웠다. 이곳에 마련된 기념 성당과 전시실에는 성인들의 유해와 함께 선조들이 사용하던 유품, 교리서와 성서를 비롯한 다양한 교회 출판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상은 순교자현양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세부 일정 및 내용 | |
▶일 시 | 2024년 5 월 18 일( 토요일)) 11시 00 분 |
▶도보 코스 | ▷걷는 코스 : 가회동성당-124위 시복터-형조터-의금부터-전옥서터-우포도청터-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중림동 약현성당 ▷걷는 거리 : 약 7 km 내외 ▷걷는 시간 : 4시간 내외 (휴식,점심시간 포함) ▷걷기난이도 : 쉬움 ▷속도 - 초급, 고도 - 초급. 거리 - 초급. |
▶모임 장소 | ▷만나는 곳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 번 출구 안쪽 ▷헤어지는 곳 : 지하철 4호선 충정로역 또는 각자 편리한 곳 |
▶회 비 | ▷카페 찬조금 1천원 *찬조금은(진행자를 제외한 모든 참석자) 참석 당일 출발지에서 내시면 됩니다 *발도행 리본 2천원 입니다. |
▶식 사 | ▷점심 : 순례중 매식합니다. |
▶준비물 | * 짬짬이 먹을 간식과 충분한식수 * 걷기와 계절에 알맞은 복장/ 동.하절기 대비 * 일기 불순 예보가 있으면 우의나 우산 * 오프로드 트레킹화나 등산화 착용. |
▶주의 사항 | * 도보중 일어나는 어떠한 안전사고에대해서도 카페나 카페지기.운영자및 진행자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 개인의 안전은 각자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참가신청한 분은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 이 프로그램은 여행자보험을 들지 않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개별적으로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 발도행의 걷기진행자는 모두 자원봉사자입니다. 늘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
▶기 타 | * 참가신청 하신 분은 카페 내의 본인 개인정보 전화번호가 맞는 지 확인해주세요. * 개인정보는 운영자만 볼 수 있으며, 특별한 일이 있을 시 비상연락망이 됩니다. * 가급적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 걷기 후 비공식행사인 식사(뒷풀이)가 있으면 ,1차에 한하여 진행자 비용을 참석자가 n/1로 나누어 부담합니다. * 발도행 표식과 단체걷기 주의사항 보기 :http://cafe.daum.net/way./bx08/4 |
▶진행 | 검은둥이(010-8341-0582) |
참가 신청 방법과 순서 | |
▶공지글 아래 <댓글 박스>에 예시처럼, 참석명수,참가자 닉네임, 발도행 리본 유무, 하고싶은 말을 적어 신청합니다. ▶댓글 예시 : 참가 1명 / 참가자 닉네임 기재 / 양재 탑승 / 함께 걷는 즐거움 ~~ ^^ |
※ 참석 여부 변경이 있을시 변경사항을 새로운 댓글로 작성 하여 주세요.
※ 작성한 댓글은 삭제 하지 마세요.
※ 출발전 추가 안내공지 여부룰 확인 하세요.
첫댓글 참가/세라피나/리수유/함께합니다^^
참가1번/세라피나님 환영합니다.~^^
참가/혜산/감사합니다♡
참가2번/ 혜산님 환영합니다.~^^
참가/ 수니별 /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참가3번/ 수니별님 환영합니다.~^^
참가4/이숲/감사합니다 . 💕 😊
참가4번/ 이숲님 환영합니다.~^^
참가/마도로스 /리수유/순례길 함께걷습니다
참가5번/ 마도로스님 환영합니다.~^^
참가6/산천어/참가합니다~~
참가6번/ 산천어님 환영합니다.~^^
참가/평온한엠제이/리.수.유/생명의 길~ 감사합니다.
참가7번/ 엠제이님 환영합니다.~^^
참가 1명 / 로리 / 순례길 함께 걸어보려고 합니다
참가8번/ 로리님 환영합니다.~^^
참가/신선대/ 순례길 함께 걷겟읍니다.
참가9번/ 신선대님 환영합니다.~^^
참가10번/송암/순교자의 신앙을 본받고져.
참가10번 / 송암님 환영합니다.~^^
참가4명/고무줄,나유,동행2명/감사합니다.
참가11번,12번,13번,14번/ 고무줄님, 나유님, 동행님, 동행님 환영합니다.~^^
참가15번/산들애/감사합니다
참가15번/ 산들애님 환영합니다.~^^
네엔스외 2인 참가 합니다/ 검은둥이님, 보니님의 수고 감사 드립니다.
참가16번,17번,18번/ 네엔스님,동행님,동행님 환영합니다.~^^
참가/록키/감사합니다.
참가19번/ 록키님 환영합니다~^^
참가 까마중 감사합니다
참가20번/까마중님 환영합니다.~^^
미안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 참가 취소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길에서 뵙겠습니다.
내일 쾌청하며 기온이 26°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예보되어 있습니다. 물과 해빛가리개도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참가/피스메이커/늦게 달아 죄송요~
참가20번 / 피스메이커님 환영합니다.~^^
가회동 성당으로 바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