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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er suitable for him."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forme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bird of the sky, and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a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cattle, and to the birds of the sky, and to every beast of the field, but for Adam there was not found a helper suitable for him So the LORD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then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at that place. The LORD God fashioned into a woman the rib which He had taken from the 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For this reason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be joined to his wife; and they shall become one flesh. And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were not ashamed. Genesis 2:18~ 25
성경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그것은 창세기의 천지창조부터 계시록의 새예루살렘의 어린양의 혼인잔치라는 대막이 이루어지는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설계도와 같다. 그리고 이 설계도의 주제는 결혼 대서사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특히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내게 다가오는지 묵상하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는 것은 아름답고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창조과정과 부부의 만남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창조물을 다스리고 지키고 관리할 존재로 아담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living soul), 곧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로 최초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않좋아 돕는 배필, 하와를 이어서 창조하셨다. 그런데 하와의 창조과정이 독특하다. 먼저 하나님은 아담을 깊은 잠이 들게 하시고 거기서 갈비대를 꺼내서 그것으로 하와를 만드셨다. 히브리어에 잠들다는 단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보통 잠을 자는 것은 야션 (יָשֵׁן / Yashan)이라하고 기절하거나 깊은 혼수상태, 혹은 초자연적인 깊은 잠,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로는 라담(רָדַם / Radam)이란 단어를 쓰는데 창세기 2장 아담의 깊은 잠은 후자에 속한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창조하시기 위해 아담을 죽이셨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다시말해 아담은 자신이 죽고 자신의 소중한 갈비뼈를 내어 주어야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는 아름다운 아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이 발표한 시에서 사람들은 "용기있는 자가 행운(fair lady)"를 얻는다고 했지만 성경은 자신이 죽고 갈비뼈를 내 주어야 사랑스런 아내를 얻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아담처럼 하와를 만드시지 왜 아담을 굳이 죽여가며 하와를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대충 만드시지 않으셨다. 철저한 계획과 설계, 의도,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다. 이는 인류사를 통해 관통하는 주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것을 아담과 하와 창조과정에 디자인 해 놓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 (신랑과 신부)
성경은 결혼에 관한 서사시라고 말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자. 성경의 난해한 구절은 모두 삼층천에 가서 신비한 것을 체험하고 온 사도바울의 서신을 통해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5장 14절에서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실 자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다. 또 사도 요한이 밤모섬에서 받은 계시록 19장 7절에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라고 기록되어 있고 21장 9절에도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계시록 22:17절에도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시고 그의 몸된 교회는 신부임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도 신부를 얻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아담은 신부를 얻기위해 갈비뼈를 내 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양의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양손에 대못이 박히시고, 창에 갈비뼈 사이를 찔려 몸안에 물과 피를 다 쏟아 부으셨다. 그 결과 주님의 몸된 거룩하게 단장한 신부를 갖게 되신 것이다. 희생없이 아내를 얻고자 하는 것은 도적과 다름없다.
부부가 되게하는 근본 힘은 사랑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다 쏟게 만드신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구약성경 아가서(Song of Songs) 8장 6절에 보면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이 죽음 같이 강하다(love is as strong as death)...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죽고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사랑의 특성을 죽음에 비유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거역할 수 없다. 절대적인 권세가 죽임이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이치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랑은 이런 절대적인 죽음 보다 강하다.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잠자는 자들(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말씀하셨다. 아무리 돈이 많고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고 명성이 자자하고 등등 다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스 철학자들은 부모 자식간의 혈연적 본능에 의한 사랑을 스토르게 (Storge, στοργή)라고 했다. 그리고 남녀간의 육체적 관능적 남녀간의 로맨틱한 사랑을 에로스 (Eros, ἔρος)라 했다. 그에 비하면 다윗과 요나단 처럼 마음과 뜻이 통하는 사람들간의 우정, 즉 공통의 관심사나 가치관을 공유하며 느끼는 친밀감을 다른 사랑의 언어로 필레오 (Phileo, φιλέω)라 했다. 마지막으로 조건을 따지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절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아가페 (Agape, ἀγάπη)라 했다. 스토르게 사랑을 받고 자라다 애로스 사랑을 느끼고 필레오 사랑을 경험하더라도 결국은 아가페 사랑으로 가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적인 사랑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성경을 푸는데 기준이되는 사도바울의 서신을 통해 살펴보면 이러한 아가페 사랑은 그속성에 대해 고린도 전서 12장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13장 4절에서 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날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당신만 사랑하겠다며 많은 가족과 친구 친척들 앞에서 엄숙히 맹세하고는 그 약속을 못지키고 이혼하고 있다. 오래 참지도 않고 온유하지도 않고 투기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무례히 행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성내며 악한 것을 생각하며 불의를 기뻐하면서 어찌 결혼이, 서로의 신뢰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겠는가?
이끌림
만남...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하와는 그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하와를 보시고 기뻐하시며 그녀를 이끌고 아담에게로 인도하셨다. 인간은 무언가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2절에 보면 바울이 신령한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다고 말한다. 하와는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았을 때 자신을 위해 죽음을 감당했던 아담을 만나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첫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하와가 아담을 찾아간 것이 아니다. 아담이 하와를 찾아간 것도 아니다. 진정한 만남은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만나게 하신 것이다.
고백
누가 먼저 고백했을까? 요즘은 여자들도 용감하여 먼저 고백한다는 말이 있지만 성경은 아담이 죽어가며 자신의 갈비뼈를 내주는 고통을 경험했던 결과로 창조된 또 다른 자신의 반쪽을 보고 감격하며 먼저 고백했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말이다. 여자는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남자에겐 기쁨이다. 대학시절 처음 아내를 본 순간 다른 모든 혹시나 했던 상상의 아내가 될 여인들은 모두 사라졌다. 한 여인을 사랑하면 모든 여인에게서 자유한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한 남자를 남편으로 사랑하게 되면 세상 모든 남자에게서 자유한다. 이슬람에서는 여인을 4명까지 부인으로 둘 수 있다하지만 성경은 한 명의 남편과 아내를 만나게 하신다. 최종 선택하고 결심하기까지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고 가고, 또 나에게 이끌어 오시는 내 짝은 한 명이다.
떠남과 연합...
그런데 성경은 갑자기 "이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에게 부모는 없다. 창조주 하나님만 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말씀을 주셨을까? 그 숨겨진 의미는 무엇인가?를 묵상해 본다. 아마도 이것은 결혼이란 제도의 시작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과 아닐까?. 지금은 없지만 장차 앞으로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태어날 모든 인류에게 결혼제도를 아담과하와에게 설명해 주신 것이다.
먼저, 떠남이다.
결혼은 먼저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한다. 분리는 아픔이고 성장이다.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보호받고 살다가 스스로 떠나 독립적인 가정을 꾸민다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애해서 결혼하는 것이 간단한 거 같아도 결혼한 사람들 보면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다. 떠남.. 여기에도 영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성육신한 것이다. 창조주께서 자신을 낮추고 낮추어 인간의 형체를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이다. 남편은 그렇게 자신은 낮추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고 소중한 모든 것을 던짐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얻는다. 둘째로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아갈 때는 마귀의 자녀였다.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떠남은 마귀에게 이끌려 사는 것에서 성령님에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부모가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라면 결혼이란 아브라함 처럼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관계가 끊기지는 않겠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란 공동체를 건설하는것이다.
부부연합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는데 어떻게 연합할까? 연합의 목적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영적인것을 포함 전인적인 결합을 의미하는데 이는 한 몸을 이룬다는것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 나는 젊었을 때 이것을 묵상할 때 이렇게 생각했다. 처음 사귈때 서로 자라난 배경도 다르고 환경도 경험도 달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하나가 되려면 서로 양보해서 0.5씩 낮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다소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내 생각을 접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오래 하면서는 더하기 개념의 하나됨은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덧셈이 아닌 곱하기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즉, 주안에서 독립적으로 성숙한 하나와 또 다른 하나가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가 될때 생각이 비록 다르더라도 온전히 받아주면서 서로 상처 받지 않는 곱하기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니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내 자신도 편해졌다. 그러나 이는 나의 생각일 뿐이다. 성경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역시 사도바울의 편지로 해석해 보자.
한 몸안에 수많은 지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12장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다. 손이 있고 발이 있고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다. 손에 반지를 끼고 좋은 시계를 차고 있다고해서 어둡고 캄캄하고 냄새나는 양말속 발가락이 나는 힘든 일만 시킨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발은 손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손도 발이 자기라 생각한다. 싸울 필요가 없다. 그가 곧 나니까 말이다. 그래서 몸에 어디가 아프면 더 보호해주고 잘 해주려 노력하는 것이 한 몸이란 증거인셈이다.
부부간 갈등해법
12장 말씀에 한 몸을 이루는 조건으로 남편도 아내도 성령에 이끌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 환경에 자라나고 살아온 지라 의견이 충돌 할수 도 있고 상대방을 이해 못할 상황이 반드시 생긴다. 그러나 이때 성령이 아닌 세상의 영을 따르면 분쟁이 생긴다. 지체가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몸이 아닌 몸에 붙은 무좀균 같이 느껴질 지도 모른다. 부부간의 충돌에 대한 해결책은 내 의견도 상대방의 의견도 아닌 성령님의 인도 곧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은사가 임하게 된다. 성령님께서 하와를 이끌어 아담에게 데려다 주셨듯이 남편도 아내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9가지 은사가 주어지게 된다. 각자 무엇을 할지 직임, 곧 직책과 임무가 주어진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형제로서 자식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게 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따지거나 묻지 않게 된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가 그렇게 하신다. 성령님은 어떤이에게는 지혜의 말씀, 어떤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어떤이에게는 각종 방언을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신다. 한 성령님께서 그 뜻대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해 각각 나눠 주신다.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각종 은사를 가지고 상대방을 세워주는 배필이 된다는 것이다.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 성도들이 서로 받은 은사로 그리스도 몸을 세우는 것이다. 아직 서로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하는 것은 아직 한 몸을 이루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각자의 생각은 많다. 지체도 맣다. 그러나 몸은 하나다. 주님도 하나다. 나와 너는 주님의 한 부분, 지체일 뿐이다.
영혼육의 하나 됨
여기서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인간이란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영혼육 차원에서 좀더 묵상해 본다. 성경에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부부가 한몸을 이룬다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1. 영이 하나됨
예수님을 주님이라 시인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안된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내 남자친구 여자 친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는 것은 곧 성령님께서 하신 것으로 영적인 부분이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2. 혼이 하나됨
그러나 수십년동안 살아오면서 각자 자기 안에 축척해 놓은 혼적인 틀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런 것이다. 남자는 좌파 이고 여자는 우파 혹은 그 반대일 수 있다. 둘이서 정치 이야기하면 하나가 되지 못함을 느끼며 서로 괴로워 한다.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안믿는 사람이 같은 우파, 같은 좌파면 편안함을 느낀다면 영이 과연 온전히 하나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번 보고 안보는 사이나 어쩌다가 한번 보는 친구 사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부부사이라면 그런 상태로 매일 사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은 생각을 밀어내는 것이 영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을 보라. "사람의 사정(thoughts of man)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요" 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의 생각을 인지하는 것이 곧 영이다. 그러므로 영은 생각을 밀어내는 생각의 근원인 셈이다. 그동안 자라오면서 축적된 각자의 생각의 틀, 혹은 역사관이 성령의 생각 곧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다면 살아계신 말씀에 손종하여 혼속에 형성된 견고한 틀을 깨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좌파 너는 우파 이러면서 평생 싸우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성령을 받았는데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물과 쓴물이 동시에 날 수는 없다. 좌파든 우파든 이는 역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기에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역사는 History다. 부부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거기에 속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History는 그의 이야기 곧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이고 그 것은 거대한 새예루 살렘 신혼잔치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왝곡 편집 과대포장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마귀의 꼼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적인 부분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3. 육이 하나됨
마지막으로 육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 보니 남녀의 성관계를 유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다윗의 장남인 압살롬과 그 여동생 다말과 이복오빠였던 암논 이야기를 통해 비극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났는지 상고해보라. 암논이 다말을 강제로 범한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사랑이 아닌 쾌락을 쫓은 것이고 그 결과는 압살롬의 보복으로 집안이 풍지 박산 나 사망에 이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한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는 일부일처제를 최초로 어겼던 라멕이란 자는 아다와 씰라를 부인으로 두었다. 그가 어떤 삶은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욕을 쫓았던 삶이었고 분노장애가 있었는지 자신에게 작은 상처를 입힌 소년을 죽이는 폭력성을 갖은 인물로 성경은 묘사되고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아브라함도, 야곱도, 다윗도, 솔로몬도 여러 아내를 두었다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인간의 타락한 문화와 관습이 스며든 것일 뿐 본래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신성한 결혼의 제도는 아니다. 육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결혼이라는 신성한 제도안에서 한몸을 이루어야 한다.
남편의 희생적 사랑 아내의 존경심과 복종
에베소서 5장 22절에서 33절까지를 보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아내에게는 남편을 존경하며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반면 남편에게는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린 것과 같이 아내를 위해 최고 수준의 희생적 사랑을 하라 말씀하신다. 우리는 인간인지라 서로 완벽하지 못하다. 이 땅의 결혼이란 제도도 결국은 하늘의 새예루살렘 신혼잔치에 대한 모형일뿐이다. 따라서 그날이 오기까지는 불완전한 결혼생활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상황을 만나도 결혼생활중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는 에베소서 4장 말씀을 기억하자. 또한 남편은 아내에 대해 베드로 형님이 주신 말씀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신 말씀 처럼 아내를 귀히 여기고 기도에 힘쓰자.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한마디 키워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