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北海道) 여행
은 종 민
모처럼 일본 홋카이도 다녀왔습니다. 30년 전 일본 여행한 기억은 한국과 너무 비슷하여 10년 전 그냥 공짜로 갈 기회가 있었어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끼리 가는 기회가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아내도 한 달 전 일본 남쪽을 여행했으나 북쪽 홋카이도가 훨씬 좋다고 하였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춥고 산이 많아 버린 땅 섬 홋카이도를 개발하기 위해, 위도상 같은 미국 매사추세츠주를 방문하여 개발했고 남쪽 일본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다.
러시아 정교회가 있고 그 바로 앞에 러시아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 성공회 교회 건물이 있었다.
미국 페리 제독에게 최초로 불평등 조약으로 하꼬다데항을(函館) 개항했다. 그때 배운 불평등 조약을 우리나라 개항할 때 그대로 써먹었다. 불평등 조약을 불만으로 삼은 신진 사무라이들이 정권을 뺏어 잡아 메이지유신을 단행했다. 어쨌든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
서구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인데 겉만 화려한 조립식 주택이 많았다.
부자 나라이지만 지진이 많아 가급적 지진에 강한 조립식 이 층 주택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일본은 이차대전 전쟁 후 세대가 일본을 부자나라로 만들기도 했지만, 현재는 돈을 너무 쓰지 않아서 경제가 피곤하다 하였습니다.
심리적으로 전쟁에 놀라고 미국의 경제 제재에 놀란 상태라 그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쓰레기 수거업체에서 독거노인들 사망 후 나온 쓰레기에 나온 현금이 일년에 천백억이 넘는다.
돈은 써야 내 돈이다. 자손에게 물려줘야 후손들 싸움의 불씨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은 외제 차 보기가 힘들었다. 벤츠 한대 봤다. 한국보다 조금 더 일본 차 디자인이 다양했다. 일본인은 과시욕이 없는지 일제가 제일이라는 관념인지, 경제를 알아서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홋카이도 남쪽만 도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노는 땅도 많은데 왜 남의 나라를 침략했는지 궁금했다.
가이드 해설이 지진이나 무서워서 ‘시집은 가보고 죽어야 하는데!’ 라는 마음이 들었고,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이 다시 돌아가려고 여행 도중에 비행장에 갔는데 한국 가는 비행기가 없었다. 홍콩으로 돌아서 한국으로 가려고 홍콩에 도착하였는데 비자가 없어서 복잡하였다.
그 대신 온천이 많으니 위로를 조금 받을 것 같다. 일본도 아이들을 안 낳고 이민 들 가서인지 관광 도시라서인지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애들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귀여워서 한국처럼 이쁘다고 하고 싶어 일본어로 뭐 냐고 물어보니 일본 유학한 형님이 큰일 난다고 애들에게 손도 흔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배용준이 히트 치기 전에는 한국 사람을 동남아에서 온 영어 잘하는 사람들보다 무시했었는데 배용준 인기 덕분에 한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좋아졌단다.
삿포로는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답게 5월 중순인데 산정상에는 흰 눈이 보였습니다.
위도상 한국보다 높아서 여름에는 해가 1-2 시간 일찍 뜨고 겨울에는 해가 1-2시간 늦게 뜹니다. 집사람은 아침마다 해가 일찍 뜨네 하여서 나는 바닷가니까 햇살이 바다에 비쳐서 밝게 보이는 걸 거야 라고 말했다.
전에는 일제 전자제품을 많이 샀는데 요즘 국산품도 좋아져서 일제 감기약과 동전 파스 등을 샀다.
아이들 기르느라 입맛이 예민한 여자인 아내는 과자가 맛있다고 많이 사 오는데 나는 한국 과자랑 맛 차이를 못 느꼈다.
언젠가 일본 제과업계는 과자 당분 5% 올리는데 몇 시간씩 회의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는데 노력의 댓가 인가 싶었다.
가이드 설명이 한국 사람들은 직설적이어서 표정이 바로 나타나는데 일본 사람들은 표정 보고 내면을 알 수 없다한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알 수 없다.
한국 하회탈은 표정이 풍부한데 일본 탈은 표정이 거의 없다.
한국은 여자가 아기 업고 지하철 타면 자리를 양보해주고 “아이 귀엽다, 아들이야 딸이야?” 그 뒤에도 선을 넘어 “하나야 둘이야?” “하나다” 고 하면 “하나 더 낳아야지?” 하며 정이 많아서 너무 선을 많이 넘는다.
일본은 절대 자리 양보도 잘 않고 그런 선 넘는 질문도 안 한다.
맛이 없다는 말도 돌려서, 마음에 안 든다고 표현한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가 곤고구미(金剛 組) 라는 회사가 있는데 시초가 백제 사람이었다.
오사카성(大阪 城)을 짓는데 4명의 백제 기술자를 초청하여 건축하고 나서 한 명은 나중에 수리를 위하여 남겨 두고 일본성(性)을 주고 살게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세운 회사가1440년 동안 유지가 되었습니다.
오랜 전통은 고급 기술을 연마하는 장점도 있지만, 신기술이 매일 등장하고 AI(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에는 옛것만 고집하다 새것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며 한국에 뒤처지고 있다.
원래의 홋카이도에는 원주민 아이누가 살고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강제합병한 후 아주 무시하고 홋카이도에는 말, 양, 곰, 아이누가 살고 있다고 쓰고 심지어 1970년대 만국 박람회 때 아이누족을 동물처럼 전시하였다.
고구려 유민이 와서 일본인들과 살고 일본 성 이름이 내자인 것이 고구려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본은 좁은 섬나라에서 서로 옹기종기 살 수밖에 없으므로 와(和) 문화가 정착되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부모는 공부하라고 제일 많이 하는데, 일본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이게 듣는다.
음식값도 각자 부담이 일반화되어있고,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단다. 노인 공경 사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노인이 본인이 몸 관리를 잘하여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교복 입는 것 좋아하고, 줄 서는 것 잘하고 집단문화가 발달하고 왕따(이지메) 원조교제 등이 일본문화란다.
일본 중학생이 귀여워 영어로 중학생이니? (middle school student?)냐고 물어보니 눈을 잠시 깜빡거리더니 큰소리로 예스 (yes) 하였습니다. 영어로 물어본 걸 알아듣고 대화한 게 재미있었는지 지나간 내 뒤에다가 큰소리로 나이스(nice) 하였다.
일본 남부에서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지나간 자리는 유명 빵집은 빵이 다 떨어졌다. 영어로도 완판 (sold out)이라 써 놔서 겨우 이해했다. 처음 개항 당시 구건물들을 관광단지로 개발하였다.
구 건물 이발소에 인형들을 실제 면도하는 것 처럼 배치하고 관광객이 문 앞에서면 손님과 이발사가 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녹음기가 작동하게 하여 관광 상품화 하였다.
누에치는 옛날 도구들을 그대로 전시하고 물레 비슷한 누에실뽑는 기계 등도 전시하였고, 마굿간 도구, 눈신발 등도 전시했다.
눈질(雪質)이 스키 타는데 최적이라 겨울에 또 오고 싶었다.
호텔 창문에 스키 슬로프가 보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