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창세기 35 장
창 35 장.wma
지금은 하프타임, 후반전 남았다. (창 35:1~15)
미국인 밥 버포드(Bob Buford)라는 사람이 쓴 “하프타임(Half Time)”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가 자신의 인생 후반부를 스스로 준비하는 주제에 대한 최고의 저서라고 추천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전반전보다 더 성공적인 인생을 원한다면 먼저 하프타임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그리고 이 시간에 반성하고 준비하여 다시 도전하면 성공적인 후반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도 하프타임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작전 짜고 준비하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냥 쉬라고 합니다. 네 계획, 네 작전 짜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어제 우리가 살펴 본 창세기 34장과 오늘 묵상할 35장을 읽으면서 피비린내가 나는 34장이 쓸데없이 삽입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없어야 하고 없어도 될 시간과 사건을 야곱이 스스로 삽입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창세기 33:16~19절을 보면 야곱이 자기를 위하여 숙곳에 집도 짓고 세겜에서는 땅도 샀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야곱이 이곳에서 장기간 체류하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삶을 짓눌렀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야곱은 몸과 마음적으로 편안한 세겜 땅에서 약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겜은 벧엘에서 50km 정도의 거리입니다. 하루면 갈 수 있었던 길이지만 10년의 세월을 그곳에서 머물렀던 것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얍복강에서 이스라엘로 새로 태어난 후 세겜에 머물지 않고 곧 바로 벧엘로 올라갔다면 야곱의 후반전은 더욱 빛이 났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단을 쌓으라”(1절)고 야곱에게 이르신 것을 보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생각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 곳이 일차 목적지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세겜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벧엘로 올라가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는 말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말씀을 듣고 다시 한 번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부터 보면 벧엘로 올라 온 야곱을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벧엘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위해서 품고 계신 생각과 계획을 다시한번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야곱은 지금까지 대부분은 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지만 벧엘에서는 직접 찾아오셔서 자기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언젠가 내가 두려움과 외로움과 절망 가운데서 방황할 때, 나를 찾아오셔서 잡아주시고 축복을 약속하셨던 주님을 처음 만났던 마음의 벧엘을 잊은 것은 아닙니까? 지금 나의 삶이 편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향하던 나의 여정이 멈추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야곱처럼 자녀 문제로, 부부문제로, 사업문제로 사면초가에 빠져 있는 분은 없습니까? 이제 나와 나의 집은 다 망했다고 단정 짓고 깊은 절망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너무 오랫동안 세겜성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1절)라는 말씀으로 인해 큰 용기를 얻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유(有)를, 사(死)에서 생(生)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가라사대 패턴,” “아마르 패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34장에서 자식들 문제로 초죽음이 되어있는 야곱을 향하여 “아마르 패턴”(히. 아마르=가라사대, 이르시되)을 구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 거하라.” 또 “거시서 단을 쌓아라.” 온통 명령입니다. 창세기 1장 강좌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명령에는 보석같은 약속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때,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그대로 순종하면 그는 보석같은 약속이 자신의 삶에 성취되는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도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생각과 판단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멋지게 신앙적으로 반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가 뭐라고 말합니까? 2절에 보면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창 35:2-3) 이 말을 한마디로 바꾸어 말하면 “우리 다 여기서 죽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의지했던 신상과 금은 고리 부적들을 상수리 아래 다 묻어 장사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창 35:4) 여러분 안식일복음 식으로 말하자면 십자가 아래서 주님과 함께 다 죽고 하나님 만나러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벧엘에서 야곱과 대면하여 말씀하셨듯이 십자가에서 죽은 내 마음에 이제 하나님 직접 찾아오셔서 나를 위한 당신의 소원과 계획을 말씀하시고 그 소원을 따라 살게 하시는 겁니다. 할렐루야! 신상을 묻고, 죽은 유모 드보라를 장사지낸 세겜의 상수리나무 밑은 우리에게는 십자가 아래입니다. 그 곳은 나를 묻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상수리나무를 알론바굿(곡함의 상수리)이라고 불렀듯이 십자가 밑에서 회개의 눈물, 은총의 부르짖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존경하는 청취자 여러분
세겜은 야곱이 육적으로는 죽을 곳이고, 영적으로 죽은 곳입니다. 반면에 벧엘은 죽을 야곱과 죽은 야곱을 살리신 곳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어진 현실과 신앙에 대하여 지금 여기서 내가 죽어야 하나님은 나를 살리십니다. 벧엘은 잃어버린 신앙을 다시 찾고, 막혔던 기도의 문이 다시 열려 기도가 불일 듯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동안 나태해진 믿음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따라가는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고군분투(孤軍奮鬪)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산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과 소원대로 인생의 전반전을 보냈다면 이제 새로운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의 시간을 가졌고, 모세는 무려 40년이란 하프타임이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3년 반의 후반전을 위하여 40일간 광야에서 하프타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후반전에 대비한 당신의 입장을 분명히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지금 시점에서 하프타임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하프타임이고 후반전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알기 원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 밑에 나를 묻습니다. 나 죽었음을 고백하오니 내 안에 임하사 오늘도 주님과 함께 행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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