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노다지는 이웃들과의 친분 관계 속에 묻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하심 같이, 사람이 행복(영생)할 수 있는 첫째 계명은 자신을 지으신 근본 아버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해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과 동일한 성정을 갖고 태어난 모든 이웃 사람들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람이라도 참된 기쁨과 행복을 얻으려면, 오직 이와 같은 선한 인간 관계에서만 비로소 행복이란 노다지 광맥을 캐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은 무시하고 오직 재물과 권세와 직위와 명예 같은 것들만 가지고 그것의 힘으로 이웃 사람들을 지배장악하는 일로 행복하려 합니다. 이 때문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1~5) 하셨습니다.
인간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합니다. 사람이란,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해 그의 형상을 닮고 태어난 모든 이웃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는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정하시는 동일한 관심사를 지녀야만 평화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항상 개별적이고 이질적인 관심사 때문에 항상 이웃들과 전쟁 상태로 지내야 합니다. 전쟁 상태도 총검으로 상대방을 살해하는 험악한 상태가 있고, 오늘날의 남북한과 같이 최종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 준비하는 휴전 상태가 있습니다.
태초에 사람들인 창조주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 사이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사 하나만 가지면 아무런 이의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家長) 되신 하나님의 뜻 하나만을 갖고 사는 아버지와 자녀들 사이에는 평화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들짐승 뱀(사단)이 이 행복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즉 간교한 사단이 사람들에게 찾아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관심사가 아닌 자신의 관심사를 사람들로 하여금 갖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 하나로만 살아야 할 사람들이 사단의 관심사를 갖게 되자 이 때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된 사람들 간에 평화는 깨어지고 사단의 관심사를 실현해 보기 위해 하나님의 관심사를 배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부터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관심사, 곧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여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사단의 관심사를 갖고 강력한 무기와 많은 재물들을 사랑해 가지려고 할 뿐, 천하보다 귀중한 생명을 지닌 이웃들인 하나님과 그의 자녀된 형제자매들을 주적으로 취급해 싸우거나 아니면 약화시켜 노예로 부려먹으려 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인류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말씀)을 중심삼아 협력상생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관심사는 들짐승 사단이 가르쳐 준 관심사로 약육강식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만들어 상생협력하여 하나 되고자 하는데,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약육강식하는 사회를 만들어 패권을 다투도록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이며, 하나님께로 태어난 천하만민들도 형제자매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여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들짐승 사단이 이런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시켜 사람과 사람 사이는 투쟁해 싸워 이겨야 할 원수지간으로 취급하고 재물은 사람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크고 많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단은 먼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해 원수 되게 하였고, 또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이 크고 많다고 선전선동질해 인구수를 줄이도록 유혹하고, 사단 자신은 어부지리로 이들 위에 군림해 하나님 노릇하고자 획책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겨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다만 싸워 이겨야 할 주적으로 취급케 해 싸우도록 한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단의 악한 관심사를 버리게 하고 오직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관심사만 갖고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즉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싸우게 된 근본 이유가 바로 저마다의 관심사인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려는 야욕 때문이라 하여 이를 버리게 하고, 그 대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관심사 하나만을 갖고 살게 되면, 거기에서 참된 행복과 평안이 영원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들짐승 사단은 이웃들을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와 재물을 사랑해 많이 가지는 것으로만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쳐 온 인류로 하여금 각기 남의 분복들을 빼앗아 갖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평화롭게 의좋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노다지가 묻혀있는 금광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하만민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통해, 나는 너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였고 너는 나의 필요를 위하여 존재하였다는 것을 깨달아 실행하는 가운데서만 참된 행복과 평화를 맛보고 누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인간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구습, 곧 사단의 가르침 속에는 너의 평안과 부강은 나의 불행과 패망이 되고, 나의 평안과 부강은 너의 불행과 패망이 된다고 착각하게 한 후 김일성 일가들처럼 남들의 평안과 부강을 빼앗아 그들 위에 왕이 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 같은 패권 야욕에 빠져 자기 이상의 모든 부강한 것들을 자기 이하의 유약한 것들로 만들려 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마저 자기 이하의 존재로 만들려 합니다. 그것을 위해 사단이 한시적으로 하나님보다 더 선한 체 하는 종교를 만들기도 하며, 또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속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런 속임수에 빠져 들면 즉시 하나님과 적대관계가 되며 또 만나고 대하는 사람들을 거짓과 술수로 제압하려 합니다. 이런 자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김일성 일가들로서 자기 한 사람의 야욕을 위해 온 민족이 총포탄으로 희생되도록 강요합니다. 이런 자의 뜻을 받드는 자들이 바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인 행복은, 너(백성)의 평안과 부강을 나(왕)의 평안과 부강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녀된 사람들에게 왕도(王道)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관심사는 너의 고통과 괴로움이 나의 쾌락과 기쁨이 되기 때문에 남(인민)들의 희생(고통)만 강요합니다. 하나님은 너(백성)의 기쁨을 나(왕)의 기쁨으로 삼았기 때문에 숨은 어시스트(협조)를 많이 하시지만, 사단은 너(인민)의 희생이 나(독재자)의 기쁨으로 삼았기 때문에 인민들의 어시스트(협조)만 강요합니다. 발이 잘하여 축구게임에서 이기면, 온 지체가 자신의 승리로 간주해 기뻐합니다. 그것은 발과 모든 지체가 공동유대감을 갖고 상생협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과의 공동유대감이 없는 암조직(김일성 일가)들은 자신들의 쾌락만을 위해 모든 이웃 사람들이 희생되기만 강요합니다.
사람이 선한 행복을 누리려고 태어났느냐, 아니면 사악한 쾌락을 즐기려고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 중 어느 한가지를 반드시 선택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선한 행복을 누리려면, 만민의 부모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사를 자신의 관심사로 만들어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하며, 반대로 사악한 악마의 쾌락을 즐기려면 만민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이 없다고 무시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이웃)들의 관심사를 오직 남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무기와 돈과 권력과 명예 같은 것들만 갖추게 합니다. 선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사이에 하나님의 관심사 하나만을 두지만, 사악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남들에게 강제로 주입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를 깨뜨릴 수 있는 최강의 무기인 돈과 권력과 지위와 명예만 갖추게 합니다.
사람은 남들을 지배장악할 수 있는 무력(돈)보다, 하나님의 관심사를 자신의 관심사가 되게하는 일이 더욱 강력합니다. 그러므로 인간 유일의 기쁨이 되는 행복을 창출하려면, 자신의 관심사를 실현할 수 있는 막강한 무력인 돈과 권력과 지위를 찾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관심사를 자신의 관심사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보다 뛰어난 부모를 만나야만 행복할 수 있을 뿐, 자신보다 유약하고 무지한 자식들을 만나면 고생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보다 유약한 자들 위에 뛰어나 저들의 왕이 되려 하지 않고 자신보다 유능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단은 자신보다 무능한 인간들 위에 뛰어나 세상에서 왕노릇을 하지만, 결국 자기가 기대고 쉴 수 있는 안식처는 못되고 도리어 자신에게 신세지려는 지옥 같은 환경만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악한 쾌락만 추구하는 자녀들을 보십시오. 결혼하자마자 자신들끼리 즐길 수 있는 유족한 환경만 갖추려 하고, 그 일의 방해요인이 되는 노부모님이나 아직도 도움받아야할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멀리해 내치려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사회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즐겁게 기쁘게 해주는 기쁨조들만 찾을 뿐, 기업주나 상사나 부하직원들과 인애로서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습니다. 물질을 얻기 위한 인간관계만 존중할 뿐, 사람들 사이에서 캐낼 수 행복의 노다지, 곧 참된 사랑은 팽개칩니다. 하나님과 그의 자녀된 이웃 사람들 사이에는 오직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인 사랑으로만 사람들의 참된 행복과 평안이 생성될 수 있을 뿐, 사단의 사악한 관심사를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막강 무기인 재물을 사랑해 가지려는 자들은 모두 아비규환의 지옥불에 떨어집니다.
이토록 인간들이 자신들의 관심사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자기 이하의 물질들이나 또 자기 수하의 사람들만 좋아하게 된 이유는, 약육강식하려는 짐승의 기질로 즐기려는 쾌락만 존재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되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의 사단이 남달리 하나님이 되고 싶었든 것은, 자신의 신분이 들짐승 뱀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사랑이란 개념을 아예 모르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무엇보다 분수 밖의 야망, 즉 어느 천년에 하나님이나 사람들과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느냐 하는 암(반역)적인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어리석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단 자신보다 못한 무능력자로 속였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을 자기보다 못한 존재로 끌어내리려면, 쿠데타 같은 무력으로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모든 생명체들의 생기(질서)를 거두어 버리면, 온 우주가 혼돈되어 사단 자신의 생명조차 안전할 수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하나님 원래의 위상과 기능을 인정해 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합법적으로 비하해 끌어내리려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형식적으로 인정해 드리되, 실질적인 지혜와 능력은 사단 자신이 한 수 위라는 것을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세뇌 시켰습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천지만물을 열심히 운행하도록 하고, 자신만은 그가 만든 피조물 최고의 걸작품이자 알맹이인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해 자기 노예로 부려 먹으려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단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질문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던졌고, 그 질문에 어리둥절한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는 묘한 탐욕을 생성시켰습니다. 이 질문과 해석 속에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또 그 능력도 인정해 주면서 반면에 사단 자신은 하나님의 깊은 뜻까지 능히 간파하여 그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는 이유까지도 꿰뚫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 과시하였습니다. 참으로 합법성을 가장한 묘한 방법으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자기 밑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을 자기 수하의 존재로 비하해 끌어내려야만, 사람들이 비로소 사단의 말을 신뢰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단, 그래서 오늘날의 사단도 이런 교묘한 수법으로 기독교라는 인간 유일무이한 종교를 인정해 주면서도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보다 타종교의 교리와 과학적인 지혜와 지식이 한 수 위라고 가르쳐 사실상 예수님의 위상을 끌어내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아담과 하와처럼 타락시켜 죽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는 말씀에 근거하여 이웃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자신의 참된 행복과 평안을 캐내어 갖지 못하게 하고, 아직도 세상 물질과 학문지식과 타종교의 설법과 조상 때부터 전래되어 오는 구습을 사랑해 그것으로 쾌락된 삶을 추구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경건을 존중해 사랑하라고 하시지만, 사람들은 김일성 일가들을 무서워해 그런 것으로는 그들을 상대해 이길 수 없다고 하여 내치고, 또 하나님은 미국보다 대한민국을 더 잘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하여 미국의 도움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며 , 또 성경지식을 인간의 학문지식과 과학지식보다 낮은 지식으로 비하시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전혀 의지하거나 실생활에 적용시켜 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다만 유명무실한 우상으로 취급해 교회 안에서만 섬기도록 하고, 그의 말씀과 사상은 바깥 세상, 곧 실생활 속에서는 일절 적용시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사단이 지금껏 인류에게 가르쳐 준 악습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사단의 기질은 들짐승 뱀의 습성이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오직 동물적인 육체의 쾌락만 즐길 뿐입니다. 사람의 행복을 채광(생산)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 사이에만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는 이 세상 그 어떤 황금이나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는 노다지 금광맥이 쓰며들어 있습니다. 이런 노다지 금광맥이 쓰며들어 있는 것을 모르고 인간들은 썩어 불타 없어질 물질적인 금은보석만 존중해 사랑하고 자신과 하나님 사이와 모든 이웃 사람들과는 적대관계가 되어 쌈박질만 합니다. 이런 짓으로는 아무리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학·박사가 되고 또 선지자 노릇을 하여도 지옥불구덩이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하나님의 아들된 자격으로 세상에 내려와 진흙 같은 서민생활을 하면서도 불평불만에 빠지지 않았든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만 자신의 참된 행복을 채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험악한 세상에 내려오지 않고 다만 하나님 우편에 편히 계셨더라면, 죽어가는 세상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일신의 안일만 챙기는 평범한 천사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일한 천국 생활을 접어두고 사람이라는 팀의 공동체 속에서 발바닥 같은 비참한 역할로라도 사람들을 제몸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육신의 안일을 위해 사람보다 재물을 더욱 사랑합니다. 사람이 영육 간에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리려면,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관심사인 사람들의 영혼 구원에 참가하여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듣는 모든 분들은 이제 이 세상을 하나님과 이웃 사람들 사이를 적대관계로 취급해 쌈박질하는 전쟁터로 곡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된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는 행복이라는 노다지 금광맥이 무진장 매장되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이웃들을 재물보다 더욱 사랑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짓밟아야 할 적으로, 또는 삶의 경쟁자들로, 집안의 노부모님과 유약한 형제자매들을 무거운 짐들로, 자녀들을 눈코 뜰새 없이 돌봐야 할 애물단지로 취급지 마십시오. 이 모든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는 물질적인 보화나 부귀영화로도 맛볼 수 없는 참된 행복과 평안의 금광맥(천국)이 묻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행복이란 노다지가 숨어있는 금광맥으로 취급하십시오. 그리하면 멀리하였던 부귀영화와 금은보화가 자진해 찾아와 여러분들을 공궤하게 됩니다. '실세자 예수'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발굴될 수 있는 행복의 노다지가 묻혀 있습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