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게 혼자 견디는 목회는 어렵습니다.
어제, 오래전에 만남을 약속했던 형님벌 되시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험난한 목회 여정 속에서도 교회의 모습을 깊이 있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 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분과 오랜 시간 담소를 나누던 중 다들 알지만 쉽게 잊혀지곤 하는 두어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목회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가정이 무너졌다는 이야기, 자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 병원에서 들은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한 번 꺼내는 것조차 힘든 이야기들이 목회자의 귀에는 자주 들려집니다.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돌아가지만, 목회자는 그 짐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기도의 제목으로, 목양이라는 책임감으로,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둡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그런데도 목회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힘들다고 하면 성도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렇게 괜찮은 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혼자 있을 때 더 커집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문제가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듭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반응이 상당히 감소한다고 말합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보다 적절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신체적 긴장도와 불안 수준이 더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 보고도 있습니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함께 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다시 버티게 만들어 줍니다. 생각해 보면 성경도 그런 장면을 많이 보여 줍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자신의 마음을 쏟아냈고, 다윗은 시편에서 두려움과 분노와 외로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목회자에게도 함께 걸어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들어 줄 사람. 조언보다 공감을 먼저 건네는 사람. 목회의 성과를 평가하지 않고 목회자의 마음을 살펴 주는 사람. 그런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편, 목회에는 의외로 자주 잊히는 중요한 도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위트입니다. 위트는 가벼움이 아닙니다. 분위기를 흐리는 농담도 아닙니다. 사람의 긴장을 풀어 주는 지혜이며, 굳어 있는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교회 모임의 자리에서 공기가 너무 무거워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모두 옳은 이야기만 하는데 얼굴은 점점 굳어 갑니다. 작은 오해가 커지고,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질수록 침묵은 더 길어집니다. 그럴 때 누군가의 짧은 한마디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별것 아닌 말인데도 모임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웃으며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리고, 대화가 다시 시작됩니다.
물론 단순한 웃음이 문제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위트는 관계를 지켜 내는 지혜에 가깝습니다. 잠언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많이 웃으면 건강해진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즐거움이 메말라 버린 공동체는 쉽게 서로를 의심하고, 작은 실수에도 예민해집니다. 반대로 따뜻한 웃음이 살아 있는 공동체는 갈등이 생겨도 다시 손을 내밀 여유를 잃지 않게 됩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진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늘 무거운 표정의 얼굴이 자신의 영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웃고, 자신을 조금은 내려놓고, 때로는 자신의 실수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완벽해서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신뢰를 얻게 됩니다. 목회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때로는 마음을 나누는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합니다. 그 둘은 목회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힘입니다. 오늘도 성도 중에 누군가는 목회자의 설교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설교보다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던 그 표정과 함께 웃었던 짧은 순간을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의외로 사람은 말보다 분위기를 더 오래 기억합니다. 서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위트 한마디가 필요한 때입니다.
평소 목회를 잘 감당하고 계신 목회자들을 만나면 위트 있는 분이 많습니다. 어제 담소를 함께 나누었던 목사님도 이런 기본적인 소양이 이미 몸에 배어있는 분이었습니다. 타고난 성품과 성격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려 합니다. 목회의 길은 정답이 없는 길이지만 가끔 좋은 해답은 있습니다. 딱딱하게 혼자 무게 잡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도 조금더 여유 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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