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20
20. 여유
우리는 삭발 목욕을 하거나
정진중에 잠시 잠깐
시간이 나면 요가를 해서
몸을 풀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포행이나
호흡을 통해 굳어진 근육과
관절을 이완 시키기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 대중들이 결의 하여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국민 학교로 가서
축구등의 운동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의 축구는
대단한 수준의 실력이었으며
축구 할때는 죽기 살기로
승부 근성을 가지고
하였습니다
또 송광사는 입구에 자그마한 소(沼)
즉 물을 막은 보가 있어서
얼음이 얼면
우리는 조그만 퍽<나무 뭉치>를
목재소<송광사 불사를 위해
도량에 있음>에서 가져다가
작대기로 아이스 하키를 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반칙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쥐어 박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철의 정진은
회향을 향해 다가 가고 있을 무렵
우리절(원효사)에서 대중공양을 왔습니다
당신들 절의 스님이 정진 하고 있기에
신도들이 먹거리며
가지 가지 필요한 공양구들을 장만해
위로차 온 것입니다
우리는 큰방에 불을 지피고
준비 해온 맛있는 점심 공양을 하고
법당에 참예후
다소의 금일봉을
선원의 입승 스님에게 전하였습니다
아마 그 경비는 사중에서 마련한 경비와 합쳐
스님들이 해제 후에 만행을 할 때
차비로 쓰도록 드리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모처럼 석달 만에 신도분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도
악도에는 안떨어 진다는
속설에
특별히 외인 출입 금지 구역인
선원에 올라
정말로 선방 문고리를 잡고
후생의 인연을 걸기도 하고
방장 스님께 예를 드리고
간단한 법어도 들었습니다
공주에서 순천 송광사는
버스로 네시간 반정도
길인데 그 먼거리를 신도들이
한번 나섯다가 눈에 막혀 되돌아 가고 다시
날을 잡아서 와주었으니
그 시주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더욱더 열심히 정진 해야겠다는
마음을 내었습니다
먼길 무사히 돌아 가도록
축원하면서 일주문 밖에서 작별 하였습니다
회자정리 생자 필멸의
이치로 생각하면
만남은 또 다른 이별의
시작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아마 그때 왔던 보살님들 중에
상당한 분들이
유명을 달리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고 또 가고 하기를
우리는 몇 겁이나 해서
이 생에 만났을까요
송광사에는 보조 스님의 부도가 관음전 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단아한 모습으로 높게 모셔진 부도는
하마터면 일본으로 반출 될 뻔 하였습니다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의 사주를 받은
도굴범들이 야간에 몰래 부도를 분해하여
짊어지고
산길로 도망을 갔더랍니다
밤새 가서 이만하면 되겠지 하면서
날 새고 나서 보니
출발한 그 자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도가 제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고
보조 스님이 계실때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보조스님이 고향수라 이름 붙이셨습니다
고향수는 지금 죽은 나무로
가지도 없고 몸체만 높이 솟아 있는데
나무 아래 글이 있습니다
보조 스님이 하셨다는 말인데
'아생 여생
아사여사'가 그 글입니다
풀이 하면 '내가 살면 네가 살고
내가 죽으면 네가 죽는다.'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보조스님이 열반 하시자
나무는 말라 죽어 버리고
다시 새닢이 나는 날
보조 스님이 환생해 온다는 전설이
붙은 나무 입니다
이미 칠백여년 전의 보조 스님이니
칠백여년을 스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나무의 항상심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여하튼 유서깊은 정혜결사의 도량
송광사에서의 구순은 그렇게 지나 갔습니다
-해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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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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