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에 눈이 어두워
관능을 정비하지 못하고
제맘대로 삶을 탐하는 사람은
마음 약해 노력함이 적고
악마에 매혹되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평안할 날이 없다.
(법구경)
중생들은 관능이 움직이는대로 쾌락을 탐합니다. 그러다가 그 것이 시들하면 새로운 쾌락거리를 찾게되고 점점 더 깊게 빠져들게 됩니다. 하지만 쾌락의 끝은 언제나 허망함 뿐입니다.
중아함 아습패경에 이릅니다. 부처님이 카시국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부처님은 하루에 한 끼 먹는 계(一日一食)를 설하고 ‘이 계를 지키면 비구들이 몸에 병이 없고 가벼우며 기력이 편해져서 안온해진다’고 가르친 뒤 몸소 실천해 보이셨다. 그 뒤 부처님은 여행을 거듭하여 키타라기 북쪽 마을 싱사파 숲에 이르렀다.
그 숲에는 앗사지와 푸나바수카 비구가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은 일일식계를 지키지 않고 하루 세 끼에 참까지 먹고 지냈다. 부처님을 수행하던 비구들은 이 사실을 알고 그에게로 가서 일일식계를 지키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두 비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루 세 끼를 먹고 참까지 먹어도 몸에 병이 없고 몸이 가벼우며 안온하고 즐겁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 즐거움을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비구들은 재차 부처님의 뜻을 전했으나 완강히 거부했다. 비구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저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그대들은 왜 내가 가르친 일일식계를 지키지 않는가?”
“저희들은 감각이 즐거우면 모든 것이 다 즐겁고 감각이 괴로우면 모든 것이 다 괴롭다고 알고 있나이다. 즉 감각이 즐거우면 즐거움은 더욱 커지고 괴로움은 더욱 작아지며, 감각이 괴로우면 괴로움은 더욱 작아지고 즐거움은 더욱 커지는 걸로 알고 있나이다.”
“이 미련한 자들아, 내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단 말인가.”
부처님은 그들을 꾸짖은 뒤 다른 비구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일러보라고 했다.
“저희들은 ‘감각이 즐거우면 그로 인해 즐거움이 불어나고 괴로움이 덜어지는 수도 있으며, 반대로 즐거움이 덜어지고 괴로움이 불어나는 수도 있다. 감각이 괴로우면 그로 인해 즐거움이 불어나고 괴로움이 덜어지는 수도 있으며, 반대로 즐거움이 덜어지고 괴로움이 불어나는 수도 있다.’고 배웠나이다.”
“그렇다. 나는 몸이 즐거운 일을 하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으며, 몸이 괴로운 일을 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수행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잘 관찰하여 닦아야 할 법은 닦고, 닦지 말아야 할 법은 닦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하면 즐거움은 더욱 불어나고, 괴로움은 더욱 덜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비구가 다 구경지(究竟智)를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배우고 익혀 도의 길로 나아가고 가르침과 꾸지람을 받으면 모든 비구가 다 구경지를 얻을 것이다.“
관능을 제어하여 바르게 행하고 삶의 족함을 즐기면 인생살이가 여여합니다. 그 것이 바로 인생의 참된 행복이니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내려놓고 쉬는 즐거움을 누리소서!
허응보우 선사는 노래합니다. "귀로 보아오고 눈으로는 들어왔으나 마음으로 듣는데 어찌 귀뿌리를 쓰랴. 모름지기 두 귀가 먼 것을 한스러워 마라 소리란 원래 듣는 데서부터 현혹된다."
계룡산인 장곡 합장
첫댓글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