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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로운 일이 있으니, 지난 12일부터 오늘까지 독고다이 선생께서 임진왜란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피력하셨습니다.
선생은 '독고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존의 견해와 다수의 견해에 맞서고 있으니 과연 이름값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선생의 독고다이스러운 견해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임진년 전역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이 게시판에 활력을 넣고 있으니,
이는 선생의 공이라 하겠습니다.
허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생의 견해에 반박하고 있으며, 소인도 비록 얇지만 임진왜란에 대해 조금 살펴본 사람이라, 선생의 독
고다이 같은 견해에 의심을 하였나이다. 그래서 감히 선생의 견해를 분석하고 검토하였사옵니다.
일단 선생이 지금까지 제기한 견해는 대략 이러하다고 보았습니다.
1.임진왜란때 조선수군의 역할(특히 한산해전과 명량해전)이 과장되었다.
2..임진년 일본수군은 해상수송대에 불과했기에 일본군의 수륙병진은 없었고 조-일간의 병력,물자 수송과 부산 방어만 담당했다.
3.임진년 일본군은 유화정책과 점령지 지배 정책을 활용하여 약탈없이 보급을 충당했다. 또한 육전에선 일본군이 우세했으며 각 번대에 보급부대가 존재했기에 육상의 보급은 문제없었으며, 보급은 대개 육상보급이다.
4.따라서 임진년에 일본군의 침공을 돈좌시킨 것은 조선의 의병,수군,관군이 아닌 명군이다.
5.임진왜란 당시 각종화기 중 가장 효율성이 좋은 것은 조총이며, 자원 소모 대비 살상력이 떨어지는 조선의 화약무기는 일본보다 못하다.
이를 바탕으로 선생의 견해를 검토해보며 선생은 그야말로 독고다이이며, 선생의 사상도 독고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사옵니다.
먼저 1.임진왜란때 조선수군의 역할(특히 한산해전과 명량해전)이 과장되었다. 를 생각하니 임진년에 조선수군이 한 일은
분산된 일본수군을 격멸하고, 일본 연합함대를 각개격파했으며, 일본의 병참기지 부산을 강습하고 한산에 주둔하여 일
본군 후방과 조-일 보급로를 위협한 것에 불과했사옵니다. 임진년 이순신의 조선수군은 옥포해전~부산포해전까지 언제나 분
산된 일본 수군을 집중된 조선수군으로 무찔렀으니, 이는 '준비안된 약한 병력으로 강한 대군을 격멸해야 위대하다'라는 독고다이
선생의 전쟁관에 위배되는 것이옵니다. '이순신의 조선수군이 정찰과 첩보,전략과 전쟁준비를 철저히 한 것은 결국 조선수군의 병
력과 물자를 아끼며 일본군을 궁지에 몰아넣은 비겁한 수작'이라 평가하는게 어떻겠사옵니까?
또한 명량해전에선 133척~300척 이상의 일본 수군을 상대로 고작 31척 밖에 격침시키지 못했으니, 이는 명량해전에 참가한
일본수군의 10~25%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뿐이며, 또한 당시 일본수군 전체 함대 2000척 중 7~15%가 참전하여
1~2%를 완전히 잃은 것에 불과하였사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수군을 지휘한 등당고호(藤堂高虎-도도 다카도라)라는
놈은 후방에 있으면서 우연히 날아온 조선군의 포환에 물에 빠진 것 가지고 호들갑 떨며 기록에 남겼으며, 일본수군은 압도적인
전력과 한양진공이란 계획이 있었음에도 명량에서 한번 데인 이후에 물러나버렸으니,일본수군 전체가 일본의 대역죄인이자 역적
이자 멍청이들요, 조선의 으뜸가는 충신들이라 사료되옵니다.
또한 참전 병력의 10%손실이 무슨 대단한 것인양 호들갑떠는 것도 독고다이 선생의 병법에는 가소로운 것에 불과하옵
니다. 이를 요즘 군제에 비교하여 따지자면 10명의 보병으로 이뤄진 분대에서 1명이 전사한 것에 지나지 않고, 1개 사
단에서 1개 연대 병력이 모조리 전사한 것에 불과하니 몇달간 보충하여 재훈련시키면 그만입니다. 또한 망실한 각종 무기와
장구류는 몇달간 보급받거나 새로 만들면 그만이며, 사기는 몇달간 휴식시키면서 먹이고 재우며 재활시키면 그만일 것이옵니다.
그러니 10% 손실가지고 '패배'니 '큰 손실'이니 따지는 자들은 독고다이 선생의 병법에 입각하면 '패배주의자'나 좀팽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두번째로 2.임진년 일본수군은 해상수송대에 불과했기에 일본군의 수륙병진은 없었고 조-일간의 병력,물자 수송과 부
산 방어만 담당했다. 를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의 전쟁양상에 맞춰 생각하니 적절하였사옵니다. 이른바 '일본수군'이라 불릴 병
력들은 임진년 초기 분산되어 있다가 이순신의 조선수군의 술수에 말려 궤멸되었고, 기껏 수군을 잘 아는 자들에게
대규모 병력과 함대를 주었더니 한산과 안골포에서 각개격파당한 뒤 부산까지 역습을 당해 해전을 포기하였으니,
결국 이순신에 의해 일본 수군은 해상수송대이자 부산 수비군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다.
세번째로 3.임진년 일본군은 유화정책과 점령지 지배 정책을 활용하여 약탈없이 보급을 충당했다. 또한 육전에선 일본
군이 우세했으며 각 번대에 보급부대가 존재했기에 육상의 보급은 문제없었으며, 보급은 대개 육상보급이다. 라고 하신
말씀은 대중에 알려진 상식과 전혀 달라서 처음에 의심을 품었사옵니다. 그러나 선생의 독고다이 같은 견해 덕분에 다시 역사를
되돌아보니 선생의 지혜가 남다름을 알 수 있었사옵니다. 적국이 비축해둔 식량을 탈취하는 것이야 전장의 불문율이니 말 할것도
없고, 일본군은 군정을 통해 점령지역에서 '합법적인 수취와 행정'을 하였사옵니다. 예컨대 함경도의 가토 기요마사는 덕
원에서 조세를 내지 않은 불충한 불령선인 672명을 잡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조세납부를 독촉하여 밀린 세금을 받아내어 버텼으니
이른바 육상에서 합법적으로 보급을 하며, 조선인들을 합리적으로 통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선인들이 충직한 일본군을 유인하여 살해하는 일이 발생하니 가토 기요마사는 군율을 엄히 적용하여 불령선인들의 마
을을 초토화시키고 그들의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이러한 미담은 조선의 점령지 각지에 시행되었으니 진년의 일본군은
그야말로 '법치의 수호자'요, '약탈없는 정의의 군대'이자 '상앙을 무색케하는 법가'라 할 수 있사옵니다.
또한 어떤이들은 '수로가 많은 물자를 신속히 수송할 수 있으니 수상보급이 중요하다.'라고 하며 독고다이 선생의 고견에 반박하
였으나 이것은 이른바 '하나는 알지만 하나는 모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태안반도나 서남해에 가면 고려,조선시대의 조운
선 탐사가 활발하게 진행되니, 이는 수상보급이 위험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 육상보급은 힘들지만 최소한 태풍이나 항해술 미숙
으로 물건을 잃을 일은 없으니 어찌 육상보급이 수상보급보다 못하겠습니까? 또한 임진년 당시 일본군은 육상보급에 만전을
기하여 한양 이남에만 10만에 달하는 일본군을 분산배치시키고 파발에 최소 200명, 보급부대에는 500명을 붙였다가,
임진년 10월 이후에는 파발과 보급부대에 수천명씩 호위부대를 배치하여 전투같은 육상보급을 수행했으니, 일본군이
육상보급에 얼마나 만전을 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육상보급을 통해 호위부대가 보급을 다 받아먹을 수 있었고 또한
보급로의 불령선인과 의병들을 교전하였으니, 일본군 입장에선 육상보급은 일석이조였던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독고다이 선생의 주장인 4.따라서 임진년에 일본군의 침공을 돈좌시킨 것은 조선의 의병,수군,관
군이 아닌 명군이다. 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실 평양성 함락이후 청천강에 배치된 2만의 평안도 조선군이야
독고다이 선생의 전투력 측정기엔 오합지졸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을 해상수송대로 만들어 해
로를 차단것이야, 육상에서 일본군이 강력한 법치와 전투보급에 의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조선 의병들이야 매
일 수십에서 수백명의 일본군을 살육하여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의 보급수요를 줄여주고 있으니, 독고다이 선생의 견해
를 따르면 조선의병들이야 말로 일본군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본의 충신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심유경의 세치
혀와 평양성에서 궤멸된 3천 요동 기병이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하여 4달간 일본군을 돈좌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5.임진왜란 당시 각종화기 중 가장 효율성이 좋은 것은 조총이며, 자원 소모 대비 살상력이 떨어지는 조선
의 화약무기는 일본보다 못하다. 라는 견해는 오늘날에도 적용될 유용한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경주성 전투에서 활용된 비격진천뢰야 최소 10명~30명, 혹은 수십명을 살상시키는 조악한 화약무기였을 뿐이었
습니다. 다만 경주성을 지키는 일본군이 겁쟁이라 그정도 폭발에 놀라 수만석의 곡식도 남겨둔채 달아나버렸습니다.
일본측도 한심하게 여겼는지 징비록을 인용하여 이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화차도 신기전을 한꺼번에 멀리까지 강하게 쏘아
댈 뿐, 정확도나 장전시간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만 조선군 장수 권율이 교활하게도 밀집된 일본군 대열을 근거리
까지 유인한 뒤에 화차를 발사하여 피해가 컸을 뿐입니다. 또한 화약무기는 막대한 화약과 철을 소모하니 그것으로 총알이
나 조총,화살을 만들어 쏜다면 더 많은 군사들을 무장시키고, 한발이라도 더 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화약무기에 대한 독고다이 선생의 관점을 현재 한국군 무장상태에 적용하면 참으로 걱정이 큽니다. 수류
탄은 한 사람이 덮으면 그걸로 끝장 아닙니까? 그러나 수류탄 만들 비용이면 K2 소총에 사용될 5.56mm 나토탄 수십
~수백발을 만들어 최대 수십~수백명을 사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크레모아도 낭비입니다. 크레모어는 적을 지근거리
까지 유인한 뒤에 직접 터뜨려야 효과를 발휘하는 무기로써, 탄환 700발을 소모하는 비효율적인 무기입니다. 그럴바엔
차라리 K2 소총탄 수천발을 생산하여 250m에서 조준사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혹시 수류탄이나 크레모
어같은 형편없는 무기로 한국군의 전투력을 낭비하려는 미국의 대전략이 개입한 것은 아닐까요?
이상으로 독고다이 선생의 견해를 살펴보니 선생의 독고다이 스러운 역사인식과 판단력은 글로 기릴만 합니다. 그래서 졸렬하게
이렇게 답서 형식으로 글을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의 견해에 대한 감상을 옛 사람의 시로써 기리고자 합니다. 많이 들어보
셨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위대한 장군 한 명이 중국의 명장에게 보낸 시를 선생에 걸맞게 바꾼 것입니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신이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연구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오묘한 헤아림은 땅의 이치에 통달했구려.
說成功旣高(설성공기고) 말씀 이루어 공덕 이미 높으시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둠이 어떠신지.
첫댓글 계사년 토탈앙에 보급논쟁의 불이 올랐다.
다이곤:도르곤은 그 논쟁에서 무엇입니까?
우엨스킥 퀜싄:먼저 비사천무님의 자료를 보고 싶어요.
제국의명장님 파이팅!!!....^^
명
쾌
하
다 !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최고 ㅠ_ㅠ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