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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라
1. 설교본문이 어떤 상황에서 기록되었는지 살펴보려면 그 당시 사회, 정치, 문화를 살펴보며 역사적 배경을 알면 보다 나은 성경해석을 할 수 있음
*설교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부분을 살펴보아야 함_11가지 항목
1) 저자는 누구인가?
2) 기록할 때 저자의 배경
3) 언제 기록했는지?
4)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5)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는?
6) 이 책을 기록한 이유는?
7) 수신자(독자)는 누구인지?
8) 수신자(독자)의 배경
9) 독자와 하나님과의 관계
10) 기록 당시 사회적 상황
11) 어떤 내용을 기록했는지?
*다음 구절의 역사적인 배경은 어떠합니까?
[마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기 때문임
*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신 복에 대한 언약을 재확인 시켜주신 부분이라고 생각함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예수님의 모든 권세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며 그것을 가르치며 지키는 자들은 함께 하신다는 가장 값지고 가치로운 언약을 구약의 약속의 말씀을 내포하여 말씀해 주심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삶에서 양심을 지키는 삶으로 업그레이드. 양심을 지키는 것은 내 안의 예수님을 잃지 않는 것.
[눅13: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갈릴리 분봉왕이었던 안티파스는 헤롯대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 아내를 취한 부당한 일로 세례요한에게 질책을 받았고 그의 아내 역시 세레요한의 질책을 받았는데 세레요한을 죽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기에 비겁하게 세레요한을 죽였고 그 일로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여우라고 불렀던 것.
*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귀신을 쫒아내고 병을 고치는 것이 기적과 이적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삼일에 완전하여 지신다는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귀가 있는 자만 들리는 말씀이기에 이 말을 전하는 자나 전해받는 자나 모두다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자들, 눈에 보이는 것조차 믿지 못하는 자들, 눈에 정확히 보이는 것도 굳이 믿지 않으려 애쓰는 자들
즉, 믿음이 한정적인 자들, 믿음이 없는 자들, 믿음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인 바리새인,서기관,사두개인 등 사회적으로 백성들을 살피고 돌보아야 하는 눈먼 장님이며 듣지 못하여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개들이 판치는 그 당시 사회에 일침을 가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 구절 속의 역사적인 배경과 현재 당신이 처한 사회적인 배경은 서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눅2:1-7]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구스도 황제가 로마에 속한 모든 식민나라의 인구조사를 하도록 명령했을 때 모든 유대인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가야먄 했고
요셉 또한 고향 베들레햄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혼자 갈 수 있었지만 임신한 마리아 때문에 함께 동행한 것.
*국민들의 기초적인 의식주를 위해서 새마을 운동을 하던 시절이 지나 이제는 국민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나라에서 돈을 주고 국민들이 놀고 먹는것까지 배려해주겠다며 선거일에 선거를 하지 못하는 국민들(선거일을 공휴일로 만들어놓고 선거를 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배려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_충분히 개인의 신용인증 수단과 같은 시스템으로도 가능하다_그 이유로 주민등록상주소지에 투표지를 보내주는 말도 안되는 극심한 배려까지 해준다. 그곳에 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날 당일에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는 배려라는 것이 말도 안된다. 예를 들면 기존 주소지에 한달이나 2주정도 출장을 가서 당일날이든 사전선거일이든 투표를 하지 못하는 이들은 완전 배제가 되는 것이다. 일관성이 전혀 없다.
직접가서 호적을 하러가는 것은 국민들의 안위가 식민나라 인구조사를 통하여 자신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왕의 아주 극단적으로 지극히 사적인 요구인 것이다.
형태는 아주 다르지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안녕과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육적인 편안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입맛에 맞춰 준 것 이다.
깨어나야 한다.
[행12:1-5]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여기서 나오는 헤롯왕은 헤롯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그가 기독교인을 심하게 박해했을 때 기독교인의 수장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수장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그런데 동명이인 야고보(요한의 형제)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는 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욱 일이 커지고 문제가 심각해 지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 그 죽음의 여러 요인을 가지고 언론화 시키는 유족들이 있다.
올라오는 분노와 상처를 미디어를 통해 공유한다. 억울한 것은 풀어내야 한다며... 이와 관련한 법이 재정되어 비슷한 일로 당하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며...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인간지 알지 못하는 이면적인 부분도 상당하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정말 그런 의도로 그런 것도 있지만 언론은 그것을 최대한 악용한다. 또 다른 사회적 타살을 양산한다.
사회적 불행을 지속적으로 전이시킨다. 유행을 시킨다. 사람들 내면의 분노를 계속 자극시킨다.
그리고 그와 관련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인다.
물리적인 죽음 또는 사회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마구 죽인다.
불행의 나비효과를 통하여 의외의 곳에서 상처의 임계점에 다달한 자들이 연속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3. 구절 속의 역사적인 배경과 당신 삶의 배경은 서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눅1:8-20]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가라는 제사장으로 성실한 사람이었으나 그에게 자녀가 없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자식을 예비했다는 소식을 천사를 통해 전해줌, 우리에게도 때때로 어떤 사람을 통하여 희소식을 듣는 경우가 있으니 그들의 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도 늘 기적을 바랐던 나로서는 사가랴이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믿음이 강해도 너무 강해서 무당이나 스님들의 말, 길에서 보던 점쟁이의 말, 누군가에게 타로점을 배우면서 해주었던 말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하고 새기며 내 안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새기는 지경까지 갔었다.
나는 생명파가 아니라 사망파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자들은 주로 불행과 불안 그리고 고난을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믿음의 대상이 아닌 이들에게 믿음을 굳게 보였는데 정말 나의 주인되신 주님에게 믿음은 따놓은 당상이다.
어찌 아니믿고 대충 믿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자들,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에게 말을 하는 자들에 한해서이다. 내 남자의 향기~ 낮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났다라는 광고가 있다.
나와 늘 동행하는 주님의 향기는 반사적으로 느끼고 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나에게 말을 전하는 자들, 그들이 예수님이기에 늘 귀를 기울인다.
4. 구절 속의 역사적인 배경과 현재 당신이 소속한 교회의 배경과 서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고전12:12-27]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가 있듯이 교회도 하나지만 그 안에 많은 지체가 있었고 그 안에 많은 지체가 있었습니다.
몸의 모든 기관과 조직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듯이 교회도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석사시절 나이가 굉장히 지극한 교수님은 늘 수업 전에 '체계'를 한자로 크게 쓰고 그것에 대한 강의만 한시간을 넘게 했다. '몸 체, 이을 계'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다 어떠한 것으로 이어져 있고 하나이고 엮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복지 관련 하여 말씀을 이어가는데 '체계'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끊임없이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대단해 보였었다. 그 영향으로 남편 회사에서 총무이사로 재직하면서 부하직원들에게 '체계'에 대한 중요성과 '체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당시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참 많이도 괴롭혔다. 어찌보면 나에게 유산과 같은 학문적 지식이 지혜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해주신 노장 교수님의 탁월한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위 구절은 말 그대로 '체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다치거나 아프면 우리는 몸의 전체 밸런스가 깨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 불안함 때문에 그것을 방치하게 되면 불편함은 더욱 가중된다.
서양인들은 불안한 것을 참지 못하긱 때문에 병원에가고, 한국인들은 불편함 때문에 병원에 간다. 그래서 한국의 의료시스템과 금융시스템은 편리한 것이다. 불편한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편안한 것만 추구하다 보니 불안한 것은 간과하는 편이다. 반대로 불안함을 극복하는 것에 집중한 서양에서는 심리학이 발달했다.
눈에 보이는 것, 육적으로만 이 구절을 묵상한다면 오산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에 우리는 더욱 주목해야 한다.
미움받을 이유가 없는 지체를 미워하거나, 시기.질투하지 않아야 할 지체를 시기.질투하여 부정적인 프리퀀시를 자꾸 보낸다.
영적인 곳에서는 영적인 것으로 다 알게 된다. 육적인 사람들은 모르지만 영적인 사람들은 그 영적인 프리퀀시와 파동과 진동에 대해서 금새 알아채고 굉장한 아픔을 느낀다.
말로만 긍정적인 말, 표정으로만 웃고 있는 것, 그것이 더 아프다.
우리는 영혼몸이 일치하는 삶은 당사자 자신에게도 매우 유익이 많다.
서로에게 긍정의 파동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5. 구절 속의 역사적인 배경과 현재 당신이 처한 대인과의 관계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습니까?
[요12:1-7]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때로는 선한 일을 하다가 욕을 얻어 먹을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도 선한 일을 행했는데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 당신을 미워할 겁니다. 당신이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처음 출석했던 교회에서 나를 양육해주시던 권사님은 자신의 기도빨이 좋다며 자신이 예전에는 그냥 해주었는데 이제는 돈을 받고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에 나간지 한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워낙 절이나 무당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자동오토시스템으로 장착 되어있던 나는 나에게 자꾸 기도를 해주고 연락을 자주 해주시는 권사님이 감사해서 베트남 단기선교를 가는데 돈이 없어서.... 를 자주 내비치셔서 계좌번호를 물어보고 104만원으로 보내드렸다. 말 그대로 1004라는 의미로 말이다. 원로목사님과 담임목사님께 회사에서 명절선물을 준비하면서 여유있게 준비해서 보내드리기 위해 권사님을 통했다. 권사님 것도 함께 챙겨서 였다.
순수하게 감사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교회에서도 기도를 많이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돈을 드리는 문화가 있는 걸로 알았었다.
나중에 돈을 받는 은사 사역자들은 가짜라는 등의 여러가지 관련하여 접하면서 분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는 않다. 정말 나를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를 많이 해주시고 도우셨다.
변질은 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상대적이니까.. 내가 자극하고 발동시킨 것이다.
회사법인카드로 기름도 넣어드렸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넣어드렸다.
나는 도둑년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 도둑년의 파장이 권사님께도 영향을 준 것이고 내가 권사님에게 욕심을 심어준 것이 되었다.
굉장히 내가 청렴결백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을 불과 몇달 전에 주님께서 회개하도록 이끌어 주셨다.
옷이나 책, 장난감을 주면 당근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한다고 했다.
좋다는 것, 괜찮아 보이는것, 가치있는 것은 계속 주었다.
교회 앞이 바로 고물상이다. 교회 집사님이 운영 하신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느즈막히 나가면 장로님과 권사님이 항상 그곳에서 무언가를 팔고 계시는 것을 본다.
고물상의 위치가 안보고 싶어도 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 앞이다.
그 뒤로 우리 회사는 모든 화환은 거절, 상가집에 화환을 보내는 것도 없애고 명절선물을 챙기는 것을 없앴다.
크리스천 기업으로 선포한 뒤에 하나님의 절기가 아닌 것들은 모두 회사에서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그런데 한두번 받아본 권사님은 나에게 누가 명절 선물을 줬다.
누가 뭘 보냈다를 반복했다.시어머니가 결혼 초반에 나에게 했던 방식이었다.
내가 어려워지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당근이라는 것을 했다.당근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참 나눔이 많다.
나눔 30번을 하면 뭔가를 준다. 그것을 받고 싶었고 나눔을 하면서 참 많은 사연들이 있어서 좋았다.그래서 요즘 당근을 하는데 따뜻한 곳이라고 했더니 권사님이 그 물건들 나 나주라니까~ 왜 나눔을 해 이러신다....내가 발동시킨 것이다.
내가 조심스럽지 못했고 유의하지 못했다.하나님은 어느 순간에 나에게 재정을 다루시는 것을 느꼈다.
예전 습성대로 헌금을 하고 섬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섬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나와 남편은 손이 굉장히 크다. 나는 나름 합리적으로 크지만 남편은 그냥 기분이 좋으면 퍼주는 스타일이다.
나의 방식도 옳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교회에 모든 헌금을 하면서 단 한번도 아깝다 괜히했다 후회했다 계산해 보지 않았다.
헌금,헌물을 할 때 정말 행복하다.
나는 모든 헌금을 계좌로 했었다. 봉투 내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기도제목을 적어서 내면 그것을 칭찬하고 또 별도로 그걸 가지고 기도를 하고 보관을 한다는 목사님들이 더러 있는 것과 기존 교회를 나와 떠돌아 다니면서 일시적이니 어쩔 수 없이 봉투에 넣어 헌금을 하다보니 그것에 더욱 정성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기도제목도 써보게 되었다. 금액을 많이 하게 될 때에는 계좌이체를 했는데 예전에 비해 적은 금액의 헌금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봉투에 넣어서 올리니 한층 더 기쁨이 가중된다.
주님은 크게, 작게 지속적으로 내가 돈을 대하는 방식과 다루는 방식, 재정에 대한 원칙과 이치를 가르쳐 주고 계신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
아주 잘하셨습니다 최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