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머물면서 블로그와 교민 사이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빗대어 "싱가포르 통신"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느덧 40 번째 글을 오늘 올렸습니다. 이 번은 영화에 대한 글이라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아래 사진은 오차드 로드에 있는 Lido Cineplex 내부입니다.]
싱가포르에 와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영화관이다. 한국의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처럼, 싱가포르도 Golden Village, Cathay, Shaw theatres등이 멀티상영관으로 싱가포르 영화관을 독점하고 있다. 중국어나 타밀어는 귀머거리에 다름이 없으니 결국 영어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이마저도 도무지 자신이 없다. 물론 영화란 것이 복합장르이므로 영상, 음악, 연기, 미장센, 카메라 움직임이나 각도, 조명 등으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감응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온전히 꿰뚫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진 않다. 그래도 시도라도 해보자며 수 차례 상영작을 검색해본 후, 미련 없이 다운로드로 선회했다. 끌리는 영화가 없다고 하면 변명일까.
영화를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킬링 타임 용 영화만큼은 피하자는 것이다. 혹자는 즐기자고 찾는데 영화가 심각하면 곤란하다고 부르대지만, 그것은 개인의 취향쯤으로 해두자. 어차피 두 시간 내외를 영화와 만나면서 까맣게 잊기보다 묵직한 여운을 얻고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피하곤 한다. 한 해에도 수만 편의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엄선한 작품들이고, 후반작업Post Production에 오랜 공을 들이기에 작품의 완성도는 인정한다.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하며 영화의 최신 기술을 집약시키기에 완벽한 영상이 탄생하는 이유도 할리우드만의 장점이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수직시스템 Vertical Integrated System에 의한 제작은 결국 상업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생래적 구조를 지녔다. ‘영화관이란 고객이 오락을 구입하는 상점과 같은 곳으로 대중은 영화란 상품을 소비한 후 그 기억만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할리우드의 견해가 사실이라면, 그들에게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쯤으로 볼 게 뻔하다.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대중의 관심을 끌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예술이 아닌 단순한 매스 미디어로서, 세상을 읽는 눈이나 유행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선악의 본질에 대한 강요나 자본의 힘에 의한 권력의 미화 등, 가치의 준거를 미리 정해놓고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일방통행을 강요할 여지가 충분하다. 어쩌면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이른바 사회주의의 선전매체처럼 그 지평이 전락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작가주의는 끼어들 틈이 없지 않겠는가. 제작사 소속의 감독, 시나리오 작가, 스태프, 배우들이 제작자의 입맛을 맞추는데 한 목소리를 낸다. 무엇보다 제작에 더해 배급, 상영과 다른 매체를 통한 확산까지 한데 엮였으니 영화자본이라는 거대공룡에 다름 아니다. 가끔씩 영화기술의 추이를 지켜볼 심산으로 블록버스터를 찾긴 하지만, 여전히 할리우드는 영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비즈니스로 여긴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싱가포르의 메이저 영화관에서 지금 상영하는 작품들 중에서 중국어나 타밀어를 제외하자 몇 개월 전 한국의 메이저 영화관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고질라>, <엑스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말레피센트> 등이 현재 싱가포르의 개봉관을 휩쓸고 있다. 그나마 Shaw theatres 중에서 오차드 로드에 있는 ‘Lido Cineplex’만이 비교적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곳곳에 독립영화관이 생겨나고, 서울시 차원에서 시네마테크 지원을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까지는 서울에 국한된 얘기일망정 고무적이란 생각이 든다. 여러 장르의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언로言路가 트였고, 보다 더 창의적이고 보편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방증이다. 공들여 만든 작품이 개봉관을 찾지 못해 사장되는 안타까운 현실은 줄 테고, 여러 작가들에 의한 다양한 시각과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내러티브를 통해 영화가 표현하는 예술의 영역을 넓힐 수만 있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일상화될 것이고, 분명 그 사회는 보다 자유로워질 테고 훨씬 풍요로워지리라 믿는다.
조만간 Lido Cineplex를 찾을 계획이다. 얼마나 영화를 이해하느냐는 둘째 문제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어떻게 영화예술을 대하는지, 엔딩 크레딧까지가 상영시간인줄은 아는지, 에티켓은 어떠한지, 영화관의 티켓팅 시스템이나 시설은 어느 수준인지를 몸으로 느끼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2014.6.3)
첫댓글 토론토에는 [동포신문]외에 일간지 두 개와 무가지들이 여럿 있는데 이런 칼럼은 없는듯 하네요~ ㅅㅅ
주제 넘게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생각도 정리할 겸해서요. 이제 한 달여만 있으면 귀국하니 그 때까지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