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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8쪽 분량의 전문인데, 조금 읽기가 지루하실 듯. 아래 사진과 함께 실린 블로그를 링크시켜놨습니다.
1. http://blog.naver.com/hpalian/220133209799
2. http://blog.naver.com/hpalian/220133240424
3. http://blog.naver.com/hpalian/220133309236
4. http://blog.naver.com/hpalian/220133350367
5. http://blog.naver.com/hpalian/220133395106
제주 올레 이야기 전문
돌이켜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어떻게 닷새 동안 130 km를 걸었을까.
한동안 ‘낯설게 보기’란 말이 근사하게 다가왔다. 낯선 것은 곧, 낯선 곳이 제격이다. 낯선 곳에서는 감춰진 ‘나’를 들춰볼 수 있다. 낯선 환경에 서있을 때 평소에 보이지 않던, 감춰지거나 숨겨져 있던 자아를 발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청춘도 아니고 쉰에 가까운 나이의 지금, 새삼스럽게 ‘자아를 찾는’ 것도 어울리지 않을 테지만,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여전히 인생은 오리무중이고, 종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에 머물러있는지 혹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쉬 즉답을 내릴 수 없는 물음들이 수시로 비집고 나온다. 그러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도리밖에 없다. 하지만 일상에 머물면서 자문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 것이다.
내면의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정의를 내리겠다는 것처럼 거창하지 않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가를 되묻는다거나 방향감각을 되살리려는 것 자체가 자아를 찾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지금껏 단 한 순간도 나의 바람을 잊은 적이 없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뇌리를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듯 녹록하지 않다. 끊임없이 그 바람을 잠재우기 일쑤다. 때로는 꿈과 현실 사이의 줄타기가 힘겹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면 꿈이 더 도드라지게 마련이 아닌가. 그래서 떠올린 것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17 개월 가까이 외국에 머문 후 귀국했으니 굳이 여행을 위해 또 다시 외국에 나가고 싶지는 않았고, 그러던 차에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제주였다. 물론 세계 7대 자연경관이니 유네스코 3관왕이라는 거창한 제주가 아니다. 이른바 호텔이나 펜션을 예약하고, 렌터카를 해서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갈까 고심하는 여행은 관광일 뿐이고, 더군다나 ‘낯섦’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관광을 통해 ‘낯설게 보기’란 쉽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결국,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질문을 던지며 그간의 삶을 회억하거나 반성하기도 하고, 낯섦이 주는 그 색다른 경험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동시에 육체적인 한계를 통해 정신이 드맑아지는 체험을 하는 데 최상의 선택은 제주 올레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거창하게 1코스부터 10코스까지를 닷새 동안 걷자는 목표를 세웠다.
첫 날 아침 8시에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1 코스 출발지인 시흥초등학교 입구에 도착한 것은 집을 나선 지 5시간이 훌쩍 지난 11:20 경. 부랴부랴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기고 헤드폰을 쓴 후 간단하게 몸을 풀고서 마침내 11:30 경에 올레길을 출발했다. 말미오름과 알오름, 두 개의 오름을 거쳐 중간 도착지에 이르고 마침내 출발지에서 15 km 떨어진 성산읍의 광치기해변에 도착한 시각은 15:10. 그렇게 4시간 가까이 걷고 또 걸으며 예의 생각을 담으려 했지만 피로감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머리가 텅 빈 상태에서 무작정 걸은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알오름을 오를 때는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는데, 얘들은 곁에 다가가도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종달리에서 식사를 한 후 목화휴게소에서 올레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고 목을 축인 후 다시 출발하자 그제서야 성산일출봉의 장관이 서서히 눈 앞에 펼쳐진다. 제주의 대표적인 명소답게 평일임에도 무수한 관광객들이 일출봉을 오르내리는 산길에 빼곡하다. 입구의 관광객 사이를 헤집고 마침내 광치기해변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지 3시간 반이 훌쩍 지난 시각이었다. 중간에 점심을 먹느라 지체했지만, 30리터 배낭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의 올레길 순례는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광치기해변에 이르기 직전에 터진목 4.3 유적지를 지나갈 때였다. 오멸 감독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2012)를 본 이후 더 애틋해진 4.3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슬픈 역사가 뇌리를 스치며 한동안 머물러있기도 했다.
무모하게 왜 걸을까, 자문하면서 곧장 2 코스를 향했다. 식산봉 입구에 이르렀을 때 이정표를 곡해한 채 처음으로 길을 잃고 말았다. 올레길을 위해 조성한 해변길을 계속 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50 미터 내외로 한번씩 보이던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1 km를 더 걸어가서 성산고 앞에 이르러서야 가이드북을 펼쳤고, 이내 코스를 이탈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식산봉까지 되돌아 오는 바람에 15 km 코스에서 2km를 더 걸어야 했다. 그 애매한 이정표도 그렇거니와 소위 매너리즘이 화(?)를 부른 셈이다. 중간 도착지인 홍마트 앞을 지나 대수산봉에 오르는 길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땀을 주르륵 흘리면서 오르막길을 한참 오른 후에야 그 땀에 대한 대가라고나 할까, 소위 제주 동부해안이 가장 잘 보인다는 대수산봉 정상에 올라섰다. 여기는 일출봉뿐 아니라 섭지코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의 우도와 성산일출봉, 정면에 자리잡은 섭지코지가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대수산봉에 오른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지루한 코스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이기 때문이다. 혼인지를 지나 한 차례 더 길을 잃고 동네 사람에게 물어서 온평포구에 당도하니 이미 해는 기울었고 사위는 어둑신해졌다. 포구 근처 ‘올레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다행히 도미토리룸에 아무도 없다. 15,000원에 독방을 차지한 셈이다. 근처 해녀의 집에 가서 전복과 오분작이 들어간 뚝배기로 늦은 저녁을 먹고 내일의 고단한 ‘상(급) 코스’ 2 개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문득 올레길을 걸으며 본 밭이나 무덤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 경계에는 어김없이 돌무더기가 쌓여져 있다. 아마도 돌에 뒤덮인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일구려다 보니 자연스레 그 돌을 쌓은 게 아니었을까. 흔히 제주도를 삼다도라고 하는데, 그 수많은 돌이 결국은 밭의 경계를 만들어준 셈이다. 출발 시 함께 버스에 내린 올레꾼이 5명 이었는데, 채 20 분도 되지 않아서 눈에 뵈지를 않더니 이후 줄곧 혼자였다. 첫 날, 자그마치 7시간을 혼자서 걸은 셈이다. 걷는 중에 느닷없이 외롭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하다. 이 긴 구간 동안 오로지 혼자였다니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그토록 원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온전히 주어졌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생각의 끈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1 코스는 내내 헤드폰을 낀 채 음악을 들으며 걸었지만, 2 코스부터는 일부러 헤드폰을 벗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생각이 깊어질까 하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외롭다는 생각과 왜 이토록 무모한 짓을 하냐는 자문을 했을 뿐, 제대로 생각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흔 여덟 살의 9월, 그 어느 하루가 무심하게 흘려갈 뿐이었다.
둘째 날은 첫날보다 4시간이나 이른 시각인 아침 7:30에 출발했는데도 결과적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3, 4 코스는 소위 ‘상코스’로서 총 거리가 44km를 넘는다. 4 코스 중간 지점에 이르니, 벌써 오후 5:30. 30 km 남짓 걸은 셈이다. 결국 어제와 비슷한 거리에서 마감을 하고야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첫 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속도 때문이다. 발바닥에 조그마한 물집이 하나 생기기도 했고, 다리 근육이 뭉친 상태에서 첫 날의 속도를 내기란 버거웠던 것. 3 코스가 21.3 km이지만, 제주 중산간의 통오름, 독자봉 코스는 가히 일품이다. 통오름의 억새 군락과 숲으로 우거진 독자봉의 힐링 코스는 아마도 올레길의 백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독자봉을 내려선 이후 김영갑 갤러리 근처에 이르렀을 때다. 음료수를 마시려고 들른 가게에서 감귤, 유자 향수를 팔았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향기도 괜찮아서 몇 개를 산 후 가게 앞에서 쉬고 있자니, 주인이 나오더니 제주 특산 초콜릿이라며 한 뭉치를 건네줬다. 자기도 수염을 기르며 무한정 걸어보는 게 소원인데, 대신 내 모습을 봐서 흐뭇하다고 하면서 자그맣지만 선물을 주고 싶었단다. 그렇게 따뜻한 제주 사람들의 마음씨를 안은 채 가려다가 부근의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파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배가 출출해진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일 테다. 식당에 들어섰더니 의외로 실내가 너무 깨끗하다. 담백한 돼지국밥과 함께 나온 밑반찬도 정갈하고 섬섬했다. 이래저래 3 코스는 거리가 멀어 힘들기는 했지만, 많은 매력을 지닌 코스임에 틀림이 없다. 이윽고 바다목장에 이르렀다. 바다목장이라고 하기에 옥돔이나 은갈치 양식을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바다를 면한 목장이었다. 신천목장은 이환경의 <각설탕>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아닌 게 아니라 꼭 영화에서 본 듯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목장 입구에 적힌 글을 통해 짐작이 맞은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올레꾼을 위해 이 목장을 개방했다고 하니, 덕분에 드넓은 초원과 바다로 이어진 최고의 풍광 속을 걸어갈 수 있는 호사를 누린 셈이다. 이것만으로 3 코스는 매력 만점인데, 소낭밭 숲길까지 나온다. 해안길을 개척해도 될 것을 부러 소낭밭으로 우회한 이유는 지극히 당연할 정도로 숲길은 근사했다. 소낭밭을 지나면 3코스가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3 km가 넘게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혼잣말로, 과연 길긴 길구나 라고 되뇌면서 남은 거리 동안 백사장을 걸어야 했고 표선 해비치를 한 바퀴 돌아가야 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고행길이란 생각에 힘에 부친 것이 사실이다. 그제서야 ‘상코스’로 불리는 의미를 알 듯하다. 마침내 6시간 반 만에 3 코스를 완주했는데, 10여 분 쉬고 곧바로 4 코스를 향했다. 23 km가 넘는 가장 긴 코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해가 기울기까지 5 시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루한 해안도로변을 하염없이 거닐어야 하는 코스이다. 해안도로변에서 진한 원두커피를 한 잔 마신 것으로 재충전을 하고 연신 발걸음을 내디뎠건만 결국 8.8 km 지점인 중간 도착지 ‘남쪽나라횟집’까지 가는 것으로 목표로 수정하고야 말았다. 그 바람에 다음 날은 4 코스 나머지와 5, 6 코스까지 강행군을 해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첫 날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지만, 가이드북에 언급된 것처럼 4 코스 중간 지점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동네 산책을 해보니 다행히 ‘민박’이라고 쓰여진 곳이 하나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허탈하게도 방이 없단다. 결국 지나면서 보았던 펜션에 묵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비수기라서 그런지 가격이 6만원이고 시설은 게스트하우스와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넉넉한 샤워시설과 널찍한 침대, 하얀 모포와 테이블까지. 냉장고와 커피 포트와 밥솥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밥까지 지을 수는 없다. 이 동네에는 편의점이라고 해야 낚시 용구에 곁들여 파는 구멍가게가 고작인데, 그 곳에는 과자류, 라면류, 음료수가 전부였다. 내일은 토산봉 망오름과 또 한 차례의 해안길을 거친 14 km거리의 4 코스 후반부를 일찌감치 끝낸 이후, 내처 5, 6 코스까지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6 코스부터는 서귀포이고, 그곳에 이르면 오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깨끗하고 아늑한 방에서 숙면을 취하여 원기를 보충해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다행히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셋째 날이다. 4 코스 중간 지점에 하나 밖에 없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시 출발한 시각은 7:40 경이다. 제일 긴 코스답게 길고도 지루한 길의 연속이었다. 토산봉 망오름까지 오르니 사위가 뚫려서 고즈넉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고 일정을 고려하여 곧바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아플 대로 아픈 다리인지라 내리막길은 뒤로 걷기도 하며 한 방향으로만 치우쳤을 근육의 피로를 풀려고도 했다. 그로부터 남원포구까지 마을길, 차도, 때로는 자갈길을 걸으며 가까스로 4 코스 종착지에 이른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지만, 6 코스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다. 남원포구의 횟집에서 점심으로 매운탕을 먹고 싶었는데 2인분을 주문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어디든 혼자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고등어구이로 점심을 대신한 채 5 코스를 향했다. 끝없어 보이는 해안도로를 지나자 해안길이 가장 아름답다는 큰엉에 도착했다. 그런데 큰엉에 이르기 전부터 개 한 마리가 목줄이 끊어진 채 걷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집을 잃은 건지, 옛집을 찾아 떠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그로부터 큰엉, 위미의 동백나무 군락을 거쳐 중간 스탬프 찍는 곤내골까지 5 km를 그 개와 동행했다. 줄곧 뒤에 근거리로 따라왔는데, 가끔씩 앞설 때면 예의 ‘영역표시’를 하고 곧이어 내 뒤를 따른다. 혀를 내밀며 씩씩거리길래 물을 준 이후, 우리는 이미 올레꾼 벗이 된 듯했다. 곤내골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 한참을 쉬어도 그 개는 내 주변만을 서성거릴 뿐 어디로든 가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내 먹을 거리라도 발견한 듯 가게 옆 귀퉁이로 들어가더니 나올 줄을 모른다. 또 따라오겠지 했는데, 결국 이후부터 다시 외로운 올레꾼으로 되돌아왔다. 아마 불렀다면 그 친구는 끝까지 나와 동행했을 것이다.
5코스의 백미는 큰엉 경승지 산책길이지만, 큰엉을 지나 위미리에 이르면 <건축학개론>에 나왔던 ‘서연의 집’이 나온다. 이제는 카페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새로운 명소가 된 곳이다. 영화의 힘은 대단한지 100m 전부터 차들로 북적거린다. 그 유명한 어린 서연의 발바닥을 확인하자 사진에 담고 싶었다. 문득 바다가 보이는 이런 곳에서 살아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제주를 실감했다. '서연의 집' 에서 조금만 가면 '사진말 전문 갤러리'가 있다. 외려 서연의 집보다 한결 운치가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발길은 뜸하다.
이윽고 쇠소깍에 도착하자 이미 5시를 조금 남겨둔 시각이었다. 도무지 속도가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6 코스를 포기하고 쇠소깍 민박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쇠소깍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면서 절묘하게 큰 웅덩이 형태를 빚은 곳이다.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쇠소’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쇠소깍에는 카누나 테우라고 불리는 뗏목 배를 타는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편의점도 두 군데나 있고. 음식점도 기념품가게도 있는 꽤 번화한 관광지로 보이는데, 아쉽게도 이 곳엔 현금인출기가 없었다. 이미 가져간 현금은 다 떨어지고 뭘 사도 카드로 지불해야 할 상황인데도 말이다. 올레에서 추천한 쇠소깍 민박 (처음엔 펜션이라고 적혔길래 아닌가 해서 이 곳을 찾느라 아픈 다리를 이끌고 한참을 헤맸다)에 여장을 풀고, 민박의 식당에서 흑돼지와 갈치국으로 조금은 과한 저녁을 먹었다. 한라산 소주도 잊지 않았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우거지를 넣은 갈치국이 일품이었다. 더러는 비리다고들 한다는데, 그 비린 맛이 외려 더 좋았다는 생각. 다행히 펜션과 식당을 겸하니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도 카드로 한꺼번에 계산하면 되겠다며 굳이 현금을 고집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일부터는 서귀포다. 은근히 이중섭 거리를 거니는 것도 설레고, 오래 전에 가봤던 정방폭포, 천지연폭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6 코스를 지나 7 코스 종착지인 강정포구가 가장 가보고 싶다. 해군기지 건설로 회자됐던 바로 그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시샘하듯, 후대를 위해 가만히 두지 않고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파괴를 일삼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목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구럼비 바위를 두 눈으로 목격한다면, 아직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둘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 올레길을 위해 때로는 나뭇가지가 이정표를 위해 희생됐지만, 바위 틈새의 구멍에 동여맨 이정표는 멋스럽기도 하고 재치가 느껴졌다. 이렇듯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을을 지나면서 동네 아주머니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가끔씩 보는 올레꾼들과는 암묵적으로 인사를 나누곤 했지만 지난 사흘 동안 고작 서너 명을 만났을 뿐이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새 나흘 째다. 지난 사흘 동안 강행군을 해선지 여러 군데서 이상증세를 보인다. 자고 일어났더니 어제부터 시큰거리던 오른쪽 발등과 발목이 붓고 결려서 도무지 걸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6코스를 지나 7코스 강정까지는 기어서라도 가고 싶었다. 3코스에 버금갈 정도로 걷기에 좋은 6코스였건만 그 여정은 악몽이었다, 채 3,4 km를 가지도 않았는데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곤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 결국 6 코스의 4 km 부근에 있는 섶섬지기 카페의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 것이다. 이대로 계속 무모하게 가야 하는가. 그 때 마침 주인이 가게 문을 열면서 옥외 스피커로 7080 음악을 들려준다. 한참 동안 음악을 들은 것이 위안이 됐는지, 커피의 힘인지 다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도 고난의 연속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천지를 지나 천지연폭포가 있는 중간지점의 올레사무국에 이르러 사정을 말했더니 구비된 의약품이 없고 서귀포 시내까지 가서 약국을 찾으라고 한다. 거기에서 30 분이면 족히 갈 거리를 한 시간여 동안 걷고, 마침내 약국에서 진통소염제와 발목 보호대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효과도 1 km 정도가 최대치였다. 그렇게 매 km마다 약을 바르고 쉬면서 6코스 종착지에 이르자 무려 6시간 반이나 걸렸다. 평소 걸음으로 3 시간이면 충분할 거리인데도 말이다.
다시 7코스를 향했다. 7코스 시작지점인 외돌개에 이르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외돌개라는 이 바위와 그 주변의 경관이 이토록 아름다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외돌개로부터 이어진 올레길은 해안길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에 참 걸을 만한 곳이란 생각이 절로 났다. 아닌 게 아니라 7코스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올레꾼을 만난 곳도 바로 이 곳 7코스이다. 100여 미터 간격으로 올레꾼 차림(?)의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물론 틈틈이 쉬면서 약을 바르느라 대부분이 나를 지나쳐 갔다. 이윽고 해거름에야 강정마을에 도착했다. 서귀포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7코스 5km를 남겨둔 강정포구 근처에서 오늘의 일정을 접었다. 10 시간 동안 걸은 것이 25 km. 조금은 허탈한 결과이지만 어쩌랴.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처럼 느껴진다. 길을 잃고 헤매서 되돌아온 5km를 포함해서 나흘 동안 120km를 걸은 셈이다.
애초에 의도한 바대로, 간간이 생각이 깊어지는 경험을 한 것은 극한의 육체적 고통이 가져다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No pain, no gain’이란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끝없이 불거져 나오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 그런 순간을 이겨낸 다음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불현듯 생각의 끈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나흘째 접어든 날은 고통이 극한에 이른 상태였지만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러자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뜻하지 않게, 도착지점인 강정까지 힘들게 온 것은 혹시 해군기지에 대한 현재의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구럼비바위는 이미 폭파돼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강정포구 일대는 현재진행형으로 해군기지가 건설 중이었지만, 여전히 플래카드와 각종 걸개그림으로 뒤 덮인 강정 마을은 동시에 평화로운 저항 중이었다.
강정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선물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이다. 목요일쯤이면 서귀포에 도착할 테니 그 때 보자고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 친구는 소위 ‘육지’에서 왔지만, 제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친구였다. 제주의 산과 들판과 해변과 오름의 꽃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식물도감을 끼고서 일일이 꽃을 익힌 덕에 이제는 200여종 이상의 꽃 이름을 외우고 있단다. 코스 길마다 흔하게 보았던 보라색 들꽃을 사진에 담으면서 슬쩍 보여주니, 막힘 없이 ‘닭의 장풀’이란 꽃이란다. 또 오름의 한가운데 분화구가 있다는 얘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척박한 땅인지라 유달리 제주 방언의 어미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까지. 예컨대, ‘놀멍, 쉬멍’은 ‘놀면서 쉬면서’라는 뜻이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데 밭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쉬면서 일하세요, 좀 노세요, 라고 했지만 바람결에 의사전달이 안 됐을 것이다. 그래서 ‘놀멍, 쉬멍’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친구는 4년여 동안 올레 전 코스를 걸었고 누구보다 올레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제주에서는 올레에 대해서 지금도 갑론을박 중이라는 얘기도 전했다. 예전 같으면 렌터카를 하거나, 택시나 관광버스를 이용해서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올레길이 생기고부터 육지사람들이 걸어만 다니니 제주의 경기가 더 안 좋아진 이유가 올레라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단다. 호텔이나 펜션보다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니 기존의 숙박업소도 힘들다며 아우성이라고 한다. 올레의 화려한 명성, 그 이면의 그늘일까. 하지만 그것은 단견일 뿐이다. 올레가 아니었으면 이번에 제주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휘황한 관광지가 제주의 전부가 아니라, ‘제주의 속살’을 맛볼 수 있으려면 올레만한 것이 없다는 친구의 말에 동의한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 검은색 자갈과 기기묘묘한 해안가 바위들, 무수한 오름들, 친절한 사람들. 올레 때문에 다시 올 이유가 생긴 것도 올레의 매력이자 가치가 아닐까.
매일 밤마다 숙소를 정하는 게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첫 날은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없어서 독방을 썼고, 둘째 날은 게스트하우스 자체가 없어서 펜션에서 화려하게(?) 하루를 묵었고, 셋째 날은 올레꾼 용 객실에서 역한 냄새가 나는 바람에 부러 웃돈을 더 주고 독방의 펜션에 묵었다. 마침내 목요일 밤. 이 번 여행에서 마지막 밤이 될 숙소는 어디가 될까. 올레길가의 한 펜션을 찾았다. 친절한 펜션 주인은 강정의 ‘게스트하우스 말’이란 곳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펜션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의외로 깨끗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다인실에 이미 세 명이 있어서 독방을 원했는데도 가격은 4만원.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아침까지 준단다. 방에는 허브차가 보온병에 가득 차있고, 아담한 테이블에 손목 거울까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친구랑 서귀포의 명소라는 어느 흑돼지 구이가게에서 자리돔 젓갈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이 곳 게스트하우스에 겸한 카페에서 이가체프를 마시며 두어 시간 수다를 떨었다. 꽃과 나무 이야기, 영화와 음악 이야기, 그리고 살아가는 얘기 등을 나누면서. 영화 얘기를 꺼내자 나더러 영화와 함께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란다. ‘함께 갈 수 있어서’란 말이 절절히 와 닿았다. 굳이 집착하지 말고, 늘 곁에 있는 채로 함께 인생을 살아가서 얼마나 행복하냐는 의미일 테다. 내 곁에는 책이 있고, 음악이 있고, 영화가 있으니 결코 외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 친구들은 언제까지 함께 갈 나의 동반자이니까. 만약에 거기에 집착하면 더 이상 친구일 수 없다는 말 또한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마지막 날이다. 출발하기 전, 전 날 밤에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를 아침에 깨어서 보니 노란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그 화려함을 뒤로한 채 게스트하우스에서 전 날 중단했던 곳까지 2 km 정도를 걸어 왔는데, 무려 50분이나 걸렸다. 이제 발목 위 정강이께까지 통증이 올라와서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어제보다 더 힘겨워서일 것이다. 다시 강정포구에 이르러 바다를 면한 곳에 고여있는 물을 보자 아마도 구럼비 바위가 건재했더라면 저보다 더 아름다웠을 것이리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착잡해진다. 이윽고 아담한 월평포구를 지나 나머지 5 km를 걸어가서 마침내 7 코스를 끝내자 3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건 걸었다기보다 기어간 것과 진배없다. 만약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철저히 준비운동을 하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제대로 갖춘 채 도전하려고 한다. 그 때는 다시 8코스 시작지점에 와서 나머지 21코스까지 한 번에 걷고 싶다.
실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닷새다. 앞으로 더 풍요롭게, 더 강인하게 삶을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제주에서의 험난한 고행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잔뜩 부은 발등과 발목이 애처롭지만, 부어서 불룩한 것만큼 생각이 이전보다 더 부풀었을까. 올레길을 거닐면서 매번 커피만 마시다가 7코스 초반부의 한 쉼터에서 ‘보리 쉰다리’라는 음료를 먹어봤다. 보리에 누룩을 넣어서 발효를 시킨 음료수인데, 더 발효를 하면 막걸리처럼 술이 된단다. 아직 발효 전이라서 꿀꺽꿀꺽 들이켠 후 다시 길을 걷는데 그래도 약간의 취기가 온다. 발효한 음식이니 몸에는 좋을 테지, 하며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듯 색다른 음식, 환상적이면서 간간이 낯선 풍경을 접하며 걸었던 지난 닷새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닷새가 지났건만 아직도 발목은 정상이 아니다. 그래도 제주의 올레길은 오롯이 마음 속 깊숙이까지 스며들었다.
원래 대로라면 마지막 날은 8코스부터 10코스까지 숨가쁘게 일정을 소화하고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결국 7코스까지가 한계인가보다. 더 이상의 도전은 만용이다. 일찌감치 일정을 접고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올레길을 걸었다고 하니까 냉, 온 찜질까지 해주며 부은 발등과 발목을 이완시켜 주었다. 마사지를 받고 나자 한결 걷기가 수월했지만 그래도 완치되려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거나 정형외과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문관광단지 일대를 돌다가 리무진버스 정류장 부근의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을 돌아보는 여유도 만끽하며, 마침내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올레에 대해 제주 사람들도 제각각 호, 불호가 있겠지만, 그래도 올레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자산인지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매 코스마다 한두 차례는 길을 잃은 적이 있다. 특히 시내에 접어들수록 그 빈도가 증가했다. 아마도 처음에도 제대로였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훼손된 것이 아닌가 싶다. 리본과 간세와 같은 이정표는 올레길의 존속에 핵심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저자거리에 표지가 온전히 남아있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보다 철저히 유지보수와 관리를 해서 올레꾼들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배려가 절실해 보였다. 곳곳에 깨진 유리병 조각도, 너저분하게 퇴락해가는 길도 지속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정표도 가급적이면 나뭇가지에 리본을 내걸지 말고 길안내 간세를 설치했으면 좋겠고, 바위 틈새에 나있는 구멍에 매단 것처럼 더 자연친화적이었으면 싶다. 7코스 중반부의 어느 집 담벼락에 장식한 성게와 소라 껍데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처럼 제주 사람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멋이 있지 않은가. 제주 사람들을 닮은 올레길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공항에서 올레 패스포트를 사서 매 코스의 시작과 중간과 끝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으며 스스로를 독려하는 아이디어는 인상적이다. 동기부여도 되고, 언젠가는 모든 코스를 다 돌아보리라는 다짐도 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한의원에 다니며 침을 맞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에서의 올레길 체험은 마음 속에 소중히 각인될 것이다.
첫댓글 걷는 동안도 대단하다 싶었는데
이렇게 모아보니
와우~~! 절로 감탄중입니다.
빨리 나으시겠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형의 친구 왈, 나이가 들었으니 2주는 갈거래요.
아, 저도 이 길 위에서 다리 부르트도록 걷고 싶네요.. 육체의 고통을 댓가로 피어오르는 정신적인 활력, 시월엔 나도 가능할까?...
저로선 좋은 경험이었어요. 닷새 동안 한결 같은 마음일 수는 없었기에 더욱.
내 오늘 비도 오는데 이 글 다 읽을랍니다. ㅎㅎ 소설 같네요!!! 잘썼는데 !!! 올해 신춘 응모는 하는겁니까???? 기대 ^^
읽어보니 제가 올레길 다 일주한듯 하네요!!!
담에 제주 올레 갈 때 한번 더 보고 가면 효과적일듯 ~~~
근데 이렇게 길고 잘 쓰는 글 저 같은 사람은 부럽기만 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