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회원가입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가입해 주세요.
아래는 로버트 김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로버트 김 같은 애국자를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1996년 9월, 당시 미 해군정보국에서 컴퓨터 분석관으로 19년 동안 근무한 로버트김은 한국대사관의 백동일 대령에게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FBI에 체포되었다. 이 때는 공교롭게도 동해안에 북한 무장 잠수함이 침범,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원성이 높던 시기였다.
로버트 김이 체포된 가장 큰 이유는 북한 잠수함과 관련이 있다. 미국은 북한 잠수함이 동해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흘 전부터 추적하고 있었으면서도 한국에는 일체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정보를 알고 있었던 로버트김은 주미한국대사관의 백 대령에게 정보를 제공했고 결국 미국 연방법원에서 국방기밀취득음모죄로 9년형과 3년 보호감찰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1994. 10. 01 백동일 대령 미국 도착
1995. 11. 29 한미정보장교회의에서 한국장교 및 백대령과 로버트 김 최초 만남
(FBI 12월부터 FBI에서 백대령, 로버트 김 감시 추정)
1996. 03. 20 한국장교들 쉐라톤 호텔에서 만남, FBI 감청
1996. 05. 01 FBI 로버트 김 사무실 감시, 감청 시작 (FBI 주장)
1996. 09. 18 강릉침투 잠수함 사건
1996. 09. 21 백대령, 로버트 김에게 잠수함 사건에 대해서 정보를 부탁
로버트 김 백동일 대령과 최후 대화 (강릉잠수함건에 대해)
1996. 09. 24 워싱턴 한국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FBI에서 로버트 김 체포, 미 검찰, 로버트 김 기밀누설죄로 기소
1996. 10. 피터 긴스버스 변호사 선임
검찰측과 Plea bargain시작
1996. 12. 여야 국회의원 100명, 미검찰총장에게 보내는 탄원서에 서명
1997. 01.03 ~ 01.10 김성곤, 조순승의원 미 국무성방문
1997. 02. 변호사가 변론서를 검찰에 제출했으나, Plea bargain협상난항
1997. 04. 01 조선호텔에서 로버트김 사건 담당변호사 (제임스고어, 마크 샌드그라운드) 와 구명위원간 조찬대담
1997. 05. 07 미 검찰과 변호인, 로버트 김 플리바겐 (PLEA BARGAIN)
1997. 07. 11 로버트 김 재판(9년형을 언도받고 현재 복역중)
1998. 06. 29 로버트 김 형량재심청구 (Patrick Kim변호사)
1999. 02. 1차 형량 재심 청구 기각
1999. 10. 2차 형량재심청구 신청, 기각
2002. 02. 부시 미 대통령 한국 방문시, 외교통일부에서 로버트 김 문제 정식 거론
2003. 01. 로버트 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탄원서 제출
2003. 05. 노무현 대통령 방미 중 로버트 김 사면 건의
한국은 북한 및 주변국에 관한 정보의 90%이상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당시 정보분야에서 수십 년 간 근무해 온 로버트 김은 이러한 조국의 현실이 답답했고, 남북 간에 서로에 대한 올바른 정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돌발적인 사건이 터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때문에 주미한국대사관 정보장교의 도움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1996년 9월, 강릉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함이 좌초된 사건이 발생한다. 컴퓨터를 통해 미국의 정보기관이 수집 분석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로버트 김은 북한 잠수정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였고, 미군의 컴퓨터에 사건 발생 3일전부터 북한 잠수정의 이동상황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로버트 김은 이 사실을 한국 측에 알려주었고, 며칠 뒤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다.
로버트 김은 자신이 미국의 법과 미 해군 정보원으로서 규율을 어기고 정보를 누설한데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그 죄를 기꺼이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밀누설죄’는 최대한이 3년형인데 그는 ‘간첩 및 간첩 음모혐의’로 인해 9년형을 선고받았다.
로버트 김이 누설한 정보의 대부분은 북한 및 한반도 주변국 정세에 관한 것이다. 그가 누설한 정보는 미국의 군사 시설에 관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미국의 안보를 해친 것도 아니다. 미국의 우방 한국을 도와 준 것에 어떻게 간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가. 더구나 로버트 김은 한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았다. 그저 부잣집에 시집온 가난한 처녀가 친정식구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 같은 마음으로 우리 정부를 도우려다 억울하게 고통 받게 된 것이다.
로버트김은 ‘대한민국 정부에 드리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제가 한국의 스파이였다면 가족에게 보상해주시고 아니었다면 미국정부에 떳떳이 밝혀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로버트김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우방인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우려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입장이 난처하다 할지라도 그에게 있어 조국이라 불리는 나라인 이상, 그리고 그가 한국을 위해서 일했다는 명백한 사실아래 우리는 그의 스파이 혐의를 벗겨줌으로써 한국 동포의 참인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떠한 대가를 받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스파이
그는 한국정부에 고용된 스파이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정보를 제공했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허술한 수법, 자신의 주소까지 적어주는 순진한 스파이
검찰과 FBI의 수사기록에 의하면 로버트 김은 컴퓨터로 수집한 정보의 비밀등급을 지워서 우편물 또는 전화나 팩스를 이용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군다나 우편물이 반송될 경우를 대비해 자신의 주소와 이름까지 적었다. 그가 비밀문서를 전달한 수단은 그저 자신의 자동차, 가방, 우표, 봉투 뿐 이다.
-미국의 안보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 스파이
로버트김이 누설한 기밀은 대부분 북한의 군부 동향 등 북한에 관한 것이며 일부가 중국, 일본 등 한국 주변국과 한미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로버트 김에게는 미국의 안보를 위해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미국은 로버트 김이 ‘국방 기밀’을 넘겨주어 미국의 안보를 위태하게 했다고 주장하는 데 그가 넘겨준 문건은 대부분 북한에 관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미 국방 기밀은 없었으며 따라서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지도 않았다. 미국 안보를 위태롭게 한 것이 증명되어야 간첩죄 적용이 가능하다.
로버트김의 전달 내용은 이미 언론 혹은 외국에 공개된 것들로 이미 공개된 내용은 군사기밀이 아니다. 로버트김이 누설한 정보가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대체로 미국의 관리들이 동의하고 있으며 CIA 보고서 어디에도 그가 유출한 정보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했다는 지적은 없다.
FBI가 수사기간 중에 문제의 정보 유출을 막지 않았던 것은 문제의 정보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 것이 아니라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가 빼돌린 정보는 1급, 2급, 대외비 등 미국의 군사무기, 통신, 컴퓨터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라고 FBI 수사관 마이클 하트만씨는 인터뷰 중 말하고 있으나 FBI 고발장 어디에도 로버트김이 미국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빼돌린 내용은 없다.
그러므로 로버트 김은 간첩이 아니라 단순한 형사범이며 따라서 외국 간첩에만 적용할 수 있는 FISA(Foreign Intelligence Surveillence Act) 법에 의해 감시, 감청 받을 수 없고, 그 것을 증거로 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로버트김은 앞으로 1년 반 정도의 형기를 남겨 놓은 채 여전히 앨런우드 교도소에 수감중이다. 더구나 출소 후에도 보호감찰 기간이 3년 남아 있어 사면 받지 않으면 미국을 떠날 수 없는 처지이다.
1996년에 수감되어 7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대한민국정부에 공개질의서를 보내거나 노무현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등 등돌린 조국, 한국정부에 끊임없이 구호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만6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꾸준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는 모두 출소 후 가족과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다시 만나고, 한국에 돌아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기 위함이다.
로버트 김의 구속으로 인해 그의 가족들은 정신적 충격에 경제적 곤란까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아야만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지냈던 부인 장명희씨는 교회 청소부로 일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쪼개 빚을 갚으며 생활을 꾸려왔다.
멀리 한국에서 맏아들 다시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들의 고통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아들이 범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사건 3년 만에 면회를 갔던 아버지 김상영씨는 면회 직후 충격을 견디지 못해 쓰러진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심장수술까지 받고 현재는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응급실과 요양원을 오가는 처지이다. 하지만 여든 여덟 고령에 병마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은 생이별한 아들과의 상봉을 기다리는 희망 때문이다.
로버트김은 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 그가 소망했던 사회사업과 민족을 위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모든 가족이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사는 것이 편하겠지만 여러 동포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한국에 돌아와 남은 여생을 청소년들의 교육사업에 바치고 싶어한다. 불우한 청소년소녀들에게 의식주(衣食住)를 제공하고 교육시키며 조기유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청소년들을 가르쳐 좋은 인재로 배출하는 게 그의 바램이다.
-로버트 김의 미래는 더 이상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가난한 친정을 돕고싶은 마음으로 아버지의 나라, 조국을 사랑했던 그가 입은 너무나 치명적인 상처는 이제 우리들의 따뜻한 손길로 감싸주어야 한다.
그의 미래는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만드는 우리의 미래이다.
-“로버트 김, 당신은 더 이상 한국이 버린 미운오리새끼가 아닙니다.”
단지 아버지의 나라, 조국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국가에 정보를 제공한 로버트김, 그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가난한 친정 조국에게 한때 “나는 조국이 버린 미운오리새끼입니까.”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시 한국정부가 로버트 김의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고 그가 미국시민권자란 이유로 그를 미국의 법 테두리로 밀어 넣었을 때 그는 조국에 대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 동포이지 미국 사람은 아니라고 당당히 외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한민족의 피를 가진 한국사람이라고 말이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그가 한시도 조국을 잊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그에게 그의 조국, 그의 동포가 절대 그를 잊거나 외면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어야한다. 우리의 사랑으로 국가와 인권의 문제인 동시에 한 가족의 슬픈 현실이 되어버린 ‘로버트 김 사건’의 막을 내려야 한다.
-“로버트 김의 석방까지는 이제 1년 남짓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석방 이후에도 보호 감찰 기간 3년이 남아있어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병든 아버지를 만나게 될 그 날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그의 조기귀국과 석방 이후의 생활 대책을 위해 순수한 당신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의 힘으로 로버트 김에게 잃어버린 명예, 안락한 가정을 돌려주고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믿었던 조국의 뜨거운 동포애를 나눠줍시다.”
첫댓글 난 스티브 김이랑 헤깔렸네...히....장사하는사람뭐가 이쁘다고 가입하나 했져~~로버트김 석방운동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