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천지간에 모든 만물과 생명체가 평화롭게 공존하거늘 작금의 인간들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면서도 탐욕과 이기심만을 키워가니 심히 안타깝다. 경외감과 감사함이 사라지니 하늘을 보되 높이만 재려하고, 땅을 보되 크기와 가격으로만 보려하니 생명의 존엄은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나는 땅의 신, 즉 지신이라, 우리 부족의 여러 흙들은 인간과 밀접하게 유대를 맺으면서 모두 인간에게 널리 이로움을 제공하여 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기에 부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인간들이 모르는 것 중에서 하나가 흙이 인간에게 때로는 훌륭한 약재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흙을 비위생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이번 기회에 먹는 흙 또는 약재로의 흙의 용도에 대하여 여기기에 한번 들려주고자 한다.
최근 유네스코 기록문화 유산에 등재된 한방의 명저인 동의보감에는 약으로 쓰이는 흙에 대하여 18가지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성분과 쓰임새에 따라서 약제이름처럼 흙에도 이름이 있는 것이다.
흙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복룡간(伏龍肝)이다. 복룡간의 출생지는 예전 온돌방에 불 지피는 전통적인 아궁이이다. 10년 이상 된 아궁이 바닥을 한 자(약 30cm) 정도 깊이로 파면 오랫동안 아궁이 불로 가열된 누런 진흙이 나오는데 이 친구가 복룡간이다. 옛날 사람들은 아궁이 속에도 신성한 용이 엎드려 있다고 믿었기에 이러한 용의 간이란 의미로 복룡간이라 불린다.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맛은 맵고 짜며, 독성이 없다.
복룡간은 비장과 위를 따뜻하게 해주고, 하초의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복통이나 설사 및 위암이나 각종 부정기적 자궁출혈 등에 활용한다. 특히 코피나 토혈 및 혈변과 혈뇨 등의 증상에 지혈작용을 한다.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흙이 적석지이다. 적석지는 황토나 고령토에서 많이 보이는 것으로 흙속에 산화규소나 철 성분이 많이 함유된 흙이다. 주성분은 규산알루미늄이다. 빛깔과 경이 곱고 풀기가 있어서 혀를 대면 붙는 느낌이 들고 성질은 매우 따뜻하고 맛은 달고 시고 맵다. 독성은 없으며 현대적인 약리실험으로 수렴작용과 독성물질 흡착작용, 위점막 보호작용, 지혈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복통과 설사 및 소변이 양이 많을 때 효과가 있으며 상처를 잘 아물게 해준다.
바다에 적조가 생기면 황토를 뿌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때에 황토내의 첱 산화물 등이 함유된 적석지의 성분이 적조의 살균작용을 가장 뛰어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흙은 살균과 적조의 퇴치에도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흙을 진단에 활용한 경우도 있다. 옛날 가난한 시절에 아이들이 고황이 들면서 흙을 잘 주어먹는 아이는 횟배가 있다고 하여 기생충을 의심하였다. 아이가 무엇을 알아서 했으리 다만 흙이 회충 등의 기생충을 견제하는 기능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하는 보호본능의 행동이라는 것을 추측을 하게 한다.
한편 약효를 배가시키거나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약제를 가공하는데 쓰는 법제의 방법에서 흙을 활용하기도 했다. 한약제를 볶거나 태우거나 할 때 흙을 이용하여 온도조절이나 효과 증진을 위한 여러 가지 약효를 변형하는 수단으로 흙이 사용되었다. 아울러 약 단지나 약을 다리는 옹기도 모두 흙으로 빗어서 구워 만든 것이다. 아울러 진흙이나 뻘을 이용한 치료법도 유명한 전통 요법이다. 최근에는 황토를 이용한 각종 건축자제나 생활용기로의 활용은 이미 활짝 개화된 단계이다.
이처럼 흙은 쓰임새에 따라서는 몸에 이롭게 응용할 수가 있다.
한편 흙이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흙 중에도 정말 해로운 흙이 있는데 바로 황사와 먼지일 것이다. 최근에는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서 공해물질과 유해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중금속과 여러 공해물질 등이 묻어 있을 수 있고, 다이옥신도 묻어온다는 연구가 보고 되기도 했다.
황사나 먼지 등의 오염물을 이기는 한약으로는 오미자, 맥문동, 인삼 등을 혼합하여 만든 생맥산과 같은 처방을 지어 마시거나 차처럼 만들어 자주 마시면 원기를 보충하고 면역력이 항진되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황사나 미세먼지로 편도나 기관지 등이 손상되면 도라지 뿌리인 길경을 다려서 마시면 좋고, 비염증상으로 발전하면 목련꽃 봉우리인 신이화란 약을 복용하면 효과를 본다.
이롭던 해롭던 우리는 흙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흙은 건강과도 밀접함을 알 수 있다. 흙을 가까이 하면 건강해진다는. 생명의 회복력이 흙에 있다. 아파트란 거대한 콘크리트 벽에 갇혀 지내는 현대인들이 과연 흙으로 회귀할 시점은 언제가 될지 아쉽기만 하다. 우리 흙 부족들은 인간이 찾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곳에서 망부석처럼 기다릴 것이다. 이제 건강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흙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건강한 가을맞이가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