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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봉초등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pegasus(송기준)
" 타향살이 몇 해든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10여년에 청춘만 늙고....."라는
약간 구슬프고 감상적이고 솔리타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타향살이라는 일제시대 때 작곡된
옛노래는 나와 같은 쉰세대에게는 어릴적에 자주 라디오에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쩌다 텔레비젼에서 들을수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들을수가 없는 노래가 되었다.
아마도 나보다 10년 정도 연배들 지금 70살을 전후한 분들 까지는 이 노래를 애창한 분들이
상당히 있었고 그 노래가 자신의 현 처지를 말하는것 같아 술좌석이나 혹은 마음이 울적일 때
많이 부르곤 하였던 노래였다. 그러나 요즈음 신세대에게는 이노래가 다른 나라 노래로 들리거나 미국의 화성탐사에 " 물이 있느니 생명체가 있느니라"는 왈가왈가 하는것보다 더 거리가 먼 관심 밖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요즈음 사회가 고속 개방시대가 되어 고향이란 개념이 희박하여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시골 깡 농촌에서 요즈음 초등학교가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어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장장 거의 100리 떨어진 당시 솜리라고 부르는 도시로 유학을 갔다.
그 이후로 과외라는것을 받아야 했기에 방학때도 마음대로 뛰놀지도 못한채
고향에서 보름 이상 거처를 하지 못하고 전국 방방 곡곡을 이곳 저곳 근무지를
떠돌며 사는 장똘뱅이 신세로 지내다가 최근에야 간신히 수도권에 자리를 잡고
살아 보려는데 어찌 어찌해서 또 몇년을 떠나 있을 신세가되었다.
짐승도 죽을땐 자기가 때어난 곳을 찾는다는데 나는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약간의 의문을
가지기도 하며 한편으론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데 어디에서 죽든 무엇이 그리 중요한일이고 안타까운일인가라고
생각이 들기도하며, 간혹 어릴때 따라 불렀던 타향살이 라는 노래를 생각해내고
내가 꼭 그런 삶을 살아온게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뭐 특별하거나 별 수 있는 인간도 아니고 여타의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기에
자꾸만 고향이라는 무형의 카테고리에 빨려들어가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떠한 힘을
느끼게되고 그것을 막을 수 없는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향 , 전라북도 김제군 진봉면 . 아무리 떨어뜨리려고 하여도 나에게 붙어다니는
원적과 본적 어느날인가부터 나는 당당히 이것을 그냥 가지고 다니기로 하였다.
전라북도라는 지방명을 말하면 어색해질것 같은 장소에서도 " 나의 고향은 전북 김제 ,
학교는 이리 남성고를 졸업하였습니다"라는 말을 당당히 하였다. 출신지 때문에 받았던
불이익과 서러움은 다름 여타의 사람과 같기에 생략을 하겠으며, 이런 마음 때문인지
이곳 저곳에 가서 살며 내가 살고 있는 그 곳 즉 타향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비교하며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고 여러 가지로 나름대로 분석도 하고 반성
또한 발전 방향도 가늠해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전라북도, 그리고 전라북도 사람 즉 전북인은 다음과 같은
좋은점을 가지고 있다.
착하다. 악의가 없다. 순박하고 순하다.
기능적이다. 예술적이고 풍부한 감성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단점도 있다.
욕망이 없다. 투쟁을 하지 않는다. 나서지 않는다. 자기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기 힘에 겨울때 기피한다.
나는 이러한 장.단점이 왜 전북인들에게 생겨났는지 몇가지 그 이유와 그것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을 생각을 해보았다.
첫째 전북인들이 정이 많고 순박한 이유는 지형적 특성으로 생긴 바로 먹거리가
풍부하였기 때문이었다.
호남평야라는 드넓은 땅을 가지고 있어 거기서 나오는 먹을거리는 넉넉하고
순박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내가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 남에게 손을 안벌려도
먹고 살기에 걱정이 없었고, 때로는 내가 한술 덜먹어도 굶주린 이웃에게 몇술
밥을 떠 넣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에 착한 마음과 순수하고 정이 많은 사람으로
자연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동전의 앞뒷면이나 손등과 손바닥 같은
이치로 욕망과 야욕이 적은 단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군산에서 부터 격포 까지 구비구비 이어진 해안선과 개펄은 풍부하고 싱싱한
물고기와 어패류를 제공하였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하루만에
동남쪽의 산이 많은 지역에 해산물을 공급 할 수가 있었으며, 동남쪽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군) 지역의 높은 산맥 그리고 그 줄기가 뻗어 이루어진 크고 작은 산에서 나오는 산나물과
산물은 역으로 평야지대와 해안가 마을로 전하여져, 온 전라북도가 풍성한
산해진미를 맛볼 수가 있었던것이다. 이렇게 먹거리 문화는 정신세계에도 엄청나게
영향을 끼쳐 순박하고 정 많은 사람들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사람이 배부르면 욕망도 없어지게 되며, 어떠한 갈등이 발생되면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생기고 이것의 단점으로 무욕망 무간섭 그리고 자기표현을 똑바로 하지 않는 경향성을 띄게 된다. 그래서 민주화가 한참 진행될때 같은 전라도라도 광주보다는 투쟁의 강도가 약하였고 ,
그 결과로 인하여 생긴 과실도 덜 먹게되었다. 지금도 정치에 관한것이나
지역적인 문제에 타 고장 사람보다도 좀더 악착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 경향을 띄는 이유가
그것 아니라도 굶어죽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먼저 앞서게되고
이로 인하여 투쟁의식이 떨어져 자기 주장을 덜하게되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그러나 전북인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것인지를 몰라서
그러는것이 아니다. 문제점의 해결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북인들은
인내와 끈기로 모순점을 극복하고 해결 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결코 정의 불의 해결
방법을 몰라서 힘으로 투쟁을 할줄 몰라서 그러는것이 아니다.
과거 임진 왜란 때 의병의 활동, 동학혁명 , 일제시대 의병 활동 등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건으로보아 이러한 것이 사실임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는 여러가지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지만. 조선조 초기에 훈요십조라는것을 발표한
이성계가 전주 이씨의 자손이라는 사실과 그가 발표한 십조중 8조 금강 이남은 산형지세가
배역(꺼꾸로 배치됨: 금강의 발원은 전라북도 무진장 지역이고 그 물길이 북쪽으로
가다가 금강을 이룬다고하여 강은 역으로 흘러서는 않된다라는 풍수지리사상에 의함)
으로 되어 있어 금강 이남에 살고 있는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우리 고장의 인맥 형성을 가로막은 지극한 불훈이었음을 다시 생각하며
이것이 순박한 전북인을 소극적으로 만드는데 앞장을 선
만장과 같은것으로 치부하고 싶다.
사람이 배부르게 되면 놀이 문화가 발달하고 놀이 문화의 결과는 노래와 춤이다.
우리의 판소리는 정말 독특한 것으로 어느나라 어느고장에서 흉내낼수 없는 내면의 노래이며
판소리에 담겨진 전체의 의미와 가사 하나하나의 느낌은 전라도 아니 전북인이라야
전적으로 깊이깊이 가슴에 와 닿게 느낄수 있는것이다.
인간 삶의 애사와 경사가 담긴 노래를 여타 지역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하고
무슨 늘어지고 팔자 타령을 한다고 무시해버리는 경우를 허다하게본다.
판소리는 구수한 사투리와 우리의 일상 생활이 곁들여지고 담겨진 노래이기 때문에
밭농사만을 짓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감동을 하기에는 아흔아홉번 손질이 간다는 논농사의 특성을 잘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방법에 모자람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판소리만이 아니라 농부가 살풀이 등 여러 노래는 삶의 한을 대신 표현항 노래였으며 계절별로 별여진 놀이가 풍악과 어우러져 숨겨진 예술성과 감성이 그대로 표현 되었다.
판소리는 어느 전북의 어느 특정지역에서 나온것이 아니었고 전북 특히 평야지대를 중심으로한 전지역이 발생장소였으며 이것은 모든 전북인이 동일한 정서와 정신적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세번째
이러한 순박하고 급하지 않은 성격은 지금도 드러나고 있다.1970초반 37-8년전 사관학교
다닐때 전라북도지사의 초청으로 도정에 관한 브리핑을 받고 실제 현장을 간적이 있었다.
그 곳중의 하나가 군산외항과 의욕적으로 공장을 유치하고자 당시에 토지 조성공사를 하고
있던 산업단지 였다. 30년후 다시 그곳을 가보았다. 도로가 쭉쭉 잘 뻗기는 하였지만
상당부분이 아직도 공터로 남아 있었고입주한 공장의 가동율도 예상 외로 저조하였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왜 아직도 계획된대로 발전을 하지못하고 수십년을 그렇게 방치하고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그 원인은 바로 투쟁을 모르는 순박하고 싸움을 잘하지 않으려하는
욕망이 없는 ,좋게 생각한다면 성질이 순하기 때문에 그랬던것이고 역설적으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어느 타지역 사람이 왈:
"전북은 공장이 없어 물이 오염이 안되었고 공기가 맑아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을때
여러분들은 무슨말을하실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테레비젼에 각지방의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가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특정 지역의
음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타향살이를 하면서 매스컴에서 맛있다고 선전하는 하는
곳 곳을 기회 있을 때마다 들리었고 먹어보고 맛을 보았다.
XX 할매집곰탕. XX 아나구, XX 아구찜, XX 김밥, XX 간 고등어, XX 통닭, 등등
그러나 결론은 선전하고 매우 달랐으며 역시 음식맛은 우리고장이 최고였으며,
우리고장 여인들의 음식 솜씨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따라 올수 없음을 느끼었다.
그들은 별로 맛도 없는것도 그렇게 공격적인 선전을 하고 팔고 있으며 돈도 많이 벌고 있다.
물론 여기에 매스컴이 한몫을 하겠지만, 전북인들은 음식을 맛있게 잘하면서도 전국적으로 전주의 비빔밥 정도만 알려지고 그밖에는 별반 알려진게 없는데 왜 그럴까라고 반성을 해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게 역시 전북인들의 성격과 같구나하는것을 느끼었다.
순하고 투쟁하지않고 남에게 자랑하지 않으려는 소박한 마음씨가 그렇게
작용을 하였으며 ,다음은 특정지역 세력에게 메스컴을 장악 당하여 선전을 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것이 다음 원인이라 꼽을수가 있겠으며 조직화 계획화가 안된점을
추가 할 수 있겠다.. 같은 재능이 있어도 방송인으로서 밀리고, 장악당한 메스컴이
전혀 관계없는 지역의 특산물과 음식을 소개 시켜줄까? 3개 주요 방송을 돌려 가면서
보아도 전북의 특정 상품과 음식 고장 소개 부분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는것이 현실이다.
전주의 한옥 마을, 도성, 곳곳에 마한 문명이 실존하고 있는데도 전혀 관심밖인것.
백제의 문화가 여러곳에 남아 있는데도 다른나라 역사인듯이 생각하는 의식과 무관심,
하회마을 같은 별 보잘것 없는곳도 유네스코에 등록이 되는데 만일 이러한 문화재들이 특정지역에 있다면 이미 세계화되고도 남았을터, 군산 공단 입주가 저조한 것하고 일맥이 상통함을 느낄수가 있다. 더불어 현재 대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새만금의 결과가 매우 주목되기도 한다.
이것만큼은 계획된대로 이루어져 많은 전북인들이 새로운 삶의 터젼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한다.(새만금 특산물 백합 죽합, 특히 크고 대나무 무늬가 새겨진 이 특산물은 이제 없어졌다 ,남도 새발낙지도 특산물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 대합과 죽합이 세계화는 커녕 우리나라에도 알려지지않은체 사라져 갔다. 이게 전북의 현실이다.)
부가하자면 이리에 최초로 세워진 라면 공장, (국민 학교 다닐때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나중에 이리에 와보니 그 공장이 턱 눈 앞에 있었는데) 특정지역에 있었다면 벌써
우리나라의 10대 그룹으로 컷을 정도였을 것이지만, 어느날 별안간 생긴 경쟁자에게
밀려버렸으며, 메리아쓰 공장 또한 그러한 상황에 처하였음을 문외한인 나에게도
그렇게 보인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몇년전에 나도 후원회에 가입하였던 서울시장
하셨던분이 중책을 도전하실려다 중도하차 하셨는데, 짖고 까부는 세상이 하도
더러워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도 해보며. 그러한 속에서 뭔가 이루어야한다고
감히 나는 이분께 "다시 일어나서 이끌어주시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기도합니다..
어느 학자가 " 지형적 영향으로 경상도 사람은 선이 굵어 리이더가 많이 나오고
전라도는 기능성있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라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경상도 사람중에 대통령이 많고 사장이 많고 전라도 사람중에는 예술인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 어느정도 공감은 하지만 대부분은 인정하지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북인들은 그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변
여건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성계의 훈요십조에 의한 대물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자기들만의 벽 샇기 인수인계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것을 보고 생각하자면 속된말로 뚜껑이 열리게 되는데, 전북인들
앞으로 이러한 시행착오는 절대 격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전라북도에 산해진미가 있드시 특산물도 많고 개발되지 않은 관광자원이있고
무엇보다 유서깊은 역사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것을 잘 개발하여
지역별로 특성화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하여 돈도 좀 벌어 잘사는 적극적인
전북인이 되어야하겠으며 , 배제된 정치 영역에서도 제목소리 내는 전북인이
되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으로 전북인의 성격 패러다임을
바꾸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성적이고 리이더 격이며 깊은 예술적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