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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1일 주일오전 수7:12-16절
정직, 그 순결함을 키우는 한해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 사진을, 아내는 남편 사신을 지갑에 넣고 다녔죠. 남편이 아내 사진을 가끔씩 꺼내 보자 동료들이 물었습니다.“집에서 매일 보는데 왜 밖에서까지?”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 아내의 얼굴을 보며 생각하지, 이 사람과 사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냐? 그렇게 생각하며 어려움을 이겨낸다네”
아내도 남편의 사진을 꺼내보자 주변에서 물었습니다. “왜 남편 사진을 보느냐?”그러자 아내가 말합니다. “내가 이런 인간도 사람 만들었는데 뭔들 못하겠냐?”>이런 걸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부부라고 해야 하나요? 우리 사회가 서로의 불완전함을 사랑과 용납함으로 받아주기 보다는 상처로 간직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블랙유머죠. 어둡고 냉소적인 세상속에 희망을 만들어가는 교회와 성도로 살기 위해 우리가 키워야할 세 번째 힘은 정직입니다.
정직이란 단순히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직은 모든 유혹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길을 걷는 용기와 내적인 힘을 갖고 세상을 깨끅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정직의 힘으로 자신의 삶의 자리에 정직의 씨앗을 심고 그 열매를 거두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고, 작은 부정직도 용납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엄격한 칼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에게는 냉정해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기 때문에 자기에게 냉정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안되면 정직한 삶의 열매를 거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을 선호합니다. 정직한 남편(아내)을 원하고, 내 자식들이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며느리와 사위를 볼 때면 정직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서 솔직하게 말해보면 달라집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정직은 몇 번째쯤의 순위에 있을까요? 사위,며느리를 맞을 때 정직은 결혼조건의 몇 번째쯤에 있을까요? 정직이 능력, 돈에 파뭍혀 작은 외침조차 내지 못하는 부정직이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직을 말하는 것이 참 힘이 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가면서 참 아이러니 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우상에게 달려가 섬겼을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해야 하지만, 우상 앞에서는 얼마든지 자기합리화와 위선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는 부정직한 사회입니다. 정치인들, 목회자들, 교육과 문화, 경제와 과학등 모든 분야에서 정직보다는 거짓과 위선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명예와 물질을 얻기 위해서 정직보다는 타협과 위선을 선택하고, 말도 안되는 이상한 논리로 자신의 거짓과 위선을 합리화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자주 했고 들었던 변명이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이 이유때문에 정직을 버리고 불법과 거짓을 선택한 결과 한국사회는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편법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자신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인 죄악을 회개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51: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영이 더럽혀졌다고 탄식합니다. 다윗에게 가장 큰 충격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모두 죄라는 사실을 알고도 행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는 것,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서 죽게 만드는 일 모두가 죄임을 그는 알고 행했던 것입니다. 지난주 한 청년과 주고받은 카톡에서 그가 세상에서의 신앙적 순결함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래 누구보다 목사가 더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지. <이단에 팔아버린 감리교회이야기: 돈을 많이 준다고 빚 갚고 살기 위해 팔았다.> 그 이야기속에 어디에도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청년만큼만 고민했더라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 과정이 더러운데 어떻게 그 열매로 그 더러움을 덮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 야구전문 기자가 야구선수들의 음주운전과 폭행등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판에 박힌 듯이 하는 “야구 갚겠다.”는 말에 신물이 난다며 “야구로 갚지 말아달라”죄값을 달게 받으라고 썼던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떤 회사의 사원모집공고에 70명이 지원을 했습니다. 시험장에는 한 사람씩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그저 사방에 큰 거울이 하나씩 걸려있었습니다. 지원자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각각의 거울 위에 적힌 질문에 맞으면 ‘예’,아니면 ‘아니오’라고 답안지에 적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거울에 비친 “이 사람은 정직합니까?”두번째 “이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셋째 “이 사람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네번째 “만일 당신이라면 이 사람을 채용하겠습니까?”였습니다.이것이 시험의 전부였습니다. 모든 지원자들이 시험을 치뤘고, 얼마후 합격자가 발표되었는데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회사는 자기의 부족함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입니다. 정직한 세상에 희망이 있습니다. 먼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앞에 정직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직한 삶과 신앙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직은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의 가치입니다.
철저한 개인주의 시대입니다.“나하고 싶은대로 산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떤 형태든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만 살수 없고 원하건 원하지 않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대학에 갔을 때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았습니다. 총칼로 국가권력을 도둑질하고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쓰고 권력을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패거리를 위해서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 마음에 정직한 나라, 평등한 나라에 대한 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투쟁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세대가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정직해지고 평등해졌을까요? 제도와 시스템도 바꿔가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각 사람이 공동체 전체의 정직을 위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정직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어떤 정치가 이루어져도 이 나라의 정직은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회를 만들어가는 개인의 정직함이 없이 나라의 정직함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수 7장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아간을 포함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수6:17절입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라”전쟁의 전리품을 개인이 갖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욕심꾸러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물건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만약 그중에서 하나라도 취하면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라”누구든지 그 재물에 손을 대면 백성 전체가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한 놈이 떠들어서 반 번체가 손바닥을 맞았던 것처럼, 한 사람이라도 욕심을 부리면 민족 전체가 고통을 겪는다고 경고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고도 탐욕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말씀이 개인의 욕심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욕심이 말씀을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아간은 욕심으로 물건을 장막에 숨겼습니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공동체의 고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직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자기가 아닌 공동체를 볼수 있어야 합니다. 내 거짓이 우리 가정에 끼칠 악영향을, 내 직장에 끼칠 손해를, 교회에 드리울 어두운 영적 그림자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아간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아이성의 전투에서 수백명이 주고, 백성들은 낙담하여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땅을 두렵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한국교회, 예신교회를 대표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 거짓과 위선이 가정과 직장, 교회와 이 나라를 더럽고 추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 한국교회와 이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자녀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정직의 첫 걸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를 인정할 때 부끄러움과 수치도 함께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실망스러운 눈초리와 비난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부인하고 변명하고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정직한 삶의 특징은 단순합니다. 마5:3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애매하게, 거직으로 말해서 거짓이 파고들어올 틈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단순한 것을 복잡하고 혼동스럽게 만드는 주특기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명령은 단하나 “동산중앙의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였습니다. 그러나 뱀은 이렇게 묻습니다. “모든 열매를 먹지 말라 하셨느냐?”그의 말은 허락된 것이 아니라 금지된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하와가 “먹으면 죽는다”고하자 “안죽는다. 하나님처럼 된다.”고 말합니다. 죽음이 초점이 아니라 ‘하나님처럼’이 초점이 됩니다. 그 유혹에 하와가 넘어가 인류는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뱀은 마치 하나님이 숨긴 진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등장합니다. 그의 목적은 하와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거짓과 위선의 유혹은 우리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의 끝은 멸망입니다. “쇼생크탈출”의 부정부패하던 소장의 결론은 자살이었습니다. 살아남아 자신의 죄를 인정할 힘과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죄의 원인을 하나님과 하와에게 돌립니다. 창3:12절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비난과 책임앞에서 아담은 비열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속사람의 모습입니다.
아간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이성 패배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패배의 원인이 여리고성의 전리품을 온전히 바치지 못한 때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을 다 모으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유다지파가 뽑혔습니다. 다음에 세라가족이 뽑혔습니다.
그 가족중에 삽디가 뽑혔습니다. 그 자녀중에 갈미가 뽑히고 마침내 아간이 뽑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점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진실, 얼마나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을까요? 그는 자신이 재물을 숨긴 사람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뽑힐 때까지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제비가 다 뽑히고 나서야 비로서 자신이 욕심을 내어 재물을 숨겼음을 고백합니다. 마지막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는 아간의 모습속에 오늘 우리의 거짓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진실이 드러나면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올해 하나님과 사람들앞에 자신의 부정직을 용기있게 고백하며 정직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정직한 삶에 도전하라
몇 년전 포브스에서‘돈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정직합니까?’라는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설문 중에 하나가 공중전화가 고장이 나서 동전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고, 밤이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이 돈을 어떻게 하겠는가?였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59%는 주머니에 넣겠다고 했고, 20%는 돈은 갖되 전화국에 어느 공중전화가 고장이라고 말해 주겠다고 했고, 20% 만이 돈을 전화국에 돌려주겠다고 응답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모든 사람이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삶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정직한 삶에 도전함으로서 세상에 희망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정직한 관계- 회개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정직한 관계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인간관계속에 덫을 놓지 말고, 사람을 자기 잣대로 재단하지 말고 순수함으로 진심을 다해 만남의 축복을 누리기 바랍니다.
정직한 인격- 뒷담화 하자 말라, 늘 자신의 눈에 들보를 보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고 인내로서 성숙을 기다릴 줄 아는 삶에 도전하십시요.
정직한 물질- 하나님앞에 드림에 정직하라. 온전한 십일조에 도전하라. 주일헌금은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마음을 드리는 훈련을 하라. 사람들과의 돈거래에 정직하고, 세금에 정직하고,스스로 낭비하여 곤란을 자초하지 말라.
한 청년의 과외 아르비이트(강남에서는 연고대라고 속여야 한다. 자신은 다른 대학을 졸업했는데...한번은 그렇게 하고 난뒤에 얼마나 자책을 했던지...앞으로는 속이고는 못하겠으니 정직하게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 결과에 상관없이 정직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나의 정직이 가정의 정직, 직장의 정직, 교회의 정직, 나라와 민족의 정직과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정직에 도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