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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한 길을 주옵소서(스 8:21-2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좁은 문과 넓은 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길을 가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우리 앞에, 좁은 문이 있고, 넓은 문이, 나란히 놓여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자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탄”과 “형통”이라는 듣기 좋은 단어가 반복되어 나오는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누구나 평탄하기를 원하고,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평탄하고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고난 가운데, 힘들고 어렵게,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평탄하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지금은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나중에는,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 누누나 바라는 소망일 것입니다.
옛날에는 가서 살 때가 없어서, 모든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면, 나중에는 똑같은 그 언덕 위에 집을 예쁘게 짓고, 모든 동네들을 내려다보며 살고 싶어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불행하고 험난한 길이요, 또 다른 하나는 행복하고 평탄한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불행하고 험난한 길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고, 평탄한 길을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램대로, 우리의 소망대로,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영국의 시인 매튜 아놀드(1822-1888)는 “자기의 길을 가려고 노력해 보라. 그리하면, 그대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도록 노력해 보라. 그러면, 그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망대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예수님께서 가라고 가르쳐주신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무슨 내용입니까?
B.C.460년경에,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제사장이자 학자였던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호세아 11:1-2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호 11:7)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 빠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부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면서,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학대와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바벨론에 끌려가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제사장이자, 학자였던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멀고 먼 길이었습니다. 쉽고 편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끌려온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멀고 먼 길이요, 도둑과 사나운 들짐승들의 위험이 도사리는 길이요, 사막의 더위와 목마름과 배고픔의 고통이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그 험하고 힘든 길을 여러 달 동안, 걸어가야 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바벨론 아하와 강가에서, 3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여기 “평탄한 길”은 지면이 넓고 평평한 길, 한 마디로, 안전한 길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 바벨론과 애굽을 오가며, 장사하던 사람들을 상대로, 재물을 약탈하고, 생명까지 빼앗던 도둑 떼들이 많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빈 손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려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많은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에스라 1:3-6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에게는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열심히 모은 재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들을 위하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많은 재물들을 챙겨주었습니다.
힘없는 어린이, 노약자, 여자들과 함께, 그리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는 길은 도둑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는 길을 누가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그 머나먼 길을, 그 누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에스라 선지자는 바벨론을 떠나기 전에,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이 평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에스라 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사 왕의 명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기에, 그리고, 에스라 선지자는 왕의 특명으로, 예루살렘으로 파견되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왕에게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지켜줄 수 있는 보병과 마병들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 선지자는 왕에게 그들을 지켜줄 호위병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왜, 에스라 선지자는 왕의 도움보다, 하나님께 금식하며 평탄한 길을 간구했습니까?
22절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는 짧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달 동안 걸어가야 하는 멀고 긴 여행길이었습니다.
1박 2일, 어디 놀러 간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챙겨야 합니까? 어디로 갈까? 어느 길로 가야, 편하게 갈 수 있을까?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까?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할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어린이, 노인들, 여자들, 많은 재물들, 멀고 긴 길이었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가는 길에 도둑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물과 생명을 빼앗길 수 있는 아주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었기에, 그들과 싸워, 물리칠 수 있는 잘 훈련된 군사들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군사들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 선지자는 왕에게 호위병을 요구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 선지자는 왕에게 호위병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 선지자는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라는 것을 굳게 믿었기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의 재물과 생명을 위협하는 적군을 막아 싸울 수 있는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에스라 선지자는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는 왕에게 군사들을 요구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시편 146:3-4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하면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시 146:5)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해서, 평탄한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형통은 인간적인 우수성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역대상 4:10절을 보면,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에게, 환난이 없는데, 근심이 없는데,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환난이 있고, 근심거리가 많았기에, 야베스는 하나님께,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 에스라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야베스처럼,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감당치 못할 어려움과 고난과 고통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나에게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어 어려운 위기가 기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위기가 축복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평탄한 길을 달라”는 에스라의 기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에스라 선지자는 여러 달 동안의 길고 위험한 여행, 도둑의 공격을 당하면 생명과 재산을 잃을 수밖에 없는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군사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금식하며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무사하게, 아무 탈없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도와,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주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험난하고 힘겨운 인생길을 가게 될 때, 도울 힘이 없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 때, 우리의 힘없는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금방 달려와 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반드시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언제 봤다고 도와달라고 해.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던가?”라는 말 한 마디가 아픈 마음을 더 쓰라리게 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라는 여호사밧의 기도처럼,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울 때, 오직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탄의 길, 평안의 길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시편 118:25절을 보면, 다윗도,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삶에도 칠흑같이 어두운 순간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장인 사울 왕에게 쫓기고,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이제 구원하소서. 이제 형통케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평탄의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 앞에 나온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이 험한 세상,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벅찹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기도할 때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오직 주님만 의지함으로, 평탄의 길, 형통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