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 깊은 가을, 靑馬를 그리다#
-청마 유치환, 그리고 정운丁芸이영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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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때 제법 많은 詩들을 탐독하였는데
좋아했던 시인중 한 분이 청마였다.
허튼 기교를 부려 어렵게 쓰지 않고 순수하며 애수와 애정이 깃든 그의 서정적 詩語들
유난히 가을에 어울림직한 행복,깃발,그리움 등
애련의 詩들은 학창시절 연애편지의 대명사.
그런데 그의 불세출 詩들 대부분이 실제
이영도 시인과의 사랑에서 나온 시이기에
느끼는 공감대 및 감성도 깊다.
'생명의 書' '바위'등 강인과 꿋꿋한 詩의 표상인
생명파 시인 그가 그녀로 인해 연모와 애련에
얽힌 주옥같은 名詩들을 탄생시킨 셈
청마에 대해선 어지간히 다 알고 있는 터라
여기선 이영도 시인과 얽힌 이야기 위주로 언급,
간추려서 기술(記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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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청마는 통영여중 국어교사로 부임.
여기서 가사교사인 정운 이영도 시인을 운명
처럼 만나게되는데 각각 38살과 29살의 나이.
청마는 기혼자였었고 정운은 미망인.
시조 시인 이호우의 친동생인 정운은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외동딸과 살고 있었다.
재색을 겸비한 촉망받는 여류 시조 시인.
주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눈길 한번 안주었던 행실이 조신했던 그녀.교사로서 도덕적 규범
으로 마음 빗장을 단단히 잠그고 살았다 할까
그러나 1946년 부터 그녀에게 戀書를 3년간
끈질기게,그것도 거의 매일 보낸 청마에게
결국 마음문을 열게된다.
('그리움'詩에서 '뭍같이 까닥도 않던 그녀'가)
그러면서 20여 년간 세월을 詩적인 동지로서
연인으로서 지내게 되는데 서로의 詩 세계가
넓어졌음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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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는 교사로 출발하여 교장을 지내면서 여러 학교에 부임했는데 학생들 사이에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시인이라 부임 첫날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전해진다.특히 여고.
엄하기보다 다정다감한 교장 선생님 인기는
대단했다. 전교생 아침 조례때 연설대신 詩를 읽어줄 때도 있었고 여고에선 여자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교사들에게 당부도 하였다하니
그들의 사랑이 알려진 계기가 정운이 책을
내면서였다.청마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死로
(1967년,59세) 유품을 정리하다 20여 년간
그녀가 받은 5천여 통의 서한중 2백여 편을
가려 출간을 하였던 것
책 제목이"사랑했으므로 幸福하였네라"인데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인지도가 높았는지
당시 25,000부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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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의 그 이면에는 그를 지탱시켜준 조강지처
권재순여사의 공功도 지대하다.
정운과의 교제를 당연 알면서 '예술혼에 대한
갈증'으로 묵인해주었기에 청마가 있었다.
그리고 청마를 따라 다녔던 친일 행적에 대한
최종 결론은 친일명부에 그 이름이 등재되지
않음으로 일단락되어 충분히 면죄부가 되었다
시인 중에서 시비詩碑가 제일 많다는 청마
그만큼 애송되고 사랑받았다는 국민시인
한편,통영은 청마뿐 아니라 유치진,윤이상,
김춘수,박경리 등 예술인들을 배출한 곳.
우체국과 함께 그들의 손때 묻은 이문당서점이 명물인바 청년기에 일부러 유서깊은 그 서점을
찾아가 책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 서점이 폐점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오래전 접했다
[자료 및 컷 포탈 사이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