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삼총사
중국의 시성이라 불리는 이백과 시선인 두보는 10살 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취향이 같아 친구라며 서로 위했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 병폐에 빠져든 이 세상은 노는 물(재물)이 다르면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진정한 친구가 되지 못한다.
아침시간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11시에 산에서 봅시다."
노백인 우리에겐 예약된 일정이란 거의 있을리 없었고, 여기서 산이란 몇차례 (지리산 피트 형태는 아니지만) 아지트처럼 여겨져 김밥에 막걸리를 마시던 장소로 특정되어 있는 곳이다.
반갑잖게도 변덕스레 일찍 다가오는 더운 햇살아래 벤치에 앉은 우리는 가져간 점심 대용, 김밥과 막걸리를 나누어 먹었다.
"오늘 정사장 이사 온다는데, 천천히 시간 맞춰 가봅시다." 친구의 말이다.
정사장, 처음엔 친구의 친구였던 그가 어느새 내게도 막역한 친구로 다가왔고, 멀리 떨어져 살던 그가 오늘 이 도시로 이사를 옮겨 든단다.
그와는 지난 어느 해 그가 사업을 하던 창녕에서 하룻밤 밤새워 인생을 이야기 했고, 나이 들어감의 세상 변화스러움을 토론했었다.
그리고 이달초 우리는 지난날 발걸음 디뎠던 낯설지 않은 계곡에서 함께 고기를 잡았고, 삼천포 그의 집으로 옮겨가서 마음을 모두 열어 젖힌채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그랬던 그 친구가 우리가 사는 도시로 더 가까이 다가드는 것이다.
친구들은 나보다 세상을 폭넓게 깊이 살았고, 한때는 사업경영도 해본 처지라 이해심도 깊다. 그래서 나이들면 점차 외골수가 되어가는 경향과는 별개로 서로간 대화가 순조로이 이루어진다.
산바람 부는 그곳을 내려와 시내를 거슬러 걸었다. 이삿짐이 도착하기 전부터 내내 돕지도 않고, 작은 배낭을 메고 주변을 서성거렸으니, 인근 주민들의 눈엔 우리가 어떻게 비쳐졌을까?
문득 서울에서 사업하다 망해 야반도주한 '전원일기' 드라마속 상태(임현식)씨의 빚잔치하던 생각이 났고, (전혀 상황이 다르지만, ㅋㅋ)나는 친구더러 빚 받으려 왔노라고 농담을 하였더니, 돈 있을때 받아 가란다.
이삿짐 정리가 대충 끝나고, 우리 셋은 한참을 걸어 조방낙지에 술안주로 버금간다는 어방낙지(식당)를 찾아 매콤달콤한 안주로 술을 마시며 마음속 도원결의를 한셈이다.
삶에 욕심 부리지말고, 생에 슬기롭게 순응하자. 그게 우리들이 마음 같이하는 여생이다. 그러다보니 당장에 하고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부담지지말고, 마음 가는대로 교류 나누며 천천히 살아가자고...
어느 유명인은 유튜브를 통하여 '노년에 친구가 많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뭔 소린인가? 누가 들으면 ㄴ망했다 말하지 않을까? 떨어지는 낙엽보고도 외로워진다는 나이에 친구를 많이 가지지 말라니 뭔가 잘못된 늬앙스가 아닌가?
그런데 그의 지론은 '가난해진 노년엔 친구가 많으면 씀씀이는 많아지고, 주머니 사정은 궁해지니 삶이 고민에 휩싸인다'는 말이렸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말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의미와 일맥 상통하되게 해석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다르다.
참고로 그 말은 오랜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Sutta-nipata)에 나오는문구로 욕망과 집착, 주위의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홀로 당당하게 수행의 길을 가라는 의미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고 보니 어째든 별 붙임성 없는 나에게 고맙게도 세부류의 친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먼저 동네 친구를 논하자면, 큰 덩치에 세상 겁낼 것 같지 않은 부산태생 앞집 빌라친구, 전국규모 부산 옛 재벌 금수저 외척으로 대학가요제까지 뚜엣으로 나섰다가 짝지만 떠서 이름 들으면 알만한 가수가 되었다는 아직도 (철없이?)꿈많은 친구, 그렇게 삼총사가 가끔은 배고픈 하이에나 되어 개미 쳇바퀴 돌듯 동네 가계를 기웃거린다.
그릭고 내가 이곳으로 이사오기전 직장동료인 두친구가 아직까지 소식 주고받고 있으니 예전부터 부인할 수 없는 삼총사이다.
그 친구들은 직장동료로 나와 노동조합 활동도 함께했다. 조합 창립 멤버들과 기회를 보자며 의견이 달랐던 나는 피할 수 없이 창립대회장이란 감투를 쓰고, 맨처음 단상 위에 올라 수백명 직원들의 마음을 흔들어야 했으나, 점차 정치권에 기대서는 조합 집행부의 행태를 보며, 조직만 끝내주고 떠나겠노라고 말하고 그곳을 떠났다.
후일 나는 사측의 담당 간부로 그들과 마주해야 했고, 두친구는 직장내 노동조합 지부장과 핵심간부가 되었다. 협상이 있던날 나는 지부장 친구를 불러내어 우산을 함께쓰고 비내리는 회사 담벽길을 함께 걸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해서 나에겐 세부류의 세친구들이 형성된 것이다. 그룹마다 특성이 다르지만, 나이 들어가며 정말 서로에게 필요한 친구가 되어 남은 여생을 보다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듯 나만 그런게 아니라,이사람들에겐 이런저런 유형의 친구들이 있기 마련이다. 고향친구, 동창, 직업(사업)상 친구, 동네 친구...
그럼에도 살아가는 범위, 마주친 상황, 실제의 역활에 따라 그 친소관계가 달리 적용되기 십상이다.
동네는 눈에 띄는 친구이고, 동향이나 동창은 마음속 친구이다. 그러나 노년에 세파에 마음마져 저당잡힌 백수끼리는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고, 같은 처지를 이해해줄 더욱 마음 절실할 친구사이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말하자면 눈에 띄고,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심원 물속을 따라 돌아야 하는 부평초와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세상은 넓고 할일은 없는 우리들, 주어진 인연에 얽힌 친구들과 건강하고, 보다 행복한 남은 시간들을 이어가기를 기도해야겠다.
* 봄날, 종묘상에서 고추 10포기를 사다 화분에 심었고, 가끔씩 창문을 열고 베란다를 내다 봅니다.
여름 장마와 태풍, 초가을 가뭄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지켜보려 합니다. 우리네 인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