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잠 8:32-36절
제 목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일 시 : 2026. 9. 16.
잠 8:32-36/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0:11,14-15/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가 있으면 선한 양이 있고, 양이 있으면 목자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선한 목자만 있고 선한 양이 없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목자는 양이 있을 때 목자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이 없으면 목자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선한 목자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당연히 선한 양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0:27-29/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한 목자와 선한 양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사를 보면 선한 목자에 대해서만 강조하여 왔지 양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한 것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무엇인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선한 목자가 계시면 당연히 선한 양도 있어야 합니다. 목자가 선한데 양은 악하다는 것도 모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주와 그리스도로 마음속에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주님의 양이 되었으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0: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양이 아니라 염소라면 당연히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으로 부르심을 받고 태어났다면 당연히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하고, 주님의 음성만 듣고 주님께서 인도하는 데로 인도함을 받고 주님만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주님의 음성 듣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34절에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라고 했는데 여기서 기다리며(리쉐코드)는 원어상 잠자지 않고 밤을 새워 망을 보며 라는 뜻으로서 기다림의 의미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측면에서 주의하여 지켜 살펴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곧 이 문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간절하고 애절한 심정으로, 그 사랑하는 사람의 문 곁에 지키고 서서 문이 열리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설주 옆에서란 문 바로 옆에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적극적이고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기다립니까? 하나님의 지혜로운 음성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약1: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1)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라고 했습니다.
5절에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 풍족하게 내려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기록한 것처럼 본절(17절)에서도 좋은 은사와 선물들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은사(도시스)와 선물(도레마)은 동일하게 주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도미 라는 동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은사도 선물도 그냥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주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① 좋은 은사란 일반 은총이 아닌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내리는 특별은총을 의미하며 ② 온전한 선물은 성도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천국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마귀의 유혹에서 범죄치 않도록 도와줍니다.
한편 빛들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빛의 왕으로 모든 빛들을 창조하시고 주관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빛들의 는 하늘의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모든 하나님의 선물을 찬양하는 표현입니다.
2)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할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된 빛으로 보여지는 하늘의 별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변함없이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변함도란 파랄라게 라고 하는데 천문학 용어로서 별들이 시차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회전하는 그림자란 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라고 하는데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변화를 의미하는지, 달의 그림자 즉 일식, 월식 등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구의 회전으로 인한 태양빛의 변화로 생기는 사물의 그림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은사와 선물은 변함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시107:9/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사모하는이란 솨카크 라고 하는데 뛰어다니다(맹수처럼), 탐욕스럽게 찾다, 갈망하다, 헤매다 라는 뜻으로 굶주린 맹수가 사냥감을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는 것처럼 그렇게 갈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족케 하며란 싸바라고 하는데 만족시키다, 즉 충분히 만족시키다, -충분하게 하다, (충분히)채우다, 가득 차다, 물리게 하다라는 뜻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넘치도록 채워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주린 영혼이란 배고픈 심령을 의미합니다. 좋은 것이란 토브라고 하는데 좋은, 아름다운, 최선의, 풍부한, 쾌활한, 사랑하는, 최고로, 기쁘다, 풍성, 달콤한, 재산, 부귀, 잘되다 라는 뜻으로 모든 면에서 아름답고 잘되고 풍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채워주신다란 마레라고 하는데 채우다, 충만하다, 흘러 넘치다, 공급하다, 만족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시34:10/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마치 어린 새끼 사자가 강한 어미 사자를 의존하듯, 인간적인 강한 그 무엇을 의존하는 자는 잠시 풍족할 수 있으나 그 의존의 대상이 사라지면 곧 궁핍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찾다란 다라쉬 라고 하는데 밟다, 자주 가다, 따르다, 요구하다, 청구하다 라는 뜻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좋은 것이란 콜 토브라고 하는데 각양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부족함이란 하쎄르 라고 하는데 결핍하다, 부족하다, 모자라다라는 뜻으로 부족함이 없다란 결핍하거나 모자라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인간을 찾아오신 이유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양을 위해서입니다.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면에서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16: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얻나니 라고 했습니다.
말씀이란 다바르라고 하는데 곧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가리키며, 주의하는 자 마스킬이라고 하는데 신중하게 행동하는 자란 뜻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신중하게 듣고 수용하여 전심을 다해 실천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은 좋은 것을 얻나니 라고 했습니다. 얻다란 마차라고 하는데 나타나다, 소유하다, 발견하다 라는 뜻으로 쉽게 얻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노력해서 얻고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가 그렇게 된다는 뜻입니다.
시84:11/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직하게란 타밈 이라고 하는데 온전한, 흠없음, 흠없는, 완전한, 온전한, 순결한, 올바른, 올바르게 라는 뜻입니다. 행하는 자란 하라크 라고 하는데 걷다, 행동하다, 여행하다, 돌아다니다 라는 뜻으로 정직하게 행하다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흠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것을 아끼지 않고 억제하지 않고 마음껏 주신다는 뜻입니다.
렘5:25/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허물은 아온이라고 하고 죄란 헤트라고 하는데 허물은 방황하다, 빗나가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으며, 죄는 표적을 놓치다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다 민족은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함으로써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허물과 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을 막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더 좋은 것들은 멀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잠8:34/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그분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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