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기록에 의하면,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청량산에는 지난 날 연대사(蓮臺寺)를 비롯한 20여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지금은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응진전(應眞殿)이 남아있다. 또한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서성(書聖)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金生窟),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이 있다.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870m.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의 명산으로서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한다. 최고봉인 장인봉(丈人峰)을 비롯하여 외장인봉(外丈人峰)·선학봉(仙鶴峰)·축융봉(祝融峰)·경일봉(擎日峰)·금탑봉(金塔峰)·자란봉(紫鸞峰)·자소봉(紫宵峰)·연적봉(硯滴峰)·연화봉(蓮花峰)·탁필봉(卓筆峰)·향로봉(香爐峰) 등의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그 가운데에서도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최고 절승으로 꼽히고 있다. 그 밖에도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가무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을 비롯하여 신묘한 절승지가 많다. 지질은 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낙동강이 이 산의 서쪽 기슭을 흐르며, 반곡폭포(盤谷瀑布)·산북폭포(山北瀑布) 등의 폭포가 이 산의 풍광을 더하여주고 있다.
이 산세를 조선 시대의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 복거총론(卜居總論) 산수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안동 청량산은 태백산맥이 들에 내렸다가 예안(禮安) 강가에서 우뚝하게 맺힌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 만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가 없다.”
이 산에는 27개의 절과 암자의 유지(遺址)가 있고, 신라 시대 이후 선현들이 수도한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원효(元曉)가 건립하였다고 하는 내청량사(內淸凉寺)와 외청량사(外淸凉寺),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유리보전(琉璃寶典), 신라 시대의 명필 김생(金生)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金生窟), 최치원(崔致遠)이 수도한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대(讀書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은신한 유명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등이 있다.
여기에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돌로 쌓았다. 둘레가 1,350척이고 안에 우물 7개소와 시내 2개가 있다. 지금은 폐하였다.”라고 기록된 청량산 성지도 있다. 이황(李滉)은 도산서원을 근거로 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수시로 청량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는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매우 사랑하여 이 산에 관한 51편의 시를 남겼고, <청량산록발 淸凉山錄跋>이라는 글도 썼으며, 또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도 하였다. 이황이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후인들이 기념으로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라는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수려한 경관과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곳곳에 있어 봉화군 및 안동시 일대의 48.76㎢가 198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특산물로는 송이버섯과 대추가 있으며 예로부터 대궐이나 사찰 건축재로 이용된 춘양목(春陽木)이 있다.
9. 봉우리
외산의 최고봉 장인봉(丈人峰)
외산(外山)의 주봉(主峯)인 장인봉은 청량사(淸凉寺) 유리보전(琉璃寶殿)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870m)이다. 봉우리 중 가장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축융봉(祝融峯)과 관리사무소에서 보았을 때 그 위용이 가장 잘 드러난다. 원래 이름은 대봉(大峯)이었는데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1495-1554)이 중국 태산(泰山) 장악(丈岳)의 장인봉에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다. 정상에서 굽어보면 산 아래는 빼어난 기암절벽들이병풍처럼 늘어서고, 눈앞에 펼쳐지는 원근 수 백리의 크고 작은 산맥과 하천들이 연출하는 장관은 예부터 선인들의 아낌을 받아 왔고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꽃 봉우리모양 연화봉(蓮花峰)
유리보전(琉璃寶殿)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우리의 모습이 처음 피어나는 연꽂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봉우리의 이름은 의상봉(義湘峰)이었으나 주세붕(周世鵬)이 연화봉으로 명명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향로의 모양과 흡사한 향로봉(香爐峰)
연화봉(蓮花峯) 바로 옆에 위치한 봉우리로 생긴 모양이 향로(香爐)와 비슷하다 하여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일출 광경이 경이로운 경일봉(擎日峰)
경일봉은 유리보전(琉璃寶殿) 바로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봉우리이다.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 경일봉 위로 해가 뜨는데 주세붕(周世鵬)이 ‘아침에 뜨는 해를 경건한 예의로 손님맞이 하듯이 한다’(寅賓旭日)의 뜻을 빌려 봉우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일봉 아래에는 김생(金生, 711-791)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굴(金生窟)과 이황(李滉)이 공부하였다던 청량정사(淸凉精舍)가 있다. 또한 김생암(金生庵) · 상대승암(上大乘庵) · 하대승암(下大乘庵)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 그 자리가 남아 있다.
웅장한 산세가 일품인 탁립봉(卓立峰)
경일봉의 위 바깥 뒤쪽에 있으며 자소봉에서 볼 때 동쪽 끝에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다.옛날에 이름이 없었을때 주신재가 탁립봉이라 명명하였다.
구층금탑이 구름 속에 솟은 것 같은 금탑봉(金塔峰)
유리보전(琉璃寶殿)을 기준으로 동남쪽에 있으며 경일봉(擎日峯)의 아래에 있다. 예전에 치원봉(致遠峯)으로 불려졌다. 기록에 따르면 봉우리 아래에는 치원암(致遠庵) · 극일암(克一庵) · 안중사(安中寺) · 상청량암(上淸凉庵) · 하청량암(下淸凉庵) 등 5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응진전(應眞殿)만 남아 있다. 금탑봉 아래에는 어풍대(御風臺) · 요초대(瑤草臺) · 총명수(聰明水) · 감로수(甘露水) · 풍혈대(風穴臺) 등의 볼거리가 있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축융봉(祝融峰)
내산의 최남단 산성마을 서쪽에 위치하며 청량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유리보전에서 보면 남쪽에 자리한다. ‘축융’이란 말은 남방의 불을 담당하는 화신(火神)을 의미하며, 주세붕이 중국 남악(南嶽)의 이름을 본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화재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했는데, 화재를 막기 위한 선인들의 깊은 뜻이 담긴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유리보전과 응진전, 외산에 있는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연적봉(硯滴峰)
탁필봉(卓筆峯)에서 서쪽으로 약 6m 떨어진 곳에 있으며 형상이 마치 연적(硯滴)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탑봉(金塔峯)과 함께 옛 이름 그대로 전해져온 봉우리이다. 맑은 날 정상에서 바라보면 소백산(小白山)과 재산면(才山面) 일대까지 요원(遙遠)하게 보인다.
붓을 뽑은 듯한 형상 탁필봉(卓筆峰)
자소봉에서 서쪽으로 30m 정도에 위치하고 있고 있는 봉우리이다. 생긴 모습이 마치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하여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周世鵬)이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과 비교하여 붙인 이름이다.
기암절벽이 하늘로우뚝솟아있는 자소봉
유리보전(琉璃寶殿)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원래 보살봉(菩薩峯)으로 불리었는데 주세붕(周世鵬)이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9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내산(內山) 가운데 가장 높으며 청량산에서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자소봉은 9층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11개의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며 청량산 불교 유적지의 중심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암자의 유지(遺地)가 남아 있다.
신비로운 새가 춤을 추는 듯한 모양의 자란봉(紫鸞峰)
선학봉(仙鶴峯)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외산(外山) 중 가장 안 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연화봉(蓮花峯)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난(鸞)새가 마치 춤을 추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주세붕(周世鵬)이 자란봉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학이 솟구치는 듯한 선학봉(仙鶴峰)
장인봉(丈人峯)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으며 봉우리 모양이 학이 공중으로 날아 솟구치는 듯 하므로 주세붕이 선학봉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을 청량산 바깥쪽에 있다하여 외산(外山)이라 부르는데 선학봉은 이 외산 중에서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외산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을 기준으로 그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늦게 신청하신 분들은 특별히 한분씩 더 모셔옷ㅅ세요
서경문, 정호열 회원님 참석입니다.
14번, 13번
이번 달도 마지막 번호 받습니다. 참가신청합니다.
12번
신청이 늦었습니다. 아직 자리가 남아서 다행이네요
11번
죄송합니다
갑자기 부고가 왔네요
내일 저녁 단체문상이라 어쩔수 없이 꼬리 내립니다
즐겁게 다녀오세요
김민정 소장님께서도 접촉 사고로 인하여 내일 함께 산행이 불가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