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성모병원 장례식장 경당
우리는 지금 김인겸 다미아노 형제님의 장례 미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온양에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다미아노 형제님은 하길순 로사 자매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3녀를 두셨습니다. 그런데 교적을 살펴보니 이 집안에 천주교 신앙을 처음 받아들인 분은 로사 자매님이십니다. 자매님은 1982년 논산 대교동 성당에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으셨네요. 아마도 남편이 교편을 잡고 있어서 자주 이사를 다니는 바람에 신앙의 힘에 의지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인 1989년 형제님도 도마동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고 견진성사는 1997년 온양 성당에서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년퇴임을 앞둔 상황이라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제가 복수동 성당에 부임한 2016년 8월 이후로 형제님을 성당에서 뵌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빈소를 방문하여 김두철 스테파노 아드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구에서 생활하던 아들이 8년 전 “뿌리한의원”을 개원하면서 부모님을 초록마을 3단지로 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워낙 조용한 성격이시라 사람들과 친분을 잘 쌓지 못하셨습니다. 오죽하면 아들이 보기에도 아버지의 삶이 별로 재미없어보였다고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집안에서 책읽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신앙의 기쁨보다도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계시느라 가정의 신앙은 온전히 로사 자매님의 몫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자매님도 거동이 불편하셔서 미사 때 자주 뵙지 못했습니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자매님은 매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하루의 가장 큰 낙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연령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셨습니다. 그렇게 빈소를 방문하여 연도를 바치면서 고인이 하느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하고 커다란 슬픔에 잠겨있는 유가족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일주일전 교통사고로 갈비뼈를 다쳤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노쇠하면서 가족들이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했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전 로사 자매님과 통화하면서 오후 3시에 고해성사를 주기로 했었는데 그 사이를 못 견디고 다미아노 형제님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임종 전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빈소에 모셨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장례 기간 동안 많은 분들의 기도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미아노 형제님과 로사 자매님을 알고 계신 본당의 많은 교우들이 비록 이 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기도해주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유가족들도 주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하면서 다미아노 형제님을 하느님께 맡겨드리세요. 한편 혹시라도 하느님 보시기에 살아생전 고인의 삶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기도로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야겠습니다.
주님! 김인겸 다미아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김 다미아노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