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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아끼지 말자, 법은 인간의 시녀가 되어야 한다"
— 예수님의 사랑 본질로 돌아가는 성경적·철학적·선교적 성찰
전국통합뉴스 임명락 기자
웃음을 아낀다고 생명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소를 아끼는 삶은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관계를 경직되게 만든다. 미소는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언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밝게 하나”(잠언 15:13)라는 말씀처럼,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미소는 하나님 나라의 맛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적 도구이다.
1. 법의 본질: 인간을 위한 시녀인가, 인간을 심판하는 주인인가?
오늘날 세상과 교회 안에서 갈등의 뿌리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이 인간의 시녀가 되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인간을 자신의 시녀로 삼으려 할 때이다.
세상법(民法·刑法)이나 종교법(교회 헌법, 규정, 전통) 모두 본래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법이 절대화되고, 형식과 규범이 사랑보다 앞서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람을 옭아매는 올무가 된다. 예수님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셨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마가복음 2:27)
율법주의자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데 집착할 때, 예수님은 “사람”을 그 중심에 두셨다. 바리새인들이 사람을 법의 희생물로 삼을 때, 예수님은 사랑으로 법을 해석하고, 법을 초월하셨다. “네가 나를 정죄하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요한복음 8:11)라는 음부의 여인에게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과 본질이 심판이 아닌 용서와 회복, 사랑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2. 철학적·학제적 관점: 법과 사랑의 긴장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正義)를 논하며, 법이 공동선(共通善)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법이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라고 보았으나, 동시에 공평(Equity)의 원리를 통해 법의 경직성을 보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법(Natural Law)을 하나님의 영원법(Eternal Law)의 표현으로 보았으며, 인간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했다.
현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성을 상실하는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관료제적 법치주의’를 지적했다. 법이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릴 때, 그것은 폭력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의 계시가 모든 인간 제도(법 포함)를 상대화한다고 보았고,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율법 아래 사는 것”이 아닌 “은혜 아래 사는 것”을 강조하며, 사랑의 윤리를 최우선에 두었다. 법은 사랑의 표현이 되어야지, 사랑을 제한하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교회 안에서의 적용: 사랑의 공동체로의 회복
교회 안에서 법(헌법·규정·관습)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 사례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본다. 분쟁이 발생하면 먼저 법 조항을 찾고, 성경보다 규정을 앞세우며, 사랑의 회복보다 ‘처벌’과 ‘정죄’를 우선시한다. 이는 예수님의 마음과 정반대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고 선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율법을 완성하라”(갈라디아서 5:14)고 촉구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법을 사랑의 시녀로 삼는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4. 선교적 함의: 미소 짓는 공동체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웃음을 아끼지 않는 공동체, 법을 사람을 위한 도구로 삼는 공동체, 예수님의 사랑을 법의 해석 원리로 삼는 공동체——이런 교회가 바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선교적 증인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5). 미소와 사랑이 넘치는 삶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복음 전파다. 웃음을 아끼지 말자. 법을 사람 위에 두지 말자. 예수님의 사랑 본질로 돌아가자.
법이 인간을 섬기고, 미소가 사랑을 전하며, 교회가 진정으로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한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후서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