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3월25일(금)맑음
날씨가 우중충하다. 대기에 황사 기운이 배어있다. 조용히 할 일 없이 지내다. 오후 늦게부터 봄비가 가늘게 오다.
2016년3월26일(토)맑음
노곤하다. 온 종일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골목을 지나는 봉고차 스피커에서 에서 ‘달고 맛있는 딸기 한 사라에 삼천 원, 고로쇠 오천 원’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고로쇠가 얼마나 많이 나오길래 이런 후미진 골목까지 와서 한 병에 오천 원에 팔릴까? 아마도 물을 타서 양을 불린 것이거나 비슷한 맛이 나는 가짜 고로쇠가 아닐까 의심이 간다. 간혹 골목에서 택배기사가 ‘누구누구 앞으로 택배 왔어요!’ 라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이 등을 붙이고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방 한 칸이 있다는 게 축복이다. 특히 도시 가운데 방 한 칸 있다는 것은 방랑 김삿갓이 쉬어갈 곳을 발견한 것과 같고, 사막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은 거와 같다. 더구나 몸이 안 좋거나 아프기나 할 때 마음대로 쉴 수 있는 방 한 칸 없다면 얼마나 불안하며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방 한 칸 없는 신세일 것이다. 노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방이 있어도 들어갈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집도 절도 방 한 칸도 없는 스님들도 있을 것이니, 모두 쉴 곳을 찾아 안식을 얻기를 염원한다. 지금은 봄이 온듯해도 바람이 아직은 차갑게 느껴지는 때라, 섣불리 설치다간 봄바람에 골병든다는 말처럼 봄바람에 몸이 상하는 수가 있다. 자고로 사람은 바람에 날리지도 않아야하지만, 바람을 타지도 말아야한다. 이른 봄 누가 먼저 꽃을 피우나 경쟁하는 저 조무래기들을 바라보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 개화의 적기를 기다리는 석류를 닮아야 한다. 모든 꽃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난 한참 뒤에 우물가 샘터에 나가보면 그때야 알리라, 석류의 開花晩成개화만성을.
죽향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진주성 한 바퀴 돌고 들어오다. 바람이 차다. 머리도 다리도 아프다.
2016년3월27일(일)맑음
하루 종일 방안에 있었다. 누웠다가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서 있다가. 밥을 해먹고 요가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보고.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돌다. 다리가 아프고 머리가 흔들린다. 몸이 좀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그런데 골목어귀에 벚꽃이 피어있다. 아픈 몸으로 하얗게 핀 벚꽃을 바라보니 오는 봄을 슬퍼했던 하이쿠 시인이 된다. 류시화의 <여행자를 위한 서시>를 次韻차운해서 <머무는 자를 위한 서시>를 쓰다. 눈이 침침하다. 왜 이럴까?
2016년3월28일(월)맑음
붓다프로젝트 읽다. 교정을 완전하게 보지 않아 오자와 탈자가 발견된다. 2쇄를 찍게 된다면 표지도 바꾸고 교정을 완벽하게 해야겠다. 둘리네 사과농장에서 보내준 사과는 껍질째 먹어도 괜찮다. 오늘 가르치게 될 dukkha苦에 대해 온 종일 사유하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많을 텐데 그중에서 왜 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을까? 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를 이해하게 되면 어떤 인식의 변화가 생기며, 사는 데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가? 나는 학생들에게 고를 이해시키려고 까뮈와 사르뜨르와 니체, 소설과 영화와 시를 소개해왔다. 과연 그들은 고를 이해한 것일까? 기대한 만큼 이해하지는 못 해도 아마도 가슴으로 뭔가 느낀 게 있겠지. 하루 종일 눈이 침침하다.
오후에 시내에 나가 등산화 세탁 맡긴 것 찾아오고, 안경다리 부러진 것 교체해가지고 오다.
저녁 강의 후 송계거사가 집으로 와서 침을 놓아주다.
2016년3월29일(화)맑음
아침에 몸이 찌부둥해서 늦게 일어났다. 아침 먹고 누워서 최봉수 교수 동영상 강의 듣다. 정안보살님이 BBS불교 텔레비전 <좋은 인연입니다> 프로에 내가 나왔는데 감동적이었다는 전화가 왔다. 점심공양 같이 하자고 한다. 옥수정에서 아미화, 정안, 원정보살님과 돌솥 밥 먹고 걸어서 돌아오는데 머리가 약간 덜렁거리고 오른 쪽 무릎이 시리다. 돌아와 쉬는데 내 방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니 아미화보살님이 자기 집에 가서 BBS불교 텔레비전 프로를 함께 보자고 데리러 왔다. <좋은 인연입니다>프로를 보니 생각보다 잘 나왔다. 만면 미소 띤 얼굴로 나지막한 음성으로 차근차근 조리 있게 말을 잘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말할 때 호흡이 가픈 기색이 있다. 짧은 시간에 말을 많이 하려고 해서 그런가, 아니면 심장이 뛰어서 그런가, 가만히 돌이켜본다. 생전 처음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 치고는 잘했다는 자찬을 해본다. 아파트 주변과 골목길에 벚꽃이 피어 밤을 밝힌다. 꽃이 빛난다. 찬란한 꽃 잔치가 벌어진다.
2016년3월30일(수)맑음
전셋집 주인이 아침에 와서 전세금을 통장에 넣어 돌려주겠다고 하고 가다. 집주인과 작별인사를 한 셈인데, 문 앞에서 얼굴만 보고 헤어진다. 전세주인과 세입자간의 관계가 무슨 그리 애틋한 정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지난 4년간 잘 보살펴준 덕택에 편안하게 잘 살았다. 감사한 일이다. 호연거사가 와서 칠암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하다. 새주소: 진주시 강남로 101번지, 101동1204호(칠암동, 칠암한주아파트). 죽향부부와 호연거사와 함께 가좌동 <소풍>에 가서 점심 먹다. 소풍은 효원보살 남편이 경영하는 식당이다. 분위기가 밝고 메뉴가 젊은이 취향이라 장사가 잘 되겠다. 근자에 눈이 침침하고 피곤하여 경상대병원 일반내과로 진료 받으러가다. 호연거사가 내내 따라다니다. 특이한 징후가 발견되지 않아 피검사, 대변검사, 엑스레이 촬영하고 4월6일(수)에 결과 보러 오기로 하고 귀가하여 쉬다.
저녁으로 김밥 사먹고, 수요 강의하다.
2016년3월31일(목)맑음
오전에 호연거사와 함께 남부농협에 가서 대출을 위한 서류작업하다. 새로 입주할 아파트를 둘러보다. 101동 1204호이다. 벽지와 장판을 새로 해야 한다. 안방은 기도실과 차실 겸용으로 하고, 거실은 강의실로, 골방 2개는 도향스님과 내 방으로 쓸 것이다. 8000만원 대출, 3년 상환, 3.5% 이자로 정하다. 점심 먹고 문산 가서 장판과 블라인더 고르다. 가구점에 들러 식탁과 의자를 고르다. 식은땀이 나며 피곤하다. 오후에 산청 대성사 가서 저녁 먹고 쉬다.
2016년4월1일(금)맑음
일광스님이 대구 관오사까지 차를 태워줘서 편안하게 오다. 대구 불교방송 녹음하러가다. 그런데 내가 말할 분량은 13분이며 주제가 일관되어야 한다는 조기성PD의 말을 들으니 준비를 잘못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녹음은 연습으로 하긴 했는데 말할 분량을 채우지 못했고, 매회 마다 주제가 바뀌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4월5일(화)에 다시 와서 ‘붓다프로젝트’를 읽기로 하였다. 한번 시작하면 6개월은 계속해야 된다는 말을 듣다.
혜진스님이 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지난 동안거동안 미얀마 모비센터에서 느꼈던 경험, 니까야를 읽고 사유하면서 느꼈던 점, 인도불교사에서 그리스철학(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론)의 강력한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으로서 有論이 도입됨, 설일체유부가 나오게 된 정치적 배경, 호불과 억불 왕조의 등장과 몰락에 따른 승가의 대응, 붓다고샤의 밀명, 초기불교와 티베트불교의 다리 놓기,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어떻게 배치replacement할 것인가 등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다. 저녁으로 호박 주스를 마시다. 밤 벚꽃 구경하러 앞산공원으로 가다. 지우스님과 혜진스님과 함께 은적사 까지 걸어서 산책하다 돌아오다.
2016년4월2일(토)맑음
새벽에 이상한 꿈을 꾸다. 지우스님은 동화사로 법문하러 가다. 오후2시에 관오사 모임 시작하다. 예경과 <범계의 고백과 용서apatti-desana>, 빠티목카를 30분 걸려 합송하다. 이어서 혜진스님이 <초기불교와 인도불교사-역사와 시대정신의 맥락과 쟁점을 중심으로>를 발제하다. 모두 8명의 스님이 참석하여 열띤 대화를 나누다. 부파불교가 나타나게 된 역사적 동인이 서북인도에 진출한 그리스문화와 조우한 결과로 나타난 소위 ‘그레코 불교Greco-Buddhism’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혜진스님의 연구 덕택이다. 아쇼카 대왕을 암살하고 등장한 푸샤미트라 장군이 개창한 슝가왕조(BCE187~75)는 불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였기에 일군의 승려들은 서북인도로 이동하여 그리스계통의 왕국인 박트리아(大夏, BCE246~138)나 안식국(Parthia, 安息) 내지 쿠샨왕조(BCE45~225)의 카니쉬카왕(CE127~151)의 보호아래 들어갔다.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왕의 보호 아래로 들어간 불교는 교리적 변용을 겪게 된다. 왕조불교의 어두운 면을 보이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리스철학으로 훈련된 그리스계통의 왕 메난드로스(Menandros, BCE163~105)나 카니쉬카 왕의 구미에 맞게 교리가 변용된다. 이런 예로서 가다연니자(Katayaniputra, BCE150~50, 간다라 계통)가 發智論을 써서 說一切有部를 창시하여 상좌부의 분열을 촉발하였다. 여기에 박트리아왕조(간다라계통)의 논설에 대항하기 위해 쿠샨왕조(캐쉬미르 계통)는 간다라계통의 논설을 비판하는 大毘婆沙論을 결집하여 캐쉬미르계 설일체유부를 정통으로 옹호한다. 한편 남부인도에서는 사타바하나왕조(BCE220~CE230)는 대비바사론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大智度論을 완성하였다. 이때 中論도 출현하였다. 이런 작업을 행한 승려들은 불교의 진리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기 위함이 아니라, 최소한 불교의 보존, 승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골육책을 쓴 것이었다. 질문에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며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논쟁거리가 많아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정리하다. 중간에 호박주스 공양을 하고 밤9시 가까스로 담론을 끝맺다. <자애경karaniya metta sutta>과 <너의 것이 아님 경na-tumha sutta>를 합송하다. 마무리 게송-1 <불법승삼보에 용서를 구함khama yacana>과 마무리 게송-2 <자율적 권장 빠티목카ovada patimokkha> 여래의 마지막 말씀tathagatassa pacchima vaca를 외우며 마무리 하다.
인욕은 최고의 수행이요, 열반은 최상의 결과라고 부처님들 말씀하시네.
출가자는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사문은 다른 생명을 괴롭히지 않네.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들 가르침이라네.
불평하지 않고 생명을 해치지 않고, 빠티목카에 의지하여 제어하며
음식을 절제하고, 격리된 거처에 머물며
명상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들 가르침이라네.
모임이 끝난 후 다른 스님들은 돌아가고 대견스님과 혜진스님, 경진스님과 가창댐으로 포행가다. 캄캄한 밤 가창 천변을 걷다.
2016년4월3일(일)비
오전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대견, 혜진, 지우스님과 두류공원으로 산책 나가다. 벚꽃이 만개했다. 비에 젖은 벚꽃은 물기 머금은 여인의 입술 같이 곱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다니다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누다가 돌아오다. 점심 먹고 진주를 향해 출발. 비 오는 가운데 버스를 타고 2시간 걸려 진주로 돌아오다. 새로 이사한 한주아파트1204호로 들어오니 아미화, 문아, 정아보살, 정산거사와 호연거사가 아침부터 짐을 옮기느라 고생했다. 새 집에서 차를 마시며 새로운 환경을 음미하다. 수고하셨음을 위로하기 위해 저녁을 같이 하다. 돌아와 정리가 안 된 책을 차근차근 정리하다. 내 방의 불단과 옷장, 책장을 정리하다. 피곤하다.
첫댓글 "인도불교사에서 그리스철학(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론)의 강력한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으로서?有論이 도입됨,?설일체유부가 나오게 된 정치적 배경,?호불과 억불 왕조의 등장과 몰락에 따른 승가의 대응,?붓다고샤의 밀명,?"
위 주제에 대한 혜진스님과의 구체적 대화내용이 궁금합니다. 시간 되시면 글 한번 올려 주시길 요청 합니다.
위 주제가 토론에서 나온 것으로 정론이 있는 게 아니고, 試論이라서 공개할만한 자료가 부족하기도 하고, 논거자료도 부족한 형편입니다. 아마도 사석이라면 이야기 해드릴 수도 있겠죠. 시간이 되면 나중에라도 진주 죽향찻집으로 오시면 차공양도 하고, 촉석루도 구경하고 대화도 하고 그러시죠.
스님,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저는 금강승 공부를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아 공부모임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집에서 주제별로 요약을 하면서 니까야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블로그에 들어와서 스님의 말씀도 읽고 인사도 드리겠습니다. ()()()
보살님, 그렇게 하세요. 새로 이사한 집으로 놀러와서 차도 마시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