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청 시래기
임 우 희
얼려놓은 무청을 꺼낸다. 이맘때 되면 생각나는 그리운 맛이 있다. 멸치육수에 된장 양파 파 마늘 고춧가루만 적절하게 버무려 준다. 육수가 팔팔 끓으면 버무려 둔 것을 넣고 바글바글 끓인다. 다음은 진 한 쌀뜨물 한 컵 만 추가하면 바로 별미다. 딸랑 둘이지만 대식구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밥에 비벼 먹을 때 맛이 푹든 보리고추장 한 숟가락이면 끝나는 맛이다.
시골에 계셨던 시부모님이 생각나는 늦가을이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 중 부피가 큰 것은 화물로 부치셨다. 보따리 속에는 고구마, 밤, 참깨, 고춧가루, 깐 마늘, 홍시, 수수들이 손질되어 소담스럽게 소복하게 들어있다. 식구들이 다 모여 있는 우리 집에는 틈만 나면 오셨다. 그중에 조선 배추 말린 것과 무청을 제일 많이 반찬으로 활용했다. 이파리 있는 배추는 삶아서 펴서 쌈으로 하고, 무청을 삶아 시골 된장에 갓 짜온 참기름과 깨소금 넣고 무치고. 일부는 날콩가루 무쳐 채반에 쪄서 조선간장으로 간 맞추면 시래기 털털이가 된다.
무청 된장찌개는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고 쉽고 영양도 괜찮다. 말린 무청 시래기는 아기 다루듯 조심히 만져야 한다. 먼저 물을 약간 축여둔다. 물을 끓이면 소금을 조금 넣고 푹 삶아 둔다. 깨끗하게 씻어서 한 번 먹을 분량만큼씩 얼려둔다. 무청 줄거리 흰 막을 벗겨낸다. 다시마 우린 물에 멸치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육수가 끓으면 된장을 체에 걸러 넣는다. 무청은 마늘, 고춧가루, 쌀뜨물을 진하게 한 컵 넣고 청양고추 2개만 총총 썰어 넣는다. 그 끓은 냄새도 좋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좋아하니 생활비를 줄일 수 있어서 좋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자리가 바뀌었다. 옛날에 가난했던 시절에 먹었던 추억의 맛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이 칠순을 맞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밖에서 모여 할 수 없다. 집에서 형제들과 아이들이 모여 생일잔치를 했다. 맛난 한우고기, 전, 잡채등 간단한 점심을 준비했다. 저녁에는 추억의 무청 시래기 된장찌개를 곁들였다. 마지막 추억의 맛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갑자기 수십 년 전으로 화제가 바뀌면서 서로서로 끊임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이 갔다.
무우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채소다. 심고 조금 자랄 땐 여린 잎으로 먹을 수도 있다. 갖가지 무가 들어가면 그 맛은 튀지도 않으면서 살린다. 주방요리에는 꼭 필요하다. 어린 시절 겨울이 오면 동태 회를 만들어 주시던 그 맛도 잊을 수 없다. 동태를 큰 도마에서 다진다. 무우채를 썰어 고춧가루 소금 마늘을 넣어 만든 겨울철 별미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땅속 깊숙이 묻어두고 겨울밤에 먹던 그 맛도 그립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맛이 있어 형제자매들의 화합이 되기도 한다.
감나무 가지에 발간 홍시 몇 개만 남아 있다. 거리엔 낙엽들이 초겨울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거리를 방황한다. 삶이 맛있는 것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