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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3(주일) 잠언 10:18~32 ‘선한 열매를 맺는 의인의 삶’
잠언 10장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삶’을 대조하며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권면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삶’을 대비하여 의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1620년경, 종교적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북미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첫 수확을 거두자,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디언들과 함께 축제를 열었는데,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이 날은 풍요로운 한 해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예배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고 봉사하며 따뜻한 마음을 실천하는 날이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를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하는 날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시작된 명절이지만, 우리 나라에는 1900년대 초부터 점차적으로 도입되어 19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은 성경 속 다양한 절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요, 특히 구약성경의 맥추절과 초막절이 추수감사절의 성경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2024년도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서 나를 악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불러주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왜 나를 불러주셨는지 그 이유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삶’을 대비하여 설명해주고 있는데요. 세상에서도 흔히 의인과 악인을 말합니다. 악인과 의인은 인간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어 온 도덕적인 판단 기준입니다. 악인 (惡人)
은 살인, 절도, 사기와 같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나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 즉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나 불행을 안겨주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하지요, 또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말하기도 합니다. 즉 법을 어기거나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의, 선, 양심과 같은 도덕적인 가치관이 부족한 사람을 악인이라고도 말합니다. 반대로 의인 (義人)은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 즉 정의롭고 선한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하구요. 타인을 돕고 배려하는 사람, 즉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전에 악인과 달리 사회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 즉 법을 준수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의인은 정의, 선, 양심과 같은 도덕적인 가치관을 잘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악인과 의인의 개념은 상대적이며,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악으로 간주되던 행위가 시대가 변하면서 정당화되거나, 반대로 선으로 여겨지던 행위가 악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또한 문화적 차이도 있습니다. 각 문화권마다 악과 선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행위가 악인지 의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다르기도 합니다. 개인마다 가치관과 신념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도 악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로운 행위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말하는 악인과 의인의 개념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하는 의인과 악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에서 의인과 악인은 단순히 행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마음의 상태, 삶의 방향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구분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을 신뢰하며 의지합니다. 반면에 악인은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무시합니다. 그래서 악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 분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로마서 3:23절에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로마서 3:20).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로마서 5:8). 그러면 개인은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감사제목이 있을 것인데요. 우리는 특히 나 같이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을 불러 믿음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시고, 의인으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나를 의인으로 불어주시어, 많이 부족하지만 의인의 삶을 살도록 계획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불러주신 ‘의인의 삶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삽니다(27~31절).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삽니다(27절).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와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어 ‘야레’는 단순히 공포심을 느끼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함 앞에서 깊은 존경과 숭배를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높이 존경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27절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면”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1)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시며, 모든 피조물보다 위대하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3) 죄를 두려워하고 멀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4)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 대한 묘사가 몇가지 등장하는 데요.
1) 복을 받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고 장수하며,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고 약속합니다(시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2) 지혜로운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3) 의로운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의로운 삶을 살고, 정의를 사랑합니다.
4) 평안을 누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안전하게 보호받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의 결론을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함의 결론은 장수입니다(27절). 여기서의 ‘장수’는 단순히 수명이 길다는 의미를 넘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오래 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희망과 기쁨입니다(28절). 의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삶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두기 때문에 항상 기쁨과 평안함을 누립니다. 3) 정직함과 강건함입니다(29절).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살기 때문에 어떤 삶의 고난이 와도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4) 영생을 소유합니다(3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악인’은 ‘단명’(27절)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수명이 짧은 것을 넘어, 삶의 질이 낮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또한 28절에 “악인의 소망은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악인은 끊임없는 불안과 공허함 속에서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29절에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다고 말합니다. 악인의 행위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해를 입히고, 결국에는 파멸로 이어집니다. 또한 30절에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고 합니다. 이는 악인의 삶이 마치 잠시 스쳐 지나가는 안개와 같이 허무하고 덧없음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이 가는 곳은 지옥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분리의 장소입니다.지옥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을 의미합니다.지옥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입니다.사람들은 세상에서 고통을 받지만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지옥은 그 어떤 곳보다 가장 깊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어떤분은 아마도 『지옥에는 문자 그대로 불이 있는 곳입니까』라고 질문할 지 모릅니다.예수님은 가장 적당한 용어로 말씀하시기를 「불붙은 지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지옥의 고통은 영원하고 끝이없는 고통입니다.지옥에는 소망이라곤 전혀 없습니다.고통,고통,고통이 계속되지만 그것을 피할 소망이란 전혀 없는 곳입니다.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영원이란 길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백두산만한 화강암 돌산이 있는데 독수리 한마리가 백년에 한번씩 그 날개 끝으로 살짝 건드리고 가곤 하는데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지려면 몇억만년이나 걸릴까요.그러나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져도 영원에 비하면 시작밖에 안됩니다.지옥은 죄의 열매를 거두는 곳입니다.『그들이 슬피울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사람들은 죄악된 생활을 한 것에 대해서 열매를 거두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아들은 아버지한테 이를 갈며 지옥에서 이렇게 부르짖을 것입니다. “아버지,아버지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교회갈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예수님을 제쳐놓고 평생 살았잖아.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죄를 지으며 살다가 결국 아버지 때문에 이 지옥으로 왔어”하며 원망할 것입니다.어떤 딸은 어머니를 향해 이를 갈며 부르짖기를 “엄마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엄마는 모든 시간을 세상만 위해 써 버렸어.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전혀 시간을 안 드렸잖아.나는 엄마의 뒤를 따르다가 엄마 때문에 이곳 까지 왔어!”라고 하며 자신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않은 어마를 원망할 것입니다.
지옥은 기억나는 장소입니다.지옥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날 것입니다.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말을 들었던 것도 생각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늦은 때입니다.영원히 기억하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럼 누가 지옥에 갑니까.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르 거절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하나님의 독생자를 짖밟는 죄가 제일 큰 죄입니다.혹시 “나는 술도 안마셨고 남을 저주 하지도 않았고 간음죄도 안지었어” 할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기를 거절했다면 바로 지옥갈 죄인입니다.“나는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세상에서 너무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고 예수 믿을 시간이 없었습니다”라고 핑계댈지 모르지만, 죽음의 시간은 올 것이고 구원의 유일한 길을 거절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적용) 나는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며 그것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2. 의인은 지혜로 낙을 삼습니다(22~26절).
의인은 지혜로 낙을 삼습니다. 의인과 악인은 모든 것에서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23절에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자신의 행악으로 낙을 삼지만, 의인은 자기 지혜로 낙을 삼습니다. 악인은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으로 낙을 삼기에 두려운 것이 많고 그 두려워하는 것이 그대로 임하게 됩니다(24절),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의 지혜인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것을 삶의 지침으로 삼습니다.
23절에 “명철하는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는다”라고 했는데요,
의인은 단순히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한 ‘의인의 낙’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만족을 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얻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의미합니다. 이는 의인은 말씀을 묵상함으로 지혜를 얻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면서 주 안에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그에게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주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시편 19편 9,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말쓰합니다.
시편 19편 10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꿀’보다 더 달다고 묘사하며, 그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주는 풍성한 영적 양식과 기쁨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다고 시인인 표현했을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꿀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에 필요한 진리와 지혜를 공급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과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힘든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며, 기쁨을 채워줍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나침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우리의 앞길을 결정하는 데 혼란스러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4) 영적인 성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달게 맛보며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꾸준한 묵상을 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2)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오늘 주신 말씀을 잘 이해하고 나의 삶 속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공동체와 나누어야 합니다. 소그룹으로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할 때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4)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이론이나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큐티의 꽃은 적용입니다] 김양재목사의 가정 잠언록에서
큐티의 꽃은 적용입니다. 큐티는 단순히 시간을 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묵상한 말씀을 그날 하루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 변화나 열매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큐티는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루를 살고자 하는 결단이고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의인은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25절). 25절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적용) 나는 매일 하나님 말씀을 묵상함으로 지혜로 낙을 삼으며 평안히 살고 있습니까?
3. 의인은 유익한 말을 합니다(18~21절).
입은 신체에서 작은 기관에 불과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반영합니다. 입으로 뱉는 말이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내용과 가치는 전혀 다릅니다.
잠언 10장 21절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는 말씀은 의인의 말이 가지는 긍정적인 영향력과 미련한 자의 말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 의인의 입술은 긍정적인 영향력의 원천입니다. 우선 1) 의인의 입술은 교육의 도구입니다. 의인의 입술은 단순히 말하는 기관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지혜와 진리를 전달하는 교육의 도구입니다. 2) 의인의 입술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의인의 말은 마치 영적인 양식과 같아서, 듣는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3) 의인의 입술은 모범과 영감을 줍니다. 의인은 말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 의인의 입술이 교육하는 방식은 1) 의인의 입술이 교육하는 방식은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지혜로운 가르침을 전달합니다. 의인의 말은 지혜로워 듣는 이에게 지혜를 더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화, 용혜원 시인] 동물들의 세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사자가 총지휘관이 되었고 동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습니다. 동물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한심하다는듯이 수군거렸습니다. "당나귀는 멍텅구리라서 전쟁에 방해만 될 테니 돌아가는 게 낫지." "토끼 같은 겁쟁이가 어떻게 싸움을 한다고 온 거야! 한심하군." "개미는 힘이 약해 어디다 쓰겠어?" "코끼리는 덩치가 커서 적에게 금방 들통나고 말걸." 이때 총지휘관인 사자가 호통을 쳤습니다. "시끄럽다. 모두 조용히 해라! 당나귀는 입이 길어서 나팔수로 쓸 것이다. 그리고 토끼는 걸음이 빠르니 전령으로 쓸 것이며, 개미는 작아서 눈에 안 띄니 적진에 게릴라로 파견할 것이고, 코끼리는 힘이 세니 전쟁 물자를 운반하는 일을 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단점을 장점으로 살려 씁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누군가의 단점이 보이십니까? 또는 나 자신의 단점 때문에 좌절하시나요? 나와 타인의 장점을 볼 수 있는 눈을 크게 뜬다면 분명 삶이라는 전투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그 날 묵상한 말씀을 의도적으로 그 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늘 사용하려고 노력하십시오. 2) 의인의 입술이 교육하는 방식은 긍정적인 영향력입니다. 의인의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삶을 개선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늘 말씀을 묵상하며 지혜가 있기 때문에 ‘때에 맞는 말’(잠15:23)을 하여 사람들을 교육하며 유익하게 합니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잠15:23) 3) 의인의 입술이 교육하는 방식은 사랑과 격려를 통해서 입니다. 의인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그들의 약점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 ‘미련한 자의 지식 부족’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1) 미련한 자의 지식 부족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미련한 자는 지식이 부족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고, 결국 파멸의 길로 나아갑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세아4:6)
그러나 의인의 말은 마치 생명수와 같아서 듣는 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며, 영혼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11절에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2) 미련한 자의 지식 부족은 타인에게 해를 끼칩니다. 미련한 자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파괴하며, 사회에 해악을 끼칩니다. 11절에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3) 미련한 자의 지식 부족은 자신의 멸망으로 이끕니다. 미련한 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시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도 ‘미련한 악인’은 마음 속에 미움을 가지고 자신의 악을 감추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중상모략을 합니다(18절). 또한 이런 자의 말은 19절에 허물이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19절). 적용) 나는 입술을 제어하여 유익된 의인의 말을 합니까?
[큐티인 묵상간증] [허무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이상욱]
취업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현재 저는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를 드릴 수 있는 직장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은혜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저의 처음 고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요즘에는 열등감으로 인한 인정중독과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려는 자기 열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성품과 자기 열심의 결과로 작년에는 사내에서 성과 1등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부서 동료의 무능함과 이기주의로 인해 제 열심히 바닥나면서 사건이 터졌습니다. 처음에는 동료의 능률을 끌어올리고자 친하게도 지내보고, 싸워도 보고, 무시까지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동료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그런 동료의 일까지 제가 하게 되면서 결국 번아웃(burnout)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1등이 다 무슨 소용인가’, ‘왜 열심히 일하나’라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25a절).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1등인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잣대로 동료를 정죄하는 저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행악으로 낙을 삼는 제가 바로 지혜가 없고 독이 되는 말로 나와 상대를 모두 죽이는 죄인임을 깨닫습니다(23,32절). 나를 힘들게 하는 동료를 통해 스스로 의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보아도 그때뿐이고, 삶의 자리도 돌아가면 또다시 생색과 혈기를 낼 것이 예상되어 힘들고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승리하시고 나의 구원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세상 인정과 물질이 나를 안전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어제보다 오늘 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내길 소망합니다(27절) 적용) 업무 시작전, 나그네 인생임을 기억하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직장생활로 힘들어하는 지체를 공감하며 지혜의 말씀을 더욱 의지하자고 권면하겠습니다.
결 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의인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로 낙을 삼으로, 또한 유익한 말을 하며 살는 삶의 결론은 ‘선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내 아버지는 농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농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하는 농부의 마음과 같다는 의미에서 비유한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에서 참 포도가 열리듯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사람에게서 "참된 인간성"의 열매가 즉 성령의 열매(갈5:22), 빛의 열매(엡5:9)가 열리길 고대하십니다.
나무는 어떠한 모양으로든 반드시 꽃을 피웁니다. 그것이 화려하든 보잘 것 없든, 크든 작든 간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목지필화’(木芝必花)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나무라는 뜻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속으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핀 꽃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거듭난 자’를 ‘빛의 자녀’라고 하면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5:9)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비유하는 열매는 사람의 온전한 성품을 나타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나를 악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를 주셔서 의인으로 불러주심에 감사하며 이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지혜로 낙을 삼고, 유익한 말을 하며 선한 열매를 맺는 그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