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나스카 자상화: 외계인의 우주정거장? [14일째]
● 나스카 - 리마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 갔더니 오렌지색 하드커버로 된 어린이 세계 명작 전집이 잔뜩 꽂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어린 왕자'였는데, 어린 왕자의 그림이 사이사이 나오고 이상한 바오밥 나무도 그림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책을 다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겠고, 이런 이야기를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던 때입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어른이 되어서 그 책을 다시금 읽어 보니 내용도 이해되고, 이야기의 상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명작인 것 같은데,어린이를 위한 명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상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는 괴도 루팡, 셜록 홈즈, 암굴왕 같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 책들보다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소년중앙이라는 월간잡지였습니다. 특히 별책으로 발간되는 만화는 손에 들어오는 순간 끝쪽을 넘겨야만 다른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주 소년 아톰’, ‘타이거 마스크’, ‘요괴 인간 뱀, 베로, 베라’ 같은 부록 만화책의 제목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외계인, 우주선, UFO와 같은 단어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눈에 띄면 열심히 탐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만나게 될 나스카 라인(Lineas de Nazca) 또는 나스카 지상화, 세계 유산에 등록된 이름으로는 나스카와 후마나 평원의 선과 지상화(Lineasy geoglifos de Nazca y de pampas de jumana)도 어렸을 때 잡지에서 보았던 ‘외계인이 만든 우주선 착륙장’이라는 기억과 연결되어 그 이름이 생생합니다. 이런 정보를 처음 접하였을 때에는 “우주에도 우리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살고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 외계인이 그린 그림인지? 외계인이 그렸다면 왜 그렸을까?” 등등 무수히 많은 궁금증의 나래를 펴보곤 했습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는 하나의 가설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가설 또한 믿기 어렵다고들 하니, 흥미가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여전하니 소싯적 떨림을 떠올려 보면서 지상화 구경에 나섰습니다. 지상화가 오늘 날까지 보존된 것은 훔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이지역에 바람이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으로 이천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세기의 만남까지는 아닐지라도 오랫동안 보기를 갈망했던 구경이니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제 저녁부터 식사를 조절하도록 한 것도, 비행 중 멀미로 고생할 수 있을 가능성을 줄여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차를 타면 멀미를 했던 터라 준비해간 멀미약도 이미 두 시간 전에 복용했습니다.
나스카 시내에서 차로 15분여 정도를 가서 나스카 지상화를 구경하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비행장이 나타납니다. 6인승에서부터 좀 더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경비행기까지 십여 대 이상의 비행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여권이 없으면 탑승이 불가능합니다. 여권을 제출하면서 탑승자의 체중도 측정합니다. 경비행기이기 때문에 좌우측간의 균형을 잘 맞추어서 안전한 비행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맞추려 하다 보니 일행 중 어느 부부는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타는 일도 생겼습니다. 비행기 앞에 서니 비행사가 환영의 인사와 안전한 운행으로 불가사의한 나스카 지상화의 구경을 책임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탑승하여 안전벨트를 매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륙을 고대하고 있는데, 비행사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엄지 척을 해줍니다. 활주로를 떠난 비행기는 얼마를 상승하다가 지상화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지상과 수평으로 비행하여서는 땅 위에 있는 그림들을 자세히 볼 수 없으므로, 비행사는 그림이 보일 때마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번갈아 수직 비행을 하며 승객들이 고르게 지상화를 감상할 수 있게 합니다. 나스카 라인의 그림과 도형들은 사진과 동영상에서 여러차례 보아왔고, 원하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멀미를 염려하는 나는 사진 찍는 일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구경에 집중하였습니다. 비행기의 항로는 탑승할 때 나누어진 그림에 따라 비행을 하고, 보조 비행사가 그림의 이름을 불러 주면 우리는 실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고래, 컴퍼스, 이등변 삼각형을 볼 때까지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는데, 서서히 콧잔등과 등 뒤에 땀이 나면서 배가 조여오는 느낌으로 보아 멀미가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허리띠를 느슨하게 하고 심호흡을 해보지만 차도가 별로 없습니다. 불러주는 그림을 찾기 위하여 정신과 시선을 집중해 봅니다. 원숭이, … 손을 차례로 보여줍니다. 도마뱀 그림은 팬 아메리칸 고속도로로 꼬리가 잘린 상태입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보다 도로 건설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그림이 남게 된 데에는 나스카 지상화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독일인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의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습니다. 페루 정부는 1955년 댐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 지역을 수몰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반대하자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스카 자상화를 지키려는 그녀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현재는 그녀의 생일을 페루의 국경일로 정해 그녀를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탔던 비행장도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 라이헤 네우만 공항이라고 작명했습니다. 마지막 그림인 나무까지 보고 구토없이 어렵사리 무사히 회항했습니다. 비행을 마친 우리에게 비행사에서 증명서를 발급해줍니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이형철님은 우리 항공기를 타고 인류의 문화유산인 불가사의한 나스카 라인 위를 비행하였습니다. -페루 보엘 에어 항공사-”라는 내용입니다. 증명서까지 받고 나니 고생이 헛되지 않은 기분입니다.
일행 중 한 분은 고소공포증으로 탑승하지 못하여 전망대에 들러서, 지상화 일부를 보았습니다. 오늘의 나머지 일정은 점심을 먹고 안전하게 리마로 돌아가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