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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고 전임자와 후임자의 역활을 담당했지만 사뭇 달랐다.
오늘 본문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동시에 등장한다.
엘리사는 영적 지도자로, 엘리사는 그의 수제자로 소개된다.
엘리야가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짐작했다(1) 엘리야에게도 마지막 시간이 임박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시간이 온다. 예외가 없다. 죽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영웅도 죽는다. 죽음은 공평하다.
그리고 제자 엘리사 입장에서는 스승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엘리야가 마지막으로 그가 세운 제자학교를 순회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신학교 교장이었다.
죽기전에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신학교가 소재한 지명들이 등장한다(1, 2, 4, 5)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
본문에 엘리야와 엘리사간의 대화를 기록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엘리야왈 "여기 머물라"(2, 4, 6)
엘리사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2,4,6)
엘리야는 혼자 가겠다고 말했고, 그때마다 엘리사는 같이 가겠다고 대답했다(1-6)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결국 엘리사의 뜻대로 두 사람은 함께 순회했고 마지막 여행을 완료했다.
미지막으로 두 사람이 요단강을 횡단했다(7)
그리고 나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소원을 물었다(9)
"내가 자네를 두고 떠나기전에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는가? 말해보라"(공동번역본)
엘리사왈 "스승님이 가지신 영력의 두 배를 받길 원합니다"
엘리야의 대답? "내가 떠나는 것을 자네가 지켜본다면 그렇게 되겠지만 보지 못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일세"(10)
그 후에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속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11)
엘리사는 엘리야의 마지막을 목격.
엘리사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그의 겉옷을 주워서 요단강을 치니 그 강이 갈라져서 엘리사는 걸어서 요단강을 건넜다(14)
엘리사는 엘리야가 가졌던 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리고 엘리야의 후계자로 인정받는다(15)
메시지!
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지 않았다(2, 4, 6) 엘리사는 엘리야를 붙들었다.
그 이유?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유보다 사람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한 요인이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냐보다 무엇을 하면 사는냐가 더 중요하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한다면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가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국민일보에 실린 가정예배서(24. 9/11)
"지갑을 보면 믿음이 보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꼽으라고한다면 시간과 돈을 말할 것이다.
시간과 돈 사용영역에서 여러분의 믿음이 어떻게 증거되고 있는가?
성경은 돈자체를 금기시하거나 부자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성도는 돈을 부정해서도 안되지만 우상처럼 섬겨서도 안된다.
돈을 균형있게 다루어야 한다.
돈을 하나님보다 사랑하고 의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돈을 사용하는 명목을 보면 그 사람의 영성이 보인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붙들었던 요인은? 돈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소유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할때 두 가지 요인을 고려해라.
그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 지를 보라.
그후 하나님의 사람을 발견했다면 그 사람과 아주 친하게 지내라. 그리고 자주 만나 교제해라.
혹시 이런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치 않았다면 즉시 떠나야 한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
전화번호도 지우고 카톡도 삭제해라.
믿음이 우정보다 신의보다 훨씬 중요하다.
저는 우리 모두가 엘리야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엘리사처럼 엘리야를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2. 무언가를 시작했다면 끝까지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끝까지하고 마지막까지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견디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와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붙들고 늘어졌다.
엘리사는 혼자 여행하겠다는 엘리야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벧엘, 여리고 그리고 요단강까지의 여정을 함께 했다.
더우기 엘리사는 엘리야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우리 말로 한다면 엘리야의 임종을 지켜본것이다.
엘리야가 임종하기전에 의미심장한 말을 하지 않았는가?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 한 가지만 말해보라"
엘리사왈 "영력을 갑절만큼 받기를 원합니다"
"너가 아주 힘든 소원을 말하는구나 하지만 들어줄께"
그러면서 조건을 제시했다. "나의 임종을 지켜본다면 내가 그 소원을 들어줄것이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과 마지막까지,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인지를 알고 싶었다.
엘리야는 자신과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에게 후계자의 직함을 물려주고 싶었다.
영적인 사람에게는 영적인 사람이 보인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람이 보인다.
우리 속담에 개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저희 부부는 신혼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제 아내가 임신했을때이다. 배가 점점 불러왔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동대문 시장을 가는 중이다.
지하철안에서 제눈에는 임산부만 보였다.
첫째가 해병대에 입소한 후부터는 길거리에서 빨간 명찰을 단 해병대원들만 찾았다.
지금도 그렇다.
얼마전에 둘이서 해운대 백사장 산책을 나갔다가 구남로 길 건널목에서 군인 두명을 발견했다.
일부러 가서 보니 빨간명찰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보인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싶은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된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였기에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발견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언제 알았겠는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물었을때이다.
그의 대답을 듣고는 알아차렸다. "영력을 갑절이나 요구했다"
돈이나 명예를 요구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만 보인다.
그리고 그와 깊이 교제한다면 그가 가진 영력을 전수받게 된다.
혹시 내가 교제하고 있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알고 싶다면 그가 자신의 시간과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지를 보면 알수 있다.
그리고 끝까지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수행하면 복을 받는다.
사역이나 직업도 마찬가지다. 오래해야 한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해야 한다
울산에 거주하는 어느 지인이 우리 부부를 호캉스로 초대했다.
작은 교회 목사 부부가 여름 휴가도 못가고 있어 측은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호텔에 숙박을 했고 조식까지 챙겨주었다.
저녁에 자신들이 점 찍어 둔 까페로 우리를 데려갔다. 언양 상북면에 있는 까페였다.
입장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라운지가 별도로 있어 그 곳에서 등록을 하고 입장료및 음료수 가격을 지불하면
별도의 공간에 입장할 수 있고, 그 까페에서 차를 마시며 정원을 감상할수 있었다.
가격이 꽤 비싼 걸로 기억된다.
그 까폐 소유주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산에서 양돈사업을 하던 분이란다.
옛날에 양돈사업은 사람들이 기피했던 직업이다. 냄새난다고 동네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 분이 끝까지 마지막까지 양돈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었단다.
그 돈으로 정원을 꾸미고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여 울산 일대에서 아주 유명한 까폐 소유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까지 알리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사가 엘리야를,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났듯이 하나님을 찾아라.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람을 떠나지 마라.
그리고 그곳에서 한 우물을 파라. 끝까지 견디고 마지막까지 함께 해라. 큰 복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