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 서거 70주년을 맞아
묘소를 참배하고 별도 추모식에 참석하다
2017년 07월 19일은 몽양 여운형 선생 가신 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오전 08시 40분 경 우이동 몽양 선생
묘소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내려 우이동 가는 120번 버스로 갈아 탔습니다.
서라벌중학교 앞에서 내렸습니다.
덕성여대앞 역 바로 다음 정거장입니다.
몽양 선생 묘소가 있는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이때가 오전 11시 였습니다.
10여 전 연이어 두어 차례 추모식에 참석한 바가 있어
결코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여운형 선생 묘소가 있는 골목입구 모습입니다.
선생님 묘소의 익숙한 모습입니다.
마치 10여 년 만에 부모의 묘소를 찾은
불효자식과 같은 심정과 비슷하였습니다.
추모객의 숫자가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이곳 우이동 묘소에서는 간이 추모식이기 때문입니다.
본 추모식은 올해 처음으로 오후 2시에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치르기로 한 것입니다.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의 모습입니다.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추모식을 시작하였습니다.
맨 앞쪽이 이부영 선생이고, 그 옆 안경 쓴 이가
장영달 부회장입니다.
식이 늦어진 것은 대구에서 버스로 상경한 유족 대표들이
서울 시내에서 차가 극심하게 지체되어
30여 분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부영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인성 유가족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몽양 선생에 대한 헌화와 묵념 차례입니다.
오른 쪽 고개숙인 분이 이부영 회장이고 그 옆이 장영달 기념사업회 부회장입니다.
필자가 묵념 한 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인사하는 순간입니다.
몽양 선생 묘소 입구의 한 식당에서 기념사업회 측이
제공한 점심을 들었습니다.
필자는 냉면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마침 좌석 맞은 편에 장영달 선생과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식사하는지라 음식이
매우 늦게 나왔습니다.
식후 버스정류장에서 153번 버스를 타고
수유역 지하철역에 내렸습니다.
이촌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효창공원앞 역에서 내렸습니다.
이것이 큰 불찰이었습니다.
걸어가기까지 효창공원은 엄청 멀었습니다.
차라리 4호선 숙명여대앞에서 내려
효창공원까지 걸었드라면 20여 분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효창공원 내에 있는 백범기념관까지
헐레벌떡 뛰어 갔습니다.
30도가 넘는 더위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백범기념관에 당도하였지만, 본 추모식에
30여 분이나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오후 2시30분입니다.
세 번째 추모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 차례였습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박유철 광복회 회장 추모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여인영 유족대표 인사가 있었습니다.
이로써 추모식 1부 순서를 마쳤습니다.
20여 분 뒤에 2부 순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로비에는 다과가 차려졌습니다.
간단한 간식과 냉커피를 한 잔
마셨습니다.
몸이 녹초가 되어 2부 순서를 생략하고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1960년 4.19무렵 스무살이었던
필자가 처음으로 몽양 여운형 선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근 60여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다시피
몽양 선생을 흠모하고 존경해 왔습니다.
이태가 지나면 저는 나이가 80이 됩니다.
단 한 순간도 여운형 선생에 대한
흠모의 정이 뇌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귀가한 뒤 술을 몇 잔 마셨습니다.
피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지만,
오늘 나의 여정을 뒤짚어보고
선생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다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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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님, 너무 감사합니다. 댓글을 쓰시기 위해 카페까지 가입해 주셨으니 영광스럽습니다.
언제 어느곳에서 한 반 만나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