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단씨 형제
서역의 선선국 등 오아시스의 제국 諸國과의 동맹 결속 同盟 結束도 단단해지고, 사로국과의 긴밀한 교류 등으로
힘을 얻은 북 흉노의 위세가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자, 상대적으로 남 흉노는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하 朝鮮河 단주 檀州에서 한준을 따라와 남 흉노 무리에 합류한 단씨 형제들은 요즘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단윤과 단철은 조선하에서 독초인 천남성 뿌리를 먹고 사경 死境을 헤매던, 한준을 구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 한준과 계속 행동을 같이하였다.
그 후, 한준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알아보고는 대릉하 금주에서는 수련생 3기생으로 입교 入校하여 수련하였으며,
한준이 여러 가지 복합적 複合的인 요인으로 인하여 남 흉노측으로 전향 轉向을 하자,
그 간의 의리 義理 때문에 단씨 형제도 함께 남 흉노로 가게 되었다.
그러니 단씨 형제는 북 흉노와 남 흉노 양쪽 군영 軍營을 모두 경험한 것이다.
남 흉노의 진영에 온 단씨 형제들은 처음에는 북이나 남이나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운영 체제 體制나 의복,
생활 습속 生活 習俗 등이 같으므로 마음 편하게, 같은 흉노 체제로 여기고 활동하였으며,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또, 막북무쌍 한준의 뛰어난 무예와 공적 功績으로 한준의 직위와 위상이 남 흉노 체제 體制 내에서
급상승 急上昇하자, 그에 따라 형제들도 백부장의 직책을 부여받았고, 대우도 다른 병사에 비해 특별하였다.
단씨 형제들은 어깨가 우쭐해졌다.
음식이나 의복, 무기도 북 흉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족하고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형제들은 남 흉노로 전향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막북무쌍 소왕이 북 흉노의 묵황야차에게 두어 번 패하고 난, 후부터는 단씨 형제들에 대한
특례도 점차 사라지고, 병영 내의 대우도 일반 병사들과 같아졌다.
그렇게 두 해 정도 부침 浮沈을 겪으며 병영생활을 하다 보니
그제야, 남 흉노 체제 내부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지난봄, 북벌을 단행 斷行하였다가 도리어 참패 慘敗 당하고, 오르도스 본진으로 도피 중인 패잔병 무리.
어느 날 저녁, 마유주를 마시던 형 단윤이 동생 단철에게 묻는다.
“전투가 벌어지면 자발적으로 싸워야 하는데, 우리 남 흉노 측은 상부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폐단 弊端이 있는 것 같아, 넌 어떻게 생각해?”
“그렇죠, 전투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윗선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병영 兵營의 모든 부분이
수동적 受動的으로 움직이니 분위기가 영 좋질 않아요”
“맞아, 우리 조직이 상의하달 上意下達은 잘되는데, 하의상달 下意上達은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어”
“그러니 조직의 움직임이 딱딱하고, 점차 교조화 敎條化 되어 가고 있어요”
“상부에서 지시하는 대로만 따르니, 조직의 융통성이 없어지고 유연성도 부족하니,
개인적인 창의성과 도전 정신도 사그라지고 없어”
“상부의 지시를 며칠만 늦추거나, 집행 내용이나 과정이 조금만 변경 變更되어도
큰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야단 惹端이 나죠”
“그 점이 제일 문제야”
“왜? 그렇게 획일적 劃一的으로 자꾸 변해가죠?”
“명령을 내리는 수뇌부 首腦部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
“맞아요, 이번 북벌 北伐건만 해도 그렇죠. 적을 공격 하려면 먼저 피아간 彼我間의 민심과 상대 병력의 규모,
무기의 성능 그리고 지휘관의 통솔력과 군사들의 사기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함이 상식인데,
별다른 사전 조사도 없이 소왕야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전쟁이 시작된 것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 소왕야의 개인적인 결정이 아니라,
호한야 선우의 명령으로 갑자기 출정하게 되었다고 하지”
“선우는 무슨 이유로 우리 흉노의 흥망 興亡이 걸린 전쟁을 그토록 쉽게 결정했을까요?”
“선우도 나름 고민 있는 것 같아”
“어떤 고민?”
“한의 군부에서는 전쟁하라고, 뒤에서 자꾸 재촉하는 모양이야”
술이 한잔 들어간 동생 단철은 분노가 치민다.
마시던 마유주를 그만두고 독한 고량주를 가져와 자신의 잔에 먼저 따른다.
“아니, 목숨 건 전쟁은 우리가 하는데 한군 漢軍이 왜 개입하죠?”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한 측으로부터 식량을 비롯하여 무기와 여러 가지 전쟁 물자들을 지원받았으니,
‘소금 먹은 놈이 물 쓰인다’는 말처럼 선우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야”
다시 술을 따르는 단철의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시는 선우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네요”
“쉿! 목소리 낮추어. 그렇지, 우리 남 흉노의 자율권 自律權이 없다는 것이지”
술잔을 비운 단철은 비분강개 悲憤慷慨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른다.
“그럼 우리가 한군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다는 이야기네요”
“꼭 그렇다기 보다는 여하튼 간에 한의 눈치를 봐 가면서 모든 정책들을 결정해야하니 그것이 문제지”
“결론은 우리 남 흉노가 자주성 自主性을 상실하고, 한군의 용병 傭兵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때,
막사 안으로 네 명의 병사들이 들이닥쳐 단씨 형제들을 결박하여,
호한야 선우의 막내아우인 우현왕의 막사로 끌고 간다.
선우의 막내인 우현왕은 군영 軍營의 모든 첩보 諜報를 관할하고 있다.
처음 첩보단을 운용할 때는 단순하게 세작 細作들이 적의 규모나 진형, 전장의 분위기 등을 정찰, 염탐하는
대외적인 활동만 하였으나, 자체 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군영 내부에도 세작을 풀어 감시하고 있었다.
조직 내에서 세작을 관할하는 첩보단의 몸집이 비대 肥大해지고 있었다.
적의 동향 動向을 탐색하고 전투 정보를 수집하려는 본래의 목적은 뒷전이고, 운영 방향이 변질 變質되어
자체 내부를 관리 장악하는데 더 큰 노력을 하는 듯하였다.
단씨 형제는 “유언비어 流言蜚語의 배후를 대라”는 심문 審問관에게 밤새 고신 拷訊을 당하였다.
다음날, 오후에야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막북무쌍 한준 소왕은 크게 노 怒하였다.
근위병을 시켜, 단씨 형제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우현왕은 이를 무시하였다.
그러자 대노 大怒한 막북무쌍은 근위병 10여 명을 이끌고, 직접 우현왕의 막사로 향하였다.
막북무쌍 소왕이 우현왕의 막사에 도착하자, 우현왕의 근위병들이 창을 앞으로 내밀며 앞을 가로막았다.
분노한 막북무쌍 소왕이 무시무시한 양날 철창을 치켜들어 허공을 향해 크게 한번 휘두르자,
그 위세에 눌린 우현왕의 근위병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력을 행사하여 막사 안까지 쳐들어가, 결박당한 채 모진 심문 訊問으로
신음하고 있던 단씨 형제를 구해올 수 있었다.
단씨 형제는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으나, 이 일로 인하여 막북무쌍 소왕과 우현왕과의
친밀했던 우호 관계는 뒤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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