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6.
1998년을 배경으로 꿈을 빼앗긴 젊은이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tvN 토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시청하며,
외환위기로 세상사는 일이 힘들 때 열정과 패기로 도전하는 펜싱선수 나희도,
도산한 가정의 장남으로 스포츠 기자가 되어 세상에 도전하는 백이진의 성장통,
앵커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용기와 도전, 고난과 좌절을 이겨내는 청춘 스토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희도가 먼 훗날 첫사랑인 백이진과 헤어지던 곳을 찾아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을 끝으로 드라마는 종영이 되고 나는 꿈속에서 첫사랑 여자 친구를
만난다.
스물다섯 나이에 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세는 나이로 내 나이 스물다섯이라, 아! 1976년이구나.
1976년 8월 3일 34개월 6일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한다.
2주일 후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지고, 이때 전면전이 벌어졌더라면
제대 후 6개월 이내는 현역으로 제대 전 복무했던 부대로 복귀한다는 규정에
따라 다시 군대에 갈뻔한 대형사건이 터졌지.
군 생활 중에는 제대만 하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제대를 하니 앞길이 막막했다.
휴학한 학업을 이어가야 하나?
내가 학업을 이어가면 동생들은?
학자금은 아르바이트로 벌어야 하는데 취업을 해야 할까?
야간대학교로 진로를 바꿔야 할까?
아님 방송통신대학교에 지원을 할까?
여자 친구는 청주에 있어 자주 만날 수가 없고,
주머니엔 단돈 몇만 원밖에 없는데 결정할 수가 없어 번뇌로 허둥대다가
은사이신 고 심영구 선생님을 학교에서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다.
심 선생님은 주택은행 입행지원서를 내놓으시고 나의 진로에 대하여
은행과 대학을 같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을 권유하며 명쾌하게 답을 제시한다.
그해 9월 주택은행에 합격을 하고 첫 근무지로 중곡동지점으로 발령이 난다.
드라마에서 백이진은 고졸 출신 기자로 학부 출신 기자들로부터 멸시를
받지만 이를 이겨내고 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며 프로정신으로 성장을 해나간다.
고졸 출신이라,
은행에서도 대학 출신과 고졸 출신은 출발부터 달랐다.
대학 출신은 5급 11호봉부터 시작을 하고,
고졸 출신은 6급 5호봉부터, 고졸 출신으로 군필자는 6급 7호봉부터 시작을
하는데 1호봉의 간격은 1년이라, 같은 나이에 입행을 하였어도 4호봉의
격차가 생기며 봉급도 꽤 차이가 났다.
지점당 인원이 대략 30여 명 정도 되었는데,
책임자급 5~6명을 제외하고, 대학 출신 중견 3~4명을 빼면 20명 이상이
고졸 출신이라 은행원이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오히려 상고 출신이 은행업무에 적합하여,
대졸 출신 직원에게 사수 대접을 받는 경우도 많았으며, 마음껏 일하고
인정도 받을 수 있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 능수벚나무>
드라마에서 나희도는 라이벌을 이기고 금메달을 따며 승승장구하고,
백이진은 고졸 출신 기자로 주변의 눈총을 이겨내고 성장을 하면서
프로 기자의 영역과 나희도와의 사랑의 간극(間隙)을 메꾸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메인 앵커로 발탁이 된다.
서로 좋아하면서, 기다림을 극복하면서도 자신 있게 서로를 믿고 당기고
품어주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스물다섯을 기억해낸다.
짧게 끊어지는 말투의 나희도 역 김태리,
아가씨, 리틀 포레스트, 1987, 미스터 선샤인에서 매력을 한껏 발산해
나를 사랑의 굴레로 빠져들게 한 그녀 김태리,
해사하게 웃다가 방송국 메인 앵커인 엄마한테 대들기도 하고,
교복 치마 속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걷는 걸음걸이만으로도 순수하고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보이는 그녀,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점점 빠져들게 하는 그녀,
내 여자 친구의 말투도 그랬다.
비슷하지만 끊어지는 말투가 아니라 충청도 사람들의 특유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접는 화법'을 구사했지.
나희도와 백이진의 사랑이 해피 엔드(happy end)가 아닌 새드 엔드(sad
end)로 끝나는 걸 보며 나의 경우와 많이 대비가 되었지.
나희도는 매일매일 일기장에 자기의 마음을 담았고,
나는 머릿속에 매일매일의 마음을 쌓아나갔다.
기다릴 줄은 알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의 결여(缺如)였던가?
나 역시 빈털터리로 시작해 자수성가를 하여야 하는 입장이라
당장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어설픈 풋사랑으로 끝났지만,
22년 세월이 훌쩍 지난 1998년 영등포역 지점장 시절 동생의 주선으로
청주 출장 중에 잠시 만난다.
사랑에는 해피 엔드(happy end)가 없다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그러나 지난 시절 사랑 때문에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단 하나라도 없었다면
내 삶이나 나희도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한 번뿐인 인생에서 지금 아는 것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과 아픔이 함께 밀려온다.
봄답지 않게 며칠간 강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꽃비가 내렸다.
벚꽃, 목련꽃잎 모두가 사라졌다.
그리고 40여년 전 내 청춘도 사라졌다.
이래서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사랑과 인생은 일장춘몽(日長春夢)이라고 하는가 보다.
2022. 4. 16.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