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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기사[사람과 산]
전라북도 진안에는 진귀한 영산 마이산(678m)이 그 산세를 뽐내며 우뚝 솟아 있다. 어찌 모양새가 그리 생겼을까.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진안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자랑하는 또 한 곳이 있다.
검은 바위 곳곳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바위틈에서는 발을 1분도 채 담그고 있지 못하는 석각수가 샘솟는 이색지대. 바로 진안의 풍혈냉천이다. 풍혈과 냉천이 발견된 것은 1780년경으로 당시에는 온천이 솟아나고 찬바람이 나오는 구멍과 삼복에 찬물이 치솟는 냉천이 두 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김기술씨(53세)가 7년째 운영하는 식당 옆 한 곳의 냉천과 그 주위의 풍혈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풍혈의 현상은 지각의 변동으로 맞물려 있던 표토층이 엇갈려 틈이 생기고 그 틈사이로 겨울에 눈이 쌓여 여름까지 녹지 않고 있다가 대기의 더운 공기와 만나 서늘한 바람이 나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여름에 풍혈이 나오는 바위 틈 사이에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발견된 적도 있당께요”라며 김씨는 경남 밀양군 천황산 얼음골, 경북 의성군 빙혈·풍혈 등 전국에 5곳이 있으며 모두 이와같은 원리에 의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풍혈냉천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허준이 약을 짓던 물이라 전해지면서부터였다. 그 이후로 피서철 관광차와 오원천의 물놀이 피서객들로 풍혈냉천은 여름철 북새통을 이루고 겨울철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으로 항상 가득하다.
이 냉천의 물은 한국의 명수로 꼽힐 정도로 물맛이 좋으며, 냉천에서 목욕하면 위장병과 피부병이 낫고, 무좀에도 특효가 있다고 전해진다. 허준이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 먹는 약을 달이는 물이기도 했다. 그러니 전국 각지에서뿐만 아니라 진안에서도 손꼽히는 곳으로 진안군민들도 쉬이 찾는 곳이다.
진안에서 태어나 19년간 진안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윤진씨(50세)도 가족과 함께 한번씩 이곳에 들러 냉천과 풍혈을 즐긴다고 한다. 냉천의 물맛을 익히 알고 있는 김씨는 냉천약수를 마셔보라고 바가지를 건낸다. 한 나라의 임금에게 바쳐지고 조선의 명의 허준이 환자를 위해 약을 다릴 때 사용한 물을 한 모금 마시니 내가 이 나라의 임금이요 병을 고친 환자이니 세상에 무엇이 부러울 게 있겠는가.
정 기자도 한 모금 마시고 세상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을 지켜보던 김씨는 “보시랑께요. 운동도 운동이지만 풍혈냉천도 그렇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진안에 사는 것만으로도 제 건강의 비결 아니겠어요”라며 진안 자랑이 한참동안 이어진다. 평소 건강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는 김씨는 아침저녁으로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아내와 함께 10바퀴를 뛰고, 경찰이 되려고 준비하는 두 딸과 태권도 대련도 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산행보다 좋은 운동이 없다며 가족산행과 직장 동료들과의 산행을 자주 갖는 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번 건강산행에 흔쾌히 따라 나섰다. 풍혈냉천을 감싸고 있는 산은 대두산(말궁굴이산·459.4m)이다. 현지 주민도 잘 모르는 이 산은 만덕산에서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줄기의 남쪽에 있으며 둥글고 널따란 정상부의 생김새로 이름지어진 듯 하다.
산행은 냉천을 지나 풍혈이 나오는 휴게소 오른쪽을 계속 따라 오르면 풍혈냉천 민박집 왼쪽으로 난 길에서 시작된다. 산행은 두 시간이면 충분하므로 늦장을 부리며 풍혈이 나오는 바위틈에 앉아보기도 하고 곳곳에 있는 바위틈에서 냉기가 나오는지를 확인해 본다. 정말 바위틈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냉기가 나온다.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 풍혈을 확인하는 사람들은 바위 틈 곳곳에 모여 앉아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지만 얼마 앉아 있지 못해 자리를 일어서야 할 정도로 서늘하다. 냉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김기술씨가 지어 놓은 휴게소 안이다. 휴게소는 냉장고 문을 열어 놓은 듯 입구에서 하얀 연기가 계속 나온다.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는 매점과 앉아서 쉴 수 있는 탁자들이 놓여 있다. 한 구석 자리를 잡고 냉기를 느껴본다.
‘아! 시원하다.’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내려 쬐는 햇빛이 밉살스러운데 안은 이리도 시원하다. 그리고 벽에서는 밖의 무더운 공기와는 달리 풍혈이 나와 물방울들이 맺혀 있고 저 구석에는 온도계가 놓여 있는데 온도를 확인해 보니 영하 1도를 가리킨다. 아무리 더워도 3∼4도를 유지하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듯 휴게소 안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며 서성이는 모습은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김기술씨가 이곳을 찾은 이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 모습도 익숙해 보인다. 김씨에게 대두산 산행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듣고 산행 채비를 한다.
그런데 자리를 떠나는 발걸음이 이리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배낭을 메고 휴게소를 나와 대두산 산행을 시작한다. 민박집 전에서 시작되는 산행코스는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길이지만 20분쯤 오르다 보면 너덜지대가 있어 오르기 힘들고 서쪽 능선을 택한다. 그래도 산행 시작부터 앞장 선 김윤진씨의 앞을 거미줄이 가로막는다. 사람이 오랫동안 다니지 않은 등산로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길은 뚜렷하다.
오솔길을 따라 서쪽능선으로 붙기 위해 풍혈냉천 앞을 흐르는 섬진강의 지류인 오원천을 왼쪽에 두고 계속 산을 우회한다. 15분쯤에 가파른 오르막을 5분 정도 오르면 서쪽 능선상에 있는 고개에 올라선다. 고개는 양화 마을과 송촌 마을을 오가는 길로 예전에 지나가는 이들이 쌓아 놓은 듯한 돌담불이 무너져 있다. 돌 하나 하나에 담겨있는 소망은 돌이 무너지면서 같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다른 이의 소망을 걱정하며 고갯마루에 앉아 있자니 송촌 마을 방송이 여기까지 들리고 마을은 지척에 있는 듯 하다. 웅얼웅얼 거리는 방송을 뒤로하고 고개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오른쪽 위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길섶의 굴참나무와 철쭉나무가 빼곡하다. 꽃피는 5∼6월이면 장관을 이루었을 듯 하다. 그 사이로 오원천의 물줄기가 조금씩 보이고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아주 작게 보인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나 겨울이면 이곳의 조망도 훤히 트일 모양새다. 수줍게 보이는 조망이 이어지다가 울창한 숲 사이를 비집고 좌포리의 논밭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김윤진씨는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 폭의 그림이네요. 이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에 다시 한번 더 이곳을 찾아야겠군요”라는 말을 두 세 번 이야기한다.
이렇듯 물맛 좋은 냉천과 서늘한 풍혈, 그리고 발을 감싸는 포근한 낙엽 등 아쉽게 보이는 조망마저도 대두산이 가진 멋이다. 정상이 머지 않았다. 길은 계속 완만하고 지난해 떨어진 낙엽으로 길은 너무나 포근하다.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다. 반질반질한 국립공원, 군·도립공원의 등산로와는 사뭇 다르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밟으며 혹사당한 발은 오늘에서야 제 갈 곳을 찾은 듯 발걸음이 가볍다. 두터운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걷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양화 마을에서 대두산을 바라보면 정상에서 양쪽으로 뻗은 능선은 거의 그 높이를 나란히 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은 능선에서 아주 약간 봉긋 솟아 있고 사람의 머리로 들자면 널따란 정수리 부분과 같이 생겼다. 정상의 하늘은 모두 굴참나무의 독차지다.
풍혈냉천을 나선 지 50여분. 하산은 원점회귀로 양화마을로 내려서면 된다. 하지만 대두산의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한곳 있는데 그곳은 정상에서 북쪽으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무덤이 있다. 주위에는 대두산 곳곳에 있는 삐죽한 검은 바위들보다 작을 것들이 무덤을 삥 둘러싸고 있다. 마치 왕국의 성벽과 같이 무덤을 둘러 싼 모습이 이 곳에 자리한 주인이 대두산의 왕인 듯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세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하산을 한다. 길은 계속 만덕산으로 이어지나 이곳에서부터는 희미해지므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다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정상을 지나고 좌포리의 논밭을 바라보며 풍혈냉천으로 내려선다. 벌써 서늘한 바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임실군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뚫는 공사 현장이 보이는 것을 보니 냉천이 바로저 아래다. <글|임현주 기자 사진|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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