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비행기와 기차의 화장실
비행기 세면대서 쓴 물, 수증기로 배출돼… 얼어서 구름 되죠
비행기와 기차의 화장실
박동원 아시아나항공 정비사
박병남 코레일 차장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입력 2024.10.01. 00:16 조선일보
비행기와 기차의 화장실
10월 징검다리 휴일을 맞아 여행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가려는 분도 많을 텐데요. 장시간 여행을 하다 보면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거나 볼일을 보게 되죠.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 해 보셨나요? 비행기와 기차엔 하수관이 연결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많은 사람의 용변을 처리하는지 말이에요. 오늘은 비행기와 기차의 화장실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알아볼게요.
세면대·주방에서 쓴 물, 하늘에 버려요
오랫동안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는 어디서 물을 가져오는 걸까요? 많은 항공사에서 여객기로 쓰고 있는 보잉 747 항공기 기준으로 설명할게요. 항공기는 승객들이 탑승하는 위쪽 공간과 화물이 탑재되는 아래쪽 공간으로 나뉘어요. 화물칸을 전·후방으로 나누는 벽 사이에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튼튼한 탱크가 3~4개 설치돼 있어요. 이 탱크에 깨끗한 물을 보관하죠.
탱크 한 개에는 약 110갤런(416리터)의 물을 채울 수 있어요. 이런 탱크가 3~4개 있으니 비행기 한 대에 약 1248~1664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거죠. 이륙 한두시간 전쯤 비행기에 호스를 연결해 깨끗한 물을 채워 넣어요. 이 물탱크는 화장실과 주방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비행기 세면대에서 사용하는 깨끗한 물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거랍니다.
그래픽=진봉기
그렇다면 비행 중 생긴 오물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일부는 하늘에 버리고, 일부는 항공기에 저장한답니다. 항공기 주방과 화장실 세면대에서 사용된 크게 더럽지 않은 물은 하늘에 버리는데요. 이 물은 별도 관을 통해 배수구로 흘러가 하늘에 방출돼요. 항공기에는 보통 배수구가 3개씩 있어요.
항공기는 상공 5~12㎞ 높이에서 비행해요. 이 높이에선 외부 기온이 영하 30~50도 정도로 낮기 때문에 물을 배출하면 곧장 얼어붙어요. 그래서 이 물을 전기로 뜨겁게 달궈 수증기 상태로 내보내요. 배출된 수증기는 공중에서 곧바로 얼어서 구름이 됩니다. 물을 이렇게 처리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물을 버려도 땅으로 떨어져 사람들에게 피해 줄 일이 없는 거죠.
사용한 물 일부를 비행 중에 버리는 이유는 비행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예요. 물을 버려서 항공기를 좀 더 가볍게 만들면 그만큼 연료 소모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화장실 오물은 안 버리고 저장해요
그러면, 화장실에서 나온 오물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용변 섞인 오물은 절대 하늘에 버리지 않아요. 지상의 누군가가 맞을 수 있고, 환경 오염도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오물은 비행기의 오물 탱크에 저장해 뒀다가 지상에 착륙한 후 수거 차량이 수거해 가도록 합니다.
일반적인 화장실 변기는 물을 사용해 오물을 내리죠. 그런데 항공기 변기는 대부분 물을 사용하지 않아요. 갑자기 난기류를 만났을 때 변기 속 물이 넘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대신 항공기는 ‘진공식 처리 시스템’을 이용해 오물을 처리해요. 진공식 처리 시스템은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기가 이동하는 성질을 이용해요. 승객이 용변을 본 후 물내림 버튼을 누르면, 오물이 이동하는 관의 기압이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오물이 공기와 함께 관을 타고 오물 탱크로 흘러가죠.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비행기에 화장실이 따로 없었어요. 당시엔 단거리 비행이 많고, 승객의 편의성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항공사들이 많이 생기고 대형 여객기가 도입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항공기에 화장실이 생기기 시작했죠.
철길에 용변 버리던 시절도
기차는 어떨까요? 40년 전엔 열차 화장실에서 승객이 용변을 보면 오물이 철길 바닥으로 바로 떨어졌어요. 당시 제일 좋은 기차였던 ‘새마을호’를 제외하곤 화장실 변기 바닥이 뚫려 있었거든요.
지금 기차 화장실엔 의자처럼 앉아서 이용하는 ‘좌변기’가 설치돼 있지요. 과거엔 다리를 벌리고 쪼그려 앉아 이용하는 ‘재래식 변기’를 사용했어요. 바닥이 뚫려 있다 보니 뒷주머니 속 지갑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오물이 그대로 땅에 버려지기 때문에 위생적이지 않았죠. 철길에 버려진 용변은 직원들이 따로 청소해야 했어요.
이런 화장실은 기차가 달릴 때만 이용할 수 있었어요. 기차가 역에 멈춰 있을 때 용변을 보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니까요. 화장실 문에는 ‘정차 중 사용을 금함’이라는 안내 표시를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기차 화장실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부터예요. 1986년부터 오물을 기차 내부 탱크에 보관하는 ‘저장식 화장실’이 도입됩니다.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는 모든 기차 화장실이 저장식이랍니다.
최근 기차는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공기의 압력을 이용해 오물을 처리해요. 볼일을 보고 물내림 버튼을 누르면 ‘쉬이익’ 하는 큰 소리가 나며 오물이 빨려드는데요, 관으로 공기가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입니다. 오물 탱크에 달린 장치가 기압을 낮추면 공기가 이동하는 거예요. 이때 변기에선 세제 섞인 물이 나오는데, 이 물이 공기를 따라 관으로 이동하면서 용변도 같이 처리되는 거죠.
기차 하부엔 오물을 저장하는 오물 탱크가 있어요. 오물 탱크는 이틀에 한 번씩 비워져요. 다만 이용객이 많은 주말에는 매일 비우기도 해요. ‘갑자기 오물 탱크가 넘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드나요? 열차 승무원이 오물 탱크 용량을 확인하고 조치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탱크가 80% 정도 차면 ‘경고 램프’가 켜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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