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공원 백양촌(白楊村) 신근(辛槿) 선생 시비(詩碑).
백양촌 선생 시비 앞면의 “강(江)”이라는 제목(題目)의 시는 다음과 같다.
“여기 서면
태고의 숨결이 강심에 흐려
어머니. 당신의 젖줄인양 정겹습니다.
푸른 설화가 물무늬로 천년을 누벼 오는데
기슭마다 아롱지는 옛 임의 가락
달빛 안고 하얀 눈물로 가슴 벅차 옵니다.
목숨이야 어디 놓인들 끊이랴마는
긴 세월 부여안고 넋으로 밝혀 온 말간 강심
어머니. 당신의 주름인양 거룩하외다.
길어 올리면 신화도 고여 올 것 같은
잔물결마다 비늘 지는 옛 임의 고운 가락
구슬로 고여 옵니다.”
시비의 건립비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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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916년 8월 22일 태어나셔서 향년 88세로 2003년 6월 1일에 운명하셨다.
1930년에 정옥숙 여사와 결혼하시어 슬하에 신 건 님 외 2남 2여를 두셨다. 일생동안 시인,
언론인, 교육자로 빛나는 삶을 누렸다.
부안 초등학교와 일본에서 중학을 졸업하시고 마지막으로는 일본대학에서 수학하셨다.
선생은 언제 뵈어도 따뜻하고 정다운 표정으로 많은 사람을 대하시어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비 풍모를 보여 주셨다.
1945년 전주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시작으로 전라신보사 편집 부국장, 상임편집고문, 논설위원으로 계시다가 다시 교직에 투신하시어 전주고등학교, 김제농업고등학교,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 등에서 영재를 육성하는 일에 진력하셨다. 특히 해방 후에는 전북언론의 선구자로서
그 뿌리 역할을 하셨다.
백양촌 선생은 해방 직후 김해강 시인, 김창순 시인과 함께 전북문단동우회를 결성하여 이때부터 문예진흥에 매진하셨다.
그리고 일제 때부터 조국 광복을 희원하는 시창작에 전념하셨다.
‘월간예술지’에 시 작품 ‘동방의 새아침’이 현상모집에 당선하시면서부터 문예 창달의 큰
기운을 전북에서 일으켜 세우셨다.
전북문단의 1세대라 일컬어지는 김해강 시인, 신석정 시인, 서정주 시인, 이철균 시인들과
함께 전북문단의 대도를 닦아 가셨다.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장, 한국예총 전북지부장을 역임하시면서 명실 공히 한 시대 이 고장 문단의 큰 산맥을 형성하셨다.
전북문화상을 수상하시고 전주시사를 집필하셨으며 또한 큰 아들 신 건 님과 큰며느리
한수희 님의 후원으로 백양촌문학상이 제정되어 15회에 달한다.
후예 김해성 시인, 이기반 시인, 허소라 시인, 박옥구 시인 등이 백양촌 시전집, 백양촌 수필
전집을 엮으므로 선생의 문명은 세상에 더욱 빛났다.
여기에 선생의 후학, 제자 또는 지인들은 선생의 큰 업적을 기리며, 일월처럼 우러러 모든
정성된 마음으로 조각가 당진 김창희 교수가 조각하고, 서예가 우산 송하경 박사가 글씨 써서 전주 덕진공원에 선생의 시비를 새웠다.
2003년 11월 29일
시비 건립 집행위원장 : 제자 김 해 성
전북 문인협회 회장 : 제자 소 재 호 같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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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촌 선생님은 소생(小生)의 개인사적(個人史的)으로는 60여 년 전 전주고등학교 학창시절 김해강(金海剛) 선생, 신석정(辛夕汀) 선생, 이철균(李轍均) 선생, 하희주(河喜珠) 선생과 함께 국어담당 선생님으로 계시면서 저희들에게 너무나도 좋은 가르침을 주신 존경(尊敬)하고
자랑스러운 모교(母校)의 은사(恩師)이시기도 하다.
덕진공원은 1978년 4월, 4만5천 평의 규모로 조성된 도시공원이다.
외지에서 오는 사람은 전주IC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팔달로(八達路) 변에 위치하여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곳 덕진 연못의 역사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타나는데 전주 땅의 완산부
(完山府)에 도읍을 정한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쌓은 것으로, 전주가 삼면(三面)이 둘러싸인
분지이나 북쪽만 열려 있어 땅의 기운이 낮아 제방(堤防)으로 이를 막아 지맥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를 만들었다.
전주 동쪽의 건지산(乾止山)과 서쪽의 가련산(可連山)사이가 허(虛)하여 이를 잇는 곳에다
풍수지리를 따라 덕진제(德津堤)라는 둑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공원은 둑이 있다 보니 고려시대당시 만들어진 자연호수로 전체 공원면적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의 연못의 형태는 연못 중앙에 위치한 현수교(懸垂橋)를 중심으로 보트장과 연꽃으로
동서를 가르고 있으며 연못의 주위에는 수양버들과 벚꽃나무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덕진 연못의 풍광(風光) 중에서 압권(壓卷)은 무엇보다도 연꽃이라 할 수 있다.
전주에서는 예로부터 ‘부성삼화(府城三花)’하는 말이 전해 온다.
말 그대로 예전에 전주가 전주부성(全州府城)이었던 시절에 아름다운 꽃으로 유명하였던
세 곳을 말하는데 동고산(東古山=僧岩山)의 진달래, 다가산(多佳山)의 입하화(立夏花=여름의 시작 무렵 피는 이팝나무)와 함께 덕진 연못의 연화(蓮花)를 말한다.
덕진공원의 연꽃은 매년 7~8월경 절정을 이루는데 연화정(蓮花亭)과 현수교가 어우러져
전주 팔경(八景)의 하나인 ‘덕진채련(德津採蓮)’이라고 하여 아름다운 정경을 만들어 냈다.
‘덕진채련(德津採蓮)’은 완산(完山) 팔경의 하나로서, “풍월정(風月亭)에 앉아 저녁노을과
달빛을 끼고 뜸부기 우는 호면(湖面)의 피리 소리 실은 어화(漁火)에 젖은 채 맞은 편 승금정을 내려다보는 덕진 연못의 풍경”을 말한다.
덕진공원에 가면 호수와 푸른 잎사귀들과 크고 작은 연꽃들을 머금고 있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어느 계절에 찾아도 운치 있는 곳이지만 봄부터 여름까지 유독 빼어난 경치를 자랑
한다.
어둠이 내린 덕진공원은 더욱 낭만적으로 변신한다. 분수 퍼포먼스와 영상에 음악이 더해져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음악분수쇼’가 열린다. 음악이 흐르면 오색조명을 받은 분수가
꽃처럼 피어나는 분수쇼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사랑 고백이나 생일 축하 등을 할 수
있는 ‘이벤트데이’행사도 진행한다.
예전부터 전주사람들은 단오(端午)때가 되면 이곳에 모여들어 창포물에다 머리감기, 그
네뛰기 등 단오풍습을 즐기었는데 지금도 덕진공원에서는 연인(戀人), 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이 함께 만나 평안과 건강, 나아가 이번 해에도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다양한 민속행사 단오축제마당이 펼쳐진다. 매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약 50만 명 이상에 이를 정도로 이곳은 전주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