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A Study on the Identity of the Female Essays in 1980's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수필의 경우에도 전략적 글쓰기가 어느 정도 활발하게 또는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실제로 여성문학 연구는 시나 소설에 편중되어 왔다. 현대여성수필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접근은 전무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바 없는 1980년대 여성수필에 나타난 여성 정체성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본 연구자는 여성작가의 수필작품을 언술 특성과 의식의 두 층위에서 고찰하였다. 이는 언어와 사고 작용의 두 층위 간에는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으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언술 특성과 의식 특성이라는 전혀 다른 두 영역이 상호교차하면서 여성 작가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구성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이 논문의 의의를 두었다.
본 논문의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I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수필연구사를 살펴본 다음 이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도출하여 연구목적과 방법을 설정하였다. 둘째, II, III장에서는 80년대 여성수필에 나타나는 여성작가들의 언술 특성과 의식 특성을 분석하여 여성작가와 여성 텍스트가 어떻게 특징지워지는가에 대한 답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그 결과 언술적인 특성 측면에서는 사회와 같은 외부적 현실 속에서 여성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려는 통합 지향의 언술 전략과 욕망, 무의식 등으로 가득 찬 여성의 내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해 내려는 내적 분열의 언술 전략 그리고 여성이 얼마나 억눌려 왔는지를 역으로 보여주는 열림 지향의 언술 전략 등으로 그 특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과 자아 그리고 사랑의 역학 관계에 대한 현실 인식의 구조 측면에서도 세 가지 양상을 보여주었다. 여성 정체성에 대해서 적극적인 인식을 하는 경우는 작가의 주체적인 각성이 뒷받침되고 있었고, 중도적 인식의 경우는 자아와 일에 대한 모순적 양면성을 지향하고 있었으며, 소극적인 인식의 측면에서는 일과 자아 그리고 사랑을 환상적으로 통합하는 의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언술 특성에 나타난 여성 정체성 인식의 정도가 의식의 측면과의 관계에서 그대로 일대일 식 대응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언술 특성에서 정체성 인식 정도가 적극적이었던 정영자는 의식의 층위에서도 적극성을 드러내었지만, 유안진의 경우는 언술 특성에서는 중도성을 드러내고, 의식의 구조 측면에서는 적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의식의 층위에서 여성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었던 작가들이 언술적 특성면에서는 여성 정체성 인식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특성을 드러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두 층위의 관련 양상이 좀더 복잡한 형태를 지닌 경우도 발견했다. 천양희의 경우는 언술 특성에서 소극성과 중도성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런 결과는 여성들의 언어가 여성들이 처한 딜레마와 그것을 초월하려는 노력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순이 내재한 이유라고 하겠다. 여성이 놓인 현실을 발견하고, 그 지점에서 동일시를 지향하는 언술 전략이 의미를 고정시키면서 여성 주체의 동일성을 회복하고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내면을 발견하고 그 지점에서 내적 분열을 보이는 전략은 분열된 주체의 다중성과 복잡성과 인접성을 실험적으로 고무시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열림 지향의 언술은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이 여성수필이 80년대로 오면서 여성의 언술 특성과 여성 의식의 측면에서 여성 정체성을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밝혀 낸 것은 여성수필이 여성문학의 범주 안에서 당당히 위치할 수 있는 방향성의 근거를 제시했다고 본다.
주요어 : 여성문학, 페미니즘, 여성 정체성, 언술 전략, 내적 분열, 여성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