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국힘이 '도긴개긴'이라는 지식인들에게
[시민언론 민들레] 이태경 칼럼 2023.01.29 21:45
총체적 후퇴에도 '양당 차이 미미' 인식 갇혀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위원들이 보고서 의결을 거부하며 퇴장하고 있다. 2023.1.17 연합뉴스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말하자!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데에는 지식인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숱한 지식인들이 윤석열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걸 방조하거나 외면하거나 침묵했다.
대통령 선거 전후를 관통했던 지식인들의 관점 중 다수를 점했던 관점은 이재명의 민주당과 윤석열의 국힘당의 건곤일척 쟁투를 조선시대의 당쟁(黨爭)처럼 보는 것이었다. 당쟁이 사대부들 간의 파워게임 혹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투쟁이었던 것처럼 민주당 이재명과 윤석열 국힘당의 싸움도 한국사회 하층민들의 이해관계와는 완전히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다.
정녕 놀라운 건 여전히 그런 인식과 관점을 유지하는 지식인들이 허다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이재명과 윤석열 사이의 격차는 차치하더라도 민주당과 국힘당 간에는 정말 차이가 없거나 있더라도 무시할 만한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세 번 아니다! 민주당과 국힘당 간에는 대해(大海)보다 넓은 간극이 존재한다.
자유권적 기본권, 충실히 보장하는 민주당 vs 무시하는 국힘당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흔히 기본권은 국가의 발전 수준에 조응해 자유권적 기본권, 청구권적 기본권, 참정권적 기본권, 사회권적 기본권 순서로 보장되고 확장된다. 그리고 기본권의 가장 기초적인 출발이자 근간은 개인이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인 자유권적 기본권이다.
자유권적 기본권에는 생명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 신체의 자유 등 인신에 관한 자유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불가침, 주거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통신의 자유 등 사생활에 관한 자유권,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 정신적 활동에 관한 자유권, 직업선택의 자유, 재산권 등 경제생활에 관한 자유권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이 자유권적 기본권을 국가안전보장 등에 필요한 경우에 한해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경우라도 과잉금지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하며,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민주당은 이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에는 매우 충실한 정당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집권하던 시기의 민주당을 보면 알 수 있듯 민주당은 자유권적 기본권의 보장에 특화된 정당이다. 반면 국힘당은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정당이다. 국힘당의 전신 정당들이 집권하던 시기까지 올라갈 것도 없이 국힘당이 여당인 지금 윤석열 정부 하에서 경찰, 검찰 등에 의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인신의 자유, 사생활에 관한 자유, 언론출판 및 집회결사 등 표현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에 대한 항상적 침해만 보더라도 이를 극명히 할 수 있다.
흔히 지식인들은 민주당이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과 실질적 평등의 구현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에 관해 의지가 박약하거나 무능하다는 점을 들어 국힘당과 차이가 없다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에 불과하다. 사회권적 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은 한국사회가 피흘려 이룬 자유권적 기본권의 토대 위에 구축되는 것이지, 자유권적 기본권이 허물어진 후에는 사회권적 기본권은 그대로 질식사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유지하려는 당 vs 한반도에 긴장 야기하려는 당
민주당과 국힘당 사이에 바다 보다 넓은 차이가 있는 대목 중 하나가 바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점과 태도다. 민주당은 객관적이고 냉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유지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남북간의 갈등을 관리해 나간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4대 열강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대한 관점과 접근도 한반도 평화체체 구축 및 유지에 철저히 맞춰져 있다.
반면 국힘당은 지지세력 규합과 반대파 공격을 위해 끊임없이 북한을 악마화하고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언행을 일삼곤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극단화되긴 했지만, 미국 및 일본에 대한 경도와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경원은 북한 고립화의 필연적 귀결이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민주당과 한반도에 긴장을 초래하려는 국힘당이 각각 집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던 5년간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 중단된 이후 최대의 평화를 구가한 반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9개월 만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공포에 전전긍긍 중이다.
“가장 나쁜 평화가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격언이 한반도처럼 절실한 곳도 드물 것이다. 평화를 공기나 물처럼 생각해서인지 한반도 평화의 중요함을 망각하고 민주당과 국힘당의 차이가 무언지 도통 모르겠다는 지식인들이 여전히 많다. 태평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태산보다 무겁고 바다보다 깊은 지식인들의 죄
한국사회가 삽질도 변변히 하지 못할 창백한 손을 가진 지식인들을 후대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노동에 바쁜 주권자들을 대신해 지식인들이 시(是)와 비(非)를 대신 가려 주고, 사건과 사태의 본질과 핵심을 통찰해 주며, 사안의 경중(輕重)과 완급(緩急)과 선후(先後)를 분별해 주고, 현상의 배경과 맥락을 석연하게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조국 사태', 윤석열의 대통령 도전과 당선, 윤석열 정부의 검찰 파쇼화 경향 등의 일련의 격변 속에서 압도적 다수의 지식인들은 주권자들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했다. 대다수 지식인들은 시비(是非)를 가려주긴커녕 옳음과 그름을 전도시켰고, 사건과 사태의 본질과 핵심을 은폐하거나 호도했으며, 사안의 경중과 완급과 선후를 뒤섞었고, 현상의 배경과 맥락을 흐릿하게 뭉갰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압도적 다수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인식과 판단과 언행이 그릇됐었음을 인정하지도, 지식인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해 통절히 반성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성과 성찰과 회개가 없는 사람이 개선될 수 없는 것처럼, 잘못에 대한 인정과 통절한 성찰이 없는 지식인들이 장래에 지식인 노릇을 제대로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민국이 검찰국가로 전락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법치주의가 법의 이름으로 살해당하는 현실 앞에서도, 한반도의 평화가 바람 앞의 등불인 상태에서도 압도적 다수의 지식인들은 하나마나한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일삼으며 민주당과 국힘당의 차이가 미미함을 말하거나 양당제의 폐해를 웅변한다.
눈 밝은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지식인들은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훗날 역사는 지금을 지식인들이 사회적으로 집단자살한 시대로 기록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