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은 색 중의 색이다. 미묘하게 유혹하는 듯 은밀한 떨림의 색이다. 품위와 우아함이 깃든 보라색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보라색을 만들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왕족과 귀족만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네로의 통치하에선 황족이 아니면서 보라색을 걸치거나, 작은 조각을 기웠을지라도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중세 왕관을 장식한 보랏빛 자수정이 종교계에선 율법과 금욕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제들의 반지로 사용을 하기도 했다.
오래전에 라벤더 꽃 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다. 너른 들판을 물들일 보라 꽃을 상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얕은 수면에 들었다. 꽃길을 거닐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행을 준비하며 기다릴 때가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바로 그날이 그랬다. 둥근 챙모자에 연보라색 가방을 들고 사뿐히 차에 올랐다. 은은한 풍광을 그리며 많은 기대를 했건만 환상을 깨는 건 찰나였다. 빈약한 작은 규모도 실망스러운데 입장료를 받는 상술이 야박했다. 소리와 진동으로 소통한다는 꿀벌들의 떼창 소리에 온 신경이 예민해진다. 벌침도 무섭고 풍경도 고만고만해서 사진 두어 장 찍고 바로 돌아섰다.
이런 여행이 있는가 하면 별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나기도 한다. 바로 장항이 그랬다. 초등학교 때 사회 교과서에 실렸던 장항제련소는 긴 굴뚝 사진만 기억이 난다. 충청남도 천안에서 시작되어 서해안을 따라 장항이 종점이었던 장항선, 이름보다도 예명인 장항선으로 불리는 텔런트와 내 지인의 고향이기도 한 곳. 여기까지가 내가 알던 장항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숲이 존재하다니. 나 혼자 보물을 찾은 듯, 월척을 낚은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말복과 처서도 지났건만 한낮의 더위는 아직도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다. 그런 더위도 꽃 앞에서는 한풀 꺾이는 듯하다.
세 자매가 함께 모여 장항 송림 산림욕장으로 나들이를 간다. 순전히 보라색 맥문동꽃을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2019년 산림청 심사를 거쳐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공원 전체가 보랏빛으로 출렁인다. 방풍림 역할을 하는 해안가의 해송이 숲을 이루고 그 소나무 아래를 맥문동꽃이 덮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 산책로에 보라 꽃물이 든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 했던가. 눈이 아릿하도록 아슴아슴 보라에 취하는 날이다. 이 기막힌 풍경을 어떤 글로 형용을 한단 말인가. 청보랏빛 꽃밭에 알록달록 사람 꽃이 피는 오후다.
집에 온 후에도 맥문동 보랏빛 물결이 환영처럼 펼쳐진다. 그 유혹을 떨칠 수 없어 사흘 만에 다시 장항으로 달린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몽환적 해무를 상상하며 자동차 속력을 올린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직 어둑어둑한 게 너무 이른 시간이다. 차 안에서 동이 트기를 기다리며 이른 아침을 먹는다. 그러나 상상했던 해무는커녕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무렴 어때,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즐기면 될 것이다. 빗속의 여인이 풍경 안의 또 다른 풍경이 될지 모를 일이다.
아침 산책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며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짓는다. ‘이 순간처럼 행복하세요’ 꽃의 기도가 들리는 듯하다. 나들이객들의 탄성과 찰칵찰칵 카메라 소리에 놀랐는지 잠자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켠다. 남루한 차림의 대머리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은 채 포즈를 취한다. 꽃밭에선 다 꽃이 되나 보다. 순간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이 터진다. 꽃 이 낯가림을 할 거 같아 괜스레 무안해진다.
보라색을 좋아해서 일부러 사기도 하고 내 취향에 맞춰 지인들이 선물을 보내오기도 한다. 옷, 가방, 신발, 스카프, 모자, 색조화장품까지 다양하다.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언제부터인지 그냥 좋을 뿐이고 보라색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외로운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이라며 나를 염려하는 지인도 있다. 어차피 외로운 게 삶이지 않은가. 태어날 때도, 세상 떠날 때도 혼자인 것을. 살면서 외롭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랴. 외로움도 지혜롭게 즐기면 살만한 세상이다.
보통 보라색은 다른 색보다 정신적인 부분과 관계가 깊으며,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하고, 심리, 종교, 철학 등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 빨강의 격렬한 에너지와 파랑의 차분함을 모두 담고 있어 양면적인 성향이 있다고 한다. 문헌을 찾아보면 보라색은 예전부터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 색이었다. 화학 염료가 없던 시대에 보라색을 만드는 주재료는 뿔고둥이었다. 보라색 1그램을 생산하기 위해서 뿔고둥 1만 2천 마리가 필요했다. 만드는 과정 자체도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굉장히 비쌌다. 19세기 합성염료로 대량 생산되기 이전까지 귀족들의 색인 건 당연한 이치다.
아웃렛에서 가방을 고르고 있었다. 매대엔 기본 색상인 검정, 회색은 물론 연하고 부드러운 파스텔색 등 다양한 색들이 함께였다. 고심 끝에 점잖은 회색으로 낙점을 하고 나오다 깜짝 놀랐다.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진 아래에 같은 모양의 보라색 가방이 있었다. 순간 내가 방치된 거 같은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보라색을 왜 중앙에 놓지 않아요?, “고객님, 보통 열 명 중 한두 명만 찾는 게 보라예요.” 그냥 구색 맞추는 용도라며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너희가 게 맛을 모르듯 보라도 그렇지 않을까. 나도 의미 있는 웃음으로 답례를 했다.
보라색에 무한애정을 보낸 화가 에두아르 마네와 시인 괴테도 있다. 괴테는 ‘색채론’에서 ‘하늘의 하늘색은 원래 무색이다. 해의 빛을 통해 매질이 투과된 색일 뿐이라 했다.’ 빛과 어둠을 통해서 투과된 색은 각 블루와 레드로 우리 눈에 보인다고 한다. 가끔은 보라색을 폄하는 자들도 있는데 심지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자들의 색이라고까지 했다. 그 옛날 소유하지 못한 서민들의 질투심이 아닐까. 이렇든 저렇든 나의 보라 사랑은 지고지순한 진행형이다.
트바로티 김호중의 콘서트장에는 아리스 군단의 보랏빛 물결로 가득하다. 나도 그의 첫 데뷔 때부터 관심을 가졌으며 늘 응원하는 팬이다. 하지만 일부러 콘서트장을 찾거나 팬카페에 가입한 적도 없다. 그냥 숨어서 보일 듯 말 듯 표현하는 게 내 사랑 법인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열정적이지도 못하고 주체자가 된 적이 없다. 이런 나의 성향과 딱 맞는 보라색을 어찌 좋아하지 않으리. 꿈길을 걷듯 환상을 부르는 오묘한 색, 가끔은 이런 유혹에 빠져 충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은은하게 다가오는 그 매력을 나도 어쩌지 못한다. ‘송림 산림욕장’의 보랏빛 물결은 상상만 해도 엔도르핀이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