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눈이 맞았다. 말하고 나면 더 가난해지고 외로워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글에 밑줄 치듯이 내 인생에 그은 밑줄을 하나씩 들추어본다. 사람의 눈에 그 사람의 심장이 들어있듯이 일기에는 그 사람의 궤적이 들어있다. 평생 써온 일기장을 꺼내 침대 위에 놓고 나란히 누웠다. 참으로 포근한 동반자다. 그 옛날 풋내나는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황혼에 들으니 감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의 시간을 놓치고 산 지 60년이 지났다. 참으로 쓸쓸한 횡포 같은 세월이 지나고 나에 대해 말하면 안 되는 것, 어쩌면 말할 수 없었던 것을 꺼내놓고 보니 이런 일들이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만든 단단한 벽돌이었음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나를 완전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더 많이 분주하게 살아왔더라면 오늘의 내 가치는 더 낮았을지 모른다. 때때로 내 입을 막아준 하늘, 내 어깨를 쓸어준 소슬바람, 내 손을 만져준 꽃들, 무엇보다 나의 눈물을 받아준 일기장이 있었기에 나는 최초의 의무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재산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타인이 무엇을 얼마나 가졌나에 관심을 가진다. 누군가 그렇게 물어올 때, 나는 진짜 부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술만 달싹이고 만다. 인정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 시키기 위해서는 내 말이 시대에 맞지 않게 너무 무겁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말보다는 글을 선택했다.
8년의 시집살이가 끝나던 봄날이었다. 남편은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시킬 수 없다는 큰동서의 뜻에 따랐다. 긴 강물 같은 8년의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은 아이 둘 뿐이었다. 맨손 맨몸으로 분가하여 첫날밤을 의탁한 곳은 울도 담도 없는 개울가의 초가삼간이었다. 형편을 가엾게 여긴 바로 위의 시숙께서 논 두 마지기와 쌀 한 가마니를 주셨다. 남편 없는 출발이었지만,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작디작은 보금자리에서 아이들을 끌어안고 하늘 같은 큰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꿈은 며칠 못 가서 강물이 쓸어버렸다. 계속되는 봄비로 개울물이 불어나서 마당이 강이 되고 부엌도 호수가 되더니 방문턱까지 물이 찼다. 배가 된 집에서 울고 있으니 옆집 형님 내외분이 오셔서 잠이 들깬 아이들을 안아내고 업어냈고, 옷과 이불을 옮겨주었다. 살림과 목숨은 건졌으나 속절없이 떠내려 가버린 듯한 꿈이 아쉽고 남편 없는 자리가 그토록 서러울 수가 없었다.
햇볕은 우리를 끝까지 버리진 않았다. 맑은 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누가 뭐래도 가족이 함께 살 집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당장 급한 것은 아이들에게 먹일 반찬이었다. 장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남편이 주고 간 돈으로 닭 한 마리를 살 예정이다. 소를 살 돈은 안 되고, 닭을 사서 달걀을 얻는다면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양 반찬이 될 것이다.
장날이 되어 몇 마리의 닭을 점 찍어 두었다. 털이 매끈하고 눈이 총명한 닭을 골랐다. 꼬깃꼬깃 접은 돈을 닭장수에게 건냈다. 닭장수는 부자가 되라며 축원까지 해 주었다. 닭 한 마리로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꿈을 꾸게 해 준 그가 고마워 몇 번의 절을 하고 닭을 받았다.
닭이 낳을 달걀로 아이들을 먹일 생각을 하니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소쿠리에 닭을 담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때 그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왜냐하면 암탉은 내 가슴에 등재된 내 인생 첫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내 발걸음이 춤을 추는 동안, 닭은 내 머리 위에서 퍼드덕거리며 장단을 맞추었다. 한 번도 집을 지어본 적 없는 내가 닭이 살 집을 어디에 어떻게 마련해 주어야 할지 암담했다. 닭집 하나 마련하는 것도 이렇게 고민스러운데 사람이 새둥지를 마련해 분가하는 일은 말해 무엇하랴. 분가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새로운 식구를 맞아들이니 아이들도 기뻐하며 집짓기에 동참했다.
초가집 뒤란 깊숙한 곳에 닭집을 짓기로 했다. 울타리가 없는 집이었기에 혹시나 닭을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판자와 돌로 얼키설키 집을 지었다. 암탉은 내 심정을 헤아려주듯이 날마다 한 알의 달걀을 예쁘게 낳아주었다. 아이들 입에서 노란 꽃이 피었고, 볼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그즈음, 닭이 닭장에서 나오지 않아 들여다보니 달걀 두 개를 품고 있었다. 오호라, 또 한 번 식구를 늘릴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매일 한 알의 달걀을 얻는 것보다 알을 낳을 닭을 더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유정란 열 개를 구해 암탉의 배 아래 넣어주었다. 20일이 지나자 병아리 열두 마리가 어미를 따라 줄지어 나왔다. 어찌나 이쁜지 나는 열네 번째 병아리가 되고 아이들도 내 뒤를 따라 우리는 열여섯 마리의 식구가 되어 종종걸음으로 어미닭의 뒤를 따랐다. 남편 없는 빈자리를 채워준 나의 재산 1호는 빠르게 불어났고 아이들도 쑥쑥 자라줬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외출하여 돌아오니 개울가 둑에 노란 날개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달려가 보았다. 열세 마리의 닭과 병아리가 모두 쓰러져 다리를 떨고 있었다. 닭의 나들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개울가 논 주인은 닭이 쪼아먹는 논두렁의 풀에 농약을 뿌렸고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소쿠리를 가져와 떨리는 손으로 열세 마리를 주워 담아 방으로 갔다.
물 한 동이에 바가지를 띄워놓고 아이들이 쓰던 연필깎이 칼을 들었다. 무조건 살려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닭의 모가지를 잡고 턱 밑에 모이주머니를 찢었다. 방금 주워 먹은 듯한 농약 냄새 나는 모이가 들어있었다. 응급상황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지가 발휘된다.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닭 모가지를 훌렁훌렁 씻어냈다. 그리고 바늘과 실로 찢은 부분을 정성스럽게 꿰맨 다음 수건을 깔고 닭들을 뉘었다. 이렇게 열세 마리의 수술을 마치고 나니 내 등에 붙어서 울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내가 한 짓이 나도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무허가 수술에도 닭이 살아나기를 바라며 밤새 닭의 곁을 지켰다. 봉합된 닭목에 핏물이 비치고 있었다. 다음날 닭이 눈을 떴다. 또 하루가 지나니 목을 가누고 눈알에 생기가 돌았다. 그 다음 날 밤이 되자 닭은 좁은 방안을 비틀거리며 걸었고, 열세 마리 모두 살아났다. 열세 마리의 닭과 아이 둘과 내가 한 방에서 가족처럼 기뻐했던 날은 내 인생의 무형 재산으로 영원히 남아있다. 정성을 다한 수술 노하우는 어떤 부에도 견줄 만한 내가 가진 커다란 재산이다. 암탉 수술이 동네에 소문이 나서 나는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결혼 이후, 어떤 고민도 시가에서 일어난 일은 친정에 전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였기에 친정어머니는 내가 좋은 가문에서 잘살고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남편도 없이 딸이 분가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는 몰래 얼굴이라도 보자며 오셨다. 어머니는 밤새 목놓아 우시다가 새벽녘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셨지만, 흔들리지 않았던 내 마음이 또 하나의 재산이 되어 우리 가족을 지켜냈다.
어머니를 그렇게 보낸 것, 동서 시집살이, 가난한 출발에도 삶에 대한 나의 다짐은 평생 늙지 않았다. 흘러가는 한 평의 구름도, 하루 분량의 바람도 그때는 참으로 느리기만 했는데 그 모든 것이 과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다.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 재산이고, 특별한 경험은 나의 종자 재산이 되었다. 되돌아볼 날들이 내 안에 편평하게 자리하고 있고, 세상을 다 끌어안을 만큼 기뻤던 나의 재산 1호, 암탉 한 마리와 열두 마리 병아리 수술의 경험은 깃발처럼 내 인생에 걸려 펄럭이고 있다.